푸른 정원을 가득 장미. 장미는 한순간에 정원을 푸른빛에서 붉은빛으로 물들인다. 마치 사랑에 빠진 듯, 뜨겁게 타오른다.
뮤지컬 ‘붉은 정원’은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와 함께 러시아 3대 문호로 불리는 이반 투르게네프의 소설 ‘첫사랑’을 각색한 작품으로, 치열하고 아름다우면서 위험한 첫사랑을 통해 성장하는 빅토르, 지나, 이반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번 공연에서 빅토르 역은 배우 에녹, 정상윤이 맡는다. 지나 역은 김금나와 이정화가 연기한다. 이반 역은 박정원과 송유택이 무대에 올라 관객과 만난다. 뭇 남성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도 정작 자신만의 진정한 사랑을 찾아 갈망하는 지나 역의 김금나와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YAM : 뮤지컬 ‘붉은 정원’에 출연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출연 제의를 받았어요. 이정화 배우와 친구인데, 그 친구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무대 사진을 본 적 있어요. 붉은색이 강렬하다고 생각했죠. 또 일단 넘버가 정말 좋아요. 말도 안 되는 퀄리티(quality)다 보니 고민할 여지가 없었어요.”
YAM : 배우 김금나를 홀린 작품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작품의 매력은 정말 많아요. 원작 소설 제목이 ‘첫사랑’이에요. 첫사랑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잖아요. 그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있을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누구에게나 기억으로는 존재하죠. 모두가 기억하는 ‘첫사랑’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앞서 말한 것처럼 음악이 너무 좋아서 귀 호강 제대로 할 것 같아요. 넘버 안에 인물의 모든 감정이 다 들어 있어요.”
YAM : 지금도 연습 중인데, 연습실 분위기는 어떤가요?
“배우들 모두 사이가 너무 좋아요. 초연이다 보니 연출님이 많이 열어두는 편이에요. 서로 논의하면서 만들어 나가고 있어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노선이 있다 보니 토론을 많이 하게 되죠. 저 같은 경우, 지나 역을 두고 더 많이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이반과 빅토르가 다른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더 그렇죠. 어떤 장면에서 연출님은 지나가 밝고 행복하길 바라는데, 제 생각은 다를 때가 있어요. 아무리 앞선 상황이 행복하더라도 인간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양심의 문제가 남아 있거든요. 그래서 마냥 웃을 수 없고, 밝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디테일한 감정에 더 신경을 많이 쓰게 되는 것 같아요.”
YAM : 연기 호흡을 주고받는 배우들에게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서로 다른 매력을 발산하는 배우들과 호흡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지나의 연기는 어떻게 표현되나요?
“에녹 배우는 음성 자체가 중후해서 빅토르다운 느낌이 있어요. 이미지가 빅토르와 잘 맞는 것 같아요. 지나가 느끼기에는 그만큼 싸늘할 때가 더 많아요. 반면 정상윤 배우는 내면의 갈등이 지나에게 더 잘 보이는 빅토르예요. 예를 들어 에녹 배우는 안 될 때는 ‘절대’ 안 된다며 자신의 감정을 철저하게 숨겨요. 정상윤 배우는 그 갈등이 다 보여요. 그래서 더 쟁취하고 싶어지죠.”
“송유택 배우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할 때가 있어요. 그런 충동적인 행동이 신선하고 재미있게 와 닿는 것 같아요. 덕분에 캐릭터가 가지고 가야 하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다양한 장면들이 나올 수 있었죠. 이반 역을 연기할 때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송유택이라는 사람 자체가 굉장히 웃겨요. 풋풋하고 어린 느낌이 이반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또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했을 때 감정을 숨기고 제어하기보다는 다 표현하는 스타일이에요. 박정원 배우는 안에 가지고 있는 생각이 더 많은 것 같아요. 나이에 비해 조금 더 절제력이 많은 것 같아요. 두 배우 모두 다른 매력의 이반이죠.”
# 푸르렀다가 붉어지는 사랑처럼
YAM : 배우 김금나가 바라본 극중 인물은 어떤 캐릭터인가요.
“보이는 것과 달리 정말 깊이 있는 사람이라 생각해요. 또래와 비교해 힘들게 자란 탓도 있겠지만 인생이 무엇인지에 대해 굉장히 많은 질문을 던지는 친구예요. ‘내 삶이 왜 이러지’, ‘나는 왜 자유롭지 못하나’ 등에 대한 고민이 많아요. 그 나이에 이런 생각을 하기 쉽지 않은데 말이죠. 다들 물 흘러가듯 살아가는데 지나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해요.”
YAM : 그런 극중 인물에 어떻게 접근해 나갔나요?
“처음 대본을 봤을 때는 저에게서 도출할 수 있는 지나의 모습을 찾으려 했어요. 그래서 나만의 지나를 만들려 했는데 잘 풀리지 않아 어려웠어요. ‘어떤 태도로 이 상황에 접근해야 할까’ 물음의 답을 김금나에서 찾으려 하니 답이 안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원작을 읽었어요. 또 연출님 추천으로 ‘위대한 유산’이라는 영화도 봤고요. 도움이 많이 됐어요. 그다음부터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왜 이 말을 했는지’ 등을 더 많이 생각하며 대본을 읽은 것 같아요. 인간 김금나와 거리를 두고 대본을 분석했죠.”
YAM : 지나와 닮은 점이 있다면 어떤 부분이 비슷한가요?
“저와 극중 인물이 완전히 닮은 점도 있어요. 저는 제가 원하는 사랑을 찾았을 때 적극적으로 쟁취하고자 하는데 그러한 욕망이 지나와 비슷한 것 같아요. 사랑을 쉽게 포기하지 않아요. 다만 지나가 다른 남자들을 대하는 태도는 저와 다른 것 같아요.(웃음)”
YAM : 뭇 남성의 마음을 사로잡은 극중 인물을 연기하기 위한 ‘필살기’가 있나요?
“일단 성격 자체가 좋게 말하면 상냥한 면이 있어요. 웃는 여자 싫어하는 남자 없다고 하잖아요. 저는 친절함과 눈빛으로 극중 인물을 표현하려고요.(웃음) 눈빛 안에 수많은 의미를 담아서 말이죠. 뇌쇄적으로.”
YAM : 지나에게 사랑은 어떤 의미일까요?
“지나에게 사랑은 자유 같아요. 지긋지긋한 삶에서 자신을 풀어줄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인 거죠. 내가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향일 수도 있고요. 저 역시 사랑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극단적으로 보면 사랑은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인 것 같아요. 인간에 대한 고민을 한 번쯤 해봤다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YAM : 지나의 사랑에 대해, 배우로서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해요.
“인간 김금나 입장에서는 당연히 옳지 못한 관계라고 생각해요. 연습하다 보니 지나의 아픔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만큼 지나는 순수한 아이예요.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것과 달리, 그 안에 두려움이 굉장히 많아요. 또 지나는 진정한 사랑을 갈망하는데 그때 빅토르를 만난 거죠.”
“대본에는 빅토르가 쓴 책을 지나가 읽고 자신이 고민하던 부분이 해소된다고 적혀 있어요. 그 순간 지나는 자유를 좇으며 지저분한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해요. 자신을 진정으로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죠. 빅토르가 쓴 책을 읽고 그 안에서 답을 찾게 돼요. ‘너만의 삶을 찾아서, 너의 삶을 살아가라’고. 그때 지나는 알게 되죠. 자신의 삶을 용기 내서 살아갈 수 있겠다고 말이에요.”
YAM : 지나와 김금나의 ‘첫사랑’을 색으로 표현하자면 어떤 색인가요?
“제가 빨간색 말할 것 같죠? 생뚱맞지만 파란색이에요. 하늘색이기도 하죠. 끝으로 갈수록 빨간색이고 싶어요. 한 가지 색으로 정의하고 싶지 않아요. 처음에는 하늘색이고 나중에는 새빨간 색일 것 같아요. 처음 지나가 사랑에 접근했을 때는 정신적인 부분이 더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저의 ‘첫사랑’은 새빨간 색이에요. 첫눈에 반했어요. 그리고 한 달을 쫓아다녔죠. 사귀어달라고 매달렸어요. 그럴 때마다 ‘나는 너에게 관심이 없는데 왜 사귀자고 하느냐’며 상대방에게 설득도 당했어요. 결국 쟁취했고 뜨겁게 사랑했어요. 그런 부분에서 지나와 비슷한 것 같아요.”
YAM : 맹목적으로 지나를 사랑하는 이반을 바라보는 극중 인물의 마음은 어떨까요?
“지나는 아무리 이반이 자신을 맹목적으로 사랑한다고 해 그 사람을 깊이 있게 돌봐줄 것 같지 않아요. 그가 불쌍해서 마음을 주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내 코가 석 자인데 다른 사람을 볼 여유가 없겠죠. 마지막에 지나 역시 이런저런 일을 겪고 성장해요. 그만큼 성장했기에 다른 사람의 아픔도 보게 되는 것 같아요. 배려하지 못했던 이반의 마음에 대해 마지막에는 미안한 마음이 들 것 같아요. ‘너도 아팠겠구나’.”
YAM : 사랑을 하는 지나에게 조언을 해주자면?
“모든 작품이 끝나갈 때, 결론에 이르렀을 때 저도 ‘너의 의지대로, 너의 삶을 살아라. 용기 있게’라는 말을 극중 인물에게 하는데, 사랑하는 동안이라고 하면 ‘네 마음의 소리에 집중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사랑하는 과정에 대해 ‘그게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지 않아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진심으로 행동하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YAM : 극중 가장 좋아하는 넘버, 또는 장면이 있다면 추천해주세요.
“‘열망’이라는 넘버예요. 어제 장면 연습을 했는데 정말 많이 울어서 눈알이 빠질 것 같았어요. ‘붉은 정원’ 이야기 중 가장 클라이맥스 부분이기도 하고 지나의 감정이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이라 좋아해요. 스포일러를 피해 추천하자면 ‘아도니스의 정원’이라는 넘버도 좋아요. 지나가 빅토르를 갈망하고, 빅토르와 대화를 시도하고 그 안에서 계속 이야기를 써 달라고 하죠. 그러면서 싸우기도 하고. 그러다 자신이 원하는 결말을 빅토르가 새롭게 써주면 또 감동 받기도 해요. 서로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느낌을 주는 넘버예요.”
“아무래도 소극장에서 공연되다 보니 디테일을 한 번에 표현하기 힘들어 인물의 움직임으로 많이 풀어냈어요. 발걸음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런 부분에서 극의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YAM : 개막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 같은 고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제가 해결해야 하는 것은 제 배역이겠죠. 많이 알아봤다고 생각했는데 공연 끝날 때까지 더 가까워져야 할 것 같아요. 정말 쉽게 설명하자면, 지나라는 친구의 태도 자체가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를 가지고 놀았을 때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버려요. 또 자신의 사랑에 집중할 때는 다른 사랑이 필요 없을 정도로 몰입하죠. 그렇게 되고 싶어요. 하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원래 김금나라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성향이 중간중간 끼어들 때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인지’를 먼저 생각해요. 또 이 말을 왜 하는지 그 이유를 더 깊이 있게 생각하죠. 그래서 풀리지 않을 때는 눈에 힘을 줘요. 눈빛에 그 사람의 영혼이 다 담겨 있잖아요. 그러면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YAM : 2018년, ‘붉은 정원’을 꼭 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꼭 보러 와주세요’. 작품을 준비하면서 인터뷰를 할 때 이렇게 ‘꼭 보러 와 달라’는 말을 잘 안 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붉은 정원’은 꼭 봐야 해요. 무대적으로 수많은 질문을 할 수 있는 작품이에요. 보면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같이 고민할 수 있을 거예요. 넘버로 귀호강도 할 수 있어요. 공연 기간이 한 달밖에 되지 않으니 최대한 많이 보러 와주세요.”
사진 홍혜리·에디터 백초현 yamstage_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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