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의 떨림은 첫 만남의 순간을 영원으로 기억하게 할 만큼 강렬하다. 두근거림으로 가득한 그날의 기억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지금’, 그리고 ‘이 순간’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게 전달된다. 그래서일까. ‘첫사랑’을 다룬 작품은 진부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설렘을 안겨주며 다양한 콘텐츠로 재생산되고 있다.
뮤지컬 ‘붉은 정원’은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와 함께 러시아 3대 문호로 불리는 이반 투르게네프의 소설 ‘첫사랑’을 각색한 작품으로, 치열하고 아름다우면서 위험한 첫사랑을 통해 성장하는 빅토르, 지나, 이반의 이야기를 그린다. 두근거리는 첫사랑을 간직한 소년 이반 역으로 무대에 오르는 배우 송유택과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YAM : ‘첫사랑’이라는 원작 소설이 있어요. 원작과 다른 뮤지컬의 재미는 무엇인가요?
“원작 소설의 경우, 작품이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고 있어요. 작가 본인이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죠. 그만큼 감정 묘사가 솔직하고 깊이 있어요. 자기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으니 몰입도가 높을 거예요. 뮤지컬 ‘붉은 정원’은 같은 장면을 다른 인물의 시점으로 묘사하고 있어 골라 보는 재미는 물론이고 전체적인 그림을 이해하기 쉬울 거예요. 책을 읽고 와도, 또 읽지 않아도 공연만 두고 봤을 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도록 다 함께 머리를 싸매고 만들고 있어요.”
YAM : 출연을 결심할 만큼, 배우가 느낀 ‘붉은 정원’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원작이 있다는 거예요. 원작 소설이 발표됐을 당시 대중에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그리고 지금까지도 인기가 있죠. 검증된 텍스트라 배우는 그것만 믿고 연기하면 돼요. 의심하지 않고 연기할 수 있는 것이 좋았어요. 여기에 음악은 물론이고 내용을 풍성하게 표현해주는 안무가 더해지니 ‘붉은 정원’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어요. 놓치면 후회할 것 같았죠.”
YAM : 그러한 작품의 매력을 관객에 전달하기 위해 어떤 부분에 집중하며 연습하고 있나요?
“관객에 따라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어요. 서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으니까요. 많은 분을 설득할 수 있도록, 또 설득될 수 있도록 잘 묘사하고 싶어요.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말이죠. 같은 장면이라도 변수를 설정해 다양한 경우의 수를 만들며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고 있죠.”
YAM : 한창 연습 중인데, 연습실 분위기는 어떤가요?
“좋은 공연을 만들기 위해 서로 똘똘 뭉쳐 있어요. 다른 공연이 있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힘들 텐데 열심히 연습하고 있죠. 휴일도 자진 반납하면서 말이에요. 좋은 공연을 만들려 서로 머리를 싸매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작품에 대한 애정도 샘솟고, 팀워크도 좋아요. MT도 진즉에 다녀왔어요. 그래서 초반에 팀워크가 잘 다져진 것 같아요. 작품을 워낙 사랑하니까 하루하루가 웃음꽃이에요.”
YAM : 이반 역에 박정원 배우와 더블 캐스팅됐어요. 주로 어떤 고민을 나누고 있나요?
“박정원 배우와 같은 역으로 만나 함께 연습하고 있는데 저보다 더 감수성이 풍부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어떤 장면을 연습하면 저는 몸부터 부딪히는 스타일인데 박정원 배우는 마음으로 먼저 받아들이고 움직여요. 서로 좋은 점을 찾아 보완하며 연습하고 있어요. 도움을 많이 받고 있죠.”
YAM : 이반뿐만 아니라 빅토르, 지나 역을 맡은 배우들 모두 매력이 달라요. 함께 연기 호흡을 주고받은 소감이 어떤가요?
“정상윤, 이정화 배우는 이미 리딩 공연을 통해 작품을 먼저 접했어요. 물리적인 시간이 저보다 빠르다 보니 장인 같은 느낌이에요. 믿고 연기할 수 있고, 또 의지가 되더라고요. 에녹, 김금나 배우는 새로운 에너지가 있어요. 서로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죠. 모험하듯 재미있게 연습하고 있어요. 신구의 조화는 아니지만 경험으로 터득한 노련함과 새로운 호흡이 섞여 있어 조금 더 재미있게 연습하는 것 같아요.”
# 소년 이반의 첫사랑
YAM : 배우 송유택이 바라본 이반은 어떤 인물인가요?
“‘붉은 정원’ 속 이반이라는 인물은 순수함을 전제로 시작해요. 워낙 순수하고, 어리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동시에 충동적이기도 해요. 어떨 때는 해바라기 같기도 하다가 충동적이기 때문에 가시 돋힌 장미 같기도 하죠. 붉은 정원의 장미와도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YAM : 송유택과 극중 인물의 닮은 점은 무엇인가요?
“이반처럼 순수했던 때가 저에게도 있었겠죠? 새로운 작품을 만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순수해지기 마련이잖아요. 아무래도 몰랐고, 경험하지 못했던 어릴 때가 순수했던 것 같아요. 그런 점이 이반과 닮았어요.(과거형) 또 어떤 형태로든 첫사랑이 존재하기 마련인데, 그러한 첫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회상할 수 있는 것이 닮은 점 아닐까요.”
YAM : 극중 인물이 느끼는 첫사랑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첫사랑을 할 때 느꼈던 설렘을 되새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린 역할을 연기한다고 해서 어려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충분히 저보다 어린 배우가 이 역을 연기할 수 있어요. 그때 느껴지는 새로움도 있겠죠. 캐릭터와 이를 연기하는 배우의 나이 차이를 무시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적어도 인물이 느끼는 감정의 흐름은 제가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첫사랑에 빠져 있을 때 느꼈던 감정이 있고, 그 감정을 회상하고 인물에 대입하며 연습하고 있으니까요. 또 대본에 쓰인 노래와 대사 등에도 이미 그 나이에 쓸 수 있는 단어들로 채워져 있어 이러한 감정을 잘 투영 시키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YAM : 이반에게 ‘사랑’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소년 이반에게 사랑은 붉은 장미 같지 않았을까요? 그만큼 강렬하지만 가시에 찔리면 마음이 따끔거리기도 하고, 가끔 아플 수도 있는 것처럼. 하지만 알면서도 그 아름다움을 거부할 수 없는 것. 그렇게 사랑을 정의하지 않았나 싶어요.”
YAM : 지금 옆에 이반이 있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네가 만약에 사랑을 좋은 방향으로 마무리했다면, 언젠가 네가 살아가는 날들에 있어 좋은 밑거름이 될 것 같아.’ 저도 그랬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요. 과거의 다양한 감정과 과거에 행했던 일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연기를 하는데 있어 그런 기억이 많은 도움이 되거든요. 나이가 더 들어, 지금의 송유택에게 제가 어떤 말을 한다고 해도 비슷할 것 같아요.”
# 2018년, 붉은 정원에서
YAM : 극중 가장 좋아하는 넘버가 있나요?
“‘정원에서 있었던 일’이라는 넘버가 있어요. 처음 지나를 만나고 나서 지나와 있었던 일을 회상하며 부르는 노래예요. 그 안에 주문을 외우는 장면이 있는데 굉장히 귀여워요. 제가 보기엔 그래요.(웃음) 노래 템포도 빠른데, 최상의 딕션으로 잘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가사는 직접 극장에 오셔서 확인하세요.”
YAM : 개막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제일 걱정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소극장에서 공연되다 보니 배우들의 감정이 가깝게 느껴질 거예요. 그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또한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소극장이기에 자리가 넉넉하지 않아요. 일찍 서두르지 않으면 공연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일이 발생할 수 있어요. 그게 제일 걱정이죠.”
YAM : 2018년 관객이 ‘붉은 정원’을 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랑이라는 것은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존재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사랑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어요. 잘못된 사랑인지, 옳은 사랑인지 판단할 수 있지만 그 사랑의 가치를 매기는 것은 관객 본인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을 생각해 보면, 극중 빅토르와 지나, 그리고 이반이 보여주는 사랑이 관객에게도 새롭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어요.”
YAM : 마지막으로 ‘붉은 정원’의 관전 포인트를 꼽아보자면?
“같은 장면을 서로 다른 인물의 시점, 서로 다른 인물의 입장에서 묘사하고 있다는 거예요. 보면서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넘버와 대사가 타이밍 좋게 잘 구성돼 있어요.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 같아요. 원작이 주는 힘은 당연하고, 잘 구성된 글과 작곡가의 곡이 있으니 배우는 잘 표현만 하면 되겠더라고요.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요.”
사진 홍혜리·에디터 백초현 yamstage_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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