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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인터뷰

[인터뷰YAM #1]김경수, 책임감으로 물들인 ‘라흐마니노프’

가장 힘든 순간 찾아와 위로를 안겨주는 작품이 있다. 배우 김경수에게 뮤지컬 ‘라흐마니노프’가 그랬다. 관객도 마찬가지다. 라흐마니노프와 니콜라이 달 박사의 이야기는 관객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앞으로 나아갈 힘을 선물한다. 그래서일까. ‘라흐마니노프’는 초연 이후 6개월 만에 앙코르 공연을 했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재연으로 돌아왔다.

‘라흐마니노프’는 러시아의 천재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가 슬럼프에 빠져 절망하고 있던 시기, 정신의학자 니콜라이 달 박사와의 만남을 통해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번 공연에서 니콜라이 달 박사 역을 맡은 김경수와 함께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 깊어진 ‘라흐마니노프’, 그리고 배우의 연기

“벌써 세 번째 공연이지만 작품을 오랫동안, 많이 한 것 같지는 않아요. 초연도 그렇고 앙코르 공연도 그렇고 이번 재연도 그렇고요. 물론 재연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웃음) 공연 기간을 계산하면 2달도 채 안 되는 것 같아요. 매번 끝날 때마다 아쉬움이 커요. 다 보여주지 못한 것 같은데 끝나는 느낌도 들고요. 이번에는 아쉬움 없이 잘 마무리했으면 좋겠어요.”

공연 기간이 유독 짧았다. 재연 공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번에는 단 37회 공연으로 관객과 만난다. 짧아도 이렇게 짧을 수가 없다. 짧은 공연 기간에도 불구하고 ‘라흐마니노프’에 출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것은 바로 작품이 전해주는 따뜻함 때문이었다. 그 따뜻함이 김경수를 위로했고, 김경수 역시 관객을 위로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다시 무대에 오를 준비를 마쳤다.

 


“제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극중 니콜라이 달 박사가 치료해야 하는 라흐마니노프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에요. 관객들이 이 작품을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말해줘요. 그럴 때마다 큰 보람을 느껴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저 역시 위로를 받는 것 같아요. 최근 들어 고통을 달고 사는 인물을 연기해야 하는 작품을 많이 해서 그런지 저 역시 위로를 받고 싶은 시점에 마침 ‘라흐마니노프’를 하게 돼 더 좋았어요. 그런 매력이 있는 작품이에요.”

가슴 따뜻한 위로를 전해주려 재연으로 돌아온 ‘라흐마니노프’. 완성도 높은 공연을 위해, 작품이 가진 메시지를 더욱 분명히 하기 위해 수정, 보완 작업을 거쳐 관객과 만나게 될 ‘라흐마니노프’는 또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김경수는 “전체적인 내용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 같다”고 귀띔했다.

 

 


“‘라흐마니노프’는 ‘라흐마니노프’답게 음악이 더욱 풍성해졌어요. 처음에는 사중주로 시작했어요. 앙코르 공연에서는 육중주로 변화를 줬죠. 이번에는 기존 현악 육중주 체제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추가돼 팔중주로 돌아왔어요. 배우들은 더 담백하게 연기하는데 그 빈 공간을 음악이 채워주니 굉장히 든든하더라고요.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이 풍성해지니까 작품을 볼 때 듣는 재미가 배가 될 것 같아요. 그것만으로도 큰 변화이지 않나 싶어요.”

음악은 풍성해졌고, 배우들의 연기는 더욱 담백해졌다. 시간과 함께 성장한 배우들의 연기는 이번 ‘라흐마니노프’의 기대 포인트 중 하나. 연습실 에피소드를 묻자 김경수는 “에피소드가 제일 어려운 질문”이라며 한참을 고민했다. 조심스럽게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재미난’ 에피소드는 아니었지만 이번 공연에서 달라진 배우들의 연기를 기대하게 했다.

 


“니콜라이 달 박사 역을 연기하기 위해서는 상대 배우의 눈과 입을 열심히 봐야 해요. 또 그가 말하는 것을 열심히 경청해야 하죠. 그런데 배우들 눈이 달라져 있더라고요. 똑같은 대사를 하는데 그때의 눈이 자신들이 말하고 있는 대사에 더 가까워져 있는 느낌을 받았어요. 마치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대사는 암기의 영역이잖아요. 대사를 거의 잊고 있었는데 연습실에서 이들이 저에게 이야기를 걸어오니 제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알겠더라고요. 신기했어요. 물론 대본과 제가 내뱉은 말이 완벽하게 똑같지 않을 수도 있지만 대사가 술술 나오는 저를 발견하니 재미있더라고요.”

깊어진 배우들의 눈빛은 김경수를 움직였다. ‘라흐마니노프’ 공연을 위해 잠시 쉬고 있지만, 김경수는 최근 뮤지컬 ‘스모크’에서 초 역을 맡아 관객과 만나왔다. 그는 잠시 ‘스모크’ 공연 이야기를 꺼내 상대 배우의 깊어진 연기가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작품의 완성도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 설명했다.

“‘스모크’에서 제가 맡은 초 역할의 대사나 내용이 그렇게 많이 바뀌지는 않았어요. 달라진 것은 상대 배역으로 새로운 배우가 합류했고, 무대가 크게 변했다는 거죠. 똑같은 대사를 해도 똑같이 느껴지지 않아요. 말에 힘이 생겼어요. 관객들이 가슴을 울리는 뭔가가 생긴 것 같다는 말을 해주시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그런 힘이 어디서 생겨나는 건지 생각해봤어요.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작품과 관련된 음악을 들어요. 공연하지 않더라도 말이죠. 저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들 역시 작품을 놓지 않고, 끊임없이 고민을 해왔기에 그런 힘이 생긴 것 아닐까요.”

그러면서 김경수는 입이 마르도록 ‘라흐마니노프’ 주역인 박유덕과 안재영, 정동화의 매력을 칭찬했다. 본인 인터뷰에서 다른 이의 이름을, 다른 배우의 칭찬을 이토록 장시간 한 배우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 그는 칭찬이 아깝지 않은 배우들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애정이 넘치는 김경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세 배우의 공통점은 ‘진지하다’는 것. 하지만 그 진지함은 배우의 개성만큼이나 다양한 색을 띠며 존재감을 발휘했다.

“안재영 배우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진지함을 가지고 있어요. 다른 분들이 보면 연습을 대충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렇게 장난을 치면서도 자신이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굉장히 열심히 찾더라고요. 결코 대충 연습하는 게 아니에요. 연습하다가 갑자기 끊고, 그 순간에 대해 끝없는 토론을 할 때도 많아요. 그 장면이 넘어가지 않아서, 혹은 이 장면을 넘어가기 위해서. 또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연기할 때도 있고요. 그런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불편하지 않아요. 분명 무언가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모두가 잘 아니까요.”
 
각기 다른 진지함을 가진 배우들이 만나 연습실에서 회포를 풀고, 연습에 매진했다. 안재영의 럭비공 같은 매력에 자신은 진지함을 잃고 웃음이 터진다는 김경수는 안재영과 다른 진지함으로 작품에 새로움을 더하는 박유덕 칭찬을 시작했다. 그가 바라본 박유덕의 진지함은 어떤 모습일까.

“박유덕 배우는 아이디어를 많이 제시하는 편이에요. 그가 제시한 아이디어가 작품에 작 들어맞고, 또 관객 반응도 좋았어요. 저보다 동생인데 친구 같기도 하고 형 같기도 하고, ‘빈센트 반고흐’라는 작품을 같이 해서 그런지 몰라도 이제는 형제 같죠. 그만큼 좋아하는 배우예요. 박유덕 배우가 가진 진지함이 저에게 도움이 많이 됐어요.”

김경수는 웃음과 함께 정동화 칭찬을 이어나갔다. 정동화의 진지함 속에는 재미있는 호흡이 들어가 있어 특별함을 더한다.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정동화 매력에 김경수도 푹 빠져 있었다. 칭찬에 인색한, 칭찬을 받으면 부담스러워하는 그에게 정동화는 끊임없이 ‘형 최고’라며 치켜세웠고,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그의 진심을 전해왔다고.

“무대에서도 한결같이 진지하고 재미있어요. 코미디에 능한 친구이기도 하죠. ‘라흐마니노프’를 준비하면서 도움도 많이 받았어요. 정동화 배우가 없으면 니콜라이 달이라는 캐릭터를 완성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어쩌면 축축 처질 수도, 진지한 역할로 남았을 수도 있었는데 정동화 배우가 가지고 있는 진지함 속에 묻어나는 재미가 캐릭터를 살렸어요. 저 역시 그런 모습을 보며 자신을 돌이켜 보고 고민하고 또 고민했어요. 그런 코드를 공부하게 된 계기가 됐죠.”

“진지할 수도 있는데 웃길 수도 있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김경수는 정동화와 늘 같은 역할을 맡아 한 무대에 오르지 못하는 것이 무척이나 아쉽다고 털어놨다. 차기작인 ‘인터뷰’에서 김경수는 정동화와 만났지만, 두 사람 모두 싱클레어 고든 역을 맡아 다시금 한 무대에 오르는 꿈이 좌절됐다. 그는 “무대에서 만나고 싶은데 늘 연습실에서만 만난다. 언젠가는 무대에 같이 서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 배우의 책임감, ‘라흐마니노프’를 물들이다

매 시즌을 함께 해온 덕에 상대 배우의 변화를 감지하기 쉬웠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농익은 연기를 기대하게 하는 성장에 “이번 공연이 재미있을 것 같다”는 확신도 생겼다. ‘라흐마니노프’ 만이 아니다. 김경수는 작품의 탄생을 지켜보고, 성장을 바라보며 장인 정신을 발휘하기로 유명한 배우. 그는 책임감을 이러한 행보의 이유로 꼽았다.

“관객이 그리워하니 제작사 입장에서도 더 빠른 시일 내에 작품을 올리려 하는 것 같아요. 초연을 한 번 하고 나서 ‘내가 할 일은 끝났다’고 생각하는 배우가 있을까요? 재연하게 되면 초연과 똑같이 갈 수도 있지만 다른 것을 더 찾게 되는 것 같아요. 회를 거듭할수록 보이는 것이 다르고, 새롭게 발견하는 것도 많죠. 관객 피드백으로 조금 더 발전하는 것도 있고요. 저 역시 매회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을 어떻게 극에 녹여낼까 고민도 하고, 장단점을 잘 간추려 응집된 무언가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렇기에 재연, 삼연 무대에 오를 때 더 책임감을 느끼고 참여하는 것 같아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김경수의 손길을 닿은 작품은 끝까지 그와 함께했다. 그러다 보니 한 해에 참여해야 하는 작품 수가 늘어갔다. 연습과 공연을 오가는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나날이 늘어가고 이를 지켜보는 관객의 걱정도 깊어지고 있는 상황. 김경수는 “연습 스케줄 조율하는 것이 힘든 부분”이라며 작품 수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운을 뗐다.

“여러 작품을 동시에 한다고 해서 배우 김경수에게 영향을 주는 건 없어요. 체력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역시 제가 책임감 있게 잘 배분하면 돼요. 물론 한 작품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죠. 그러지 못하는 상황도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작품별 매뉴얼이나 디테일을 적어 놓은 노트가 있어요. 그 노트가 있으면 오늘 ‘라흐마니노프’를 하고, 내일 ‘인터뷰’를 하고, 그다음 날 ‘스모크’를 하더라도 흔들림 없이 연기할 수 있어요. 작품의 정서를 정확히 적어놨기에 흔들릴 이유가 없어요.”

큰 틀은 변하지 않고 늘 그 자리에 있다. 빛을 내는 변화는 작은 디테일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 작품이 보석 같았으면 한다”는 마음으로 김경수는 장인 정신을 발휘해 더욱 따뜻한 빛을 뿜어내는 ‘라흐마니노프’를 만들기 위해 섬세한 기술로 작품을 다듬어 나갔다.

“다듬는 과정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찾기보다는 진짜 우리가 내뱉는 대사에 힘이 있는가를 더 고민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음악도 풍성해지고 장면도 많아지면 그것도 나름대로 좋을 것 같긴 해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사실 전과 똑같이 한다고 해 편한 것은 아니에요. 똑같이 하기에 더 불편하죠. 깊이가 없으면 이번 시즌을 하는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잘 다듬어 나가고 싶어요. 그런 과정이 계속 생겼으면 해요.”

 

 

 

에디터 백초현 yamstage_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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