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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인터뷰

[인터뷰YAM #1]‘비클래스’ 연출 오인하의 선택,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그 사이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갈등한다. 선택해야 할 순간조차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방황한다. 어렵게 내린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책임의 무게는 일어설 힘조차 앗아갈 만큼 무겁고 또 무겁다. 어른이 됐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여전히 선택은 어렵고, 그 책임의 무게는 감당하기 어렵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이 무게를 견뎌냈을까.

연극 ‘비클래스’는 오직 능력과 조건만으로 A클래스와 B클래스로 나뉘는 사립 봉선 예술학원의 무한 경쟁 속에서 방황하는 청춘들의 성장 이야기를 진솔하고 현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누군가는 자신의 꿈을 위해, 누군가는 마지못해, 누군가는 어른들의 욕심으로 가장 찬란해야 할 시절을 가장 잔인하게 보낸다. 그들의 모습을 통해 ‘비클래스’는 관객에게 잔잔한 울림과 공감을 선사한다. “나이와 상관없이, 제 안에 있는 여러 모습을 무대로 옮겨 놓은 작품”이라고 밝힌 연출 오인하와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 좋은_사람들 #좋은_인연 #좋은_작품

“개인적으로 그룹 엑소를 좋아해요. 그런 멋있는 고등학생들이 나오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배우로 무대에 올랐을 때 학생 역을 몇 번 해보면서 막연하게 예술을 지향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단순히 공부로 성적으로 내는 것이 아니라.(웃음)”

인사만 하던 사이였다. 제작사 대표와의 인연은 딱 거기까지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인연은 예상치 못한 순간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공연을 제작하고자 하는 바람이 마침내 오인하에게 닿았다. 엑소를 바라보던 오인하는 멋진 고등학생들이, 예술을 지향하며 경쟁하고 상처를 입고 성장하는 과정을 자신의 이야기에 쏟아냈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고민하는 시기가 정해져 있을까요? 그런 물음을 관객에게 던지고 싶었어요. 평생 꿈을 꿀 수 있고, 누군가의 영향을 받아 꿈을 정할 수도 있잖아요. 왜 우리는 이른 나이에 그것을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갈까요? 돌이켜 보면 그런 것 같아요. 그러한 선택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아픈 일이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그 시절을 잊은 채 무감각하게 바라봐요. 내가 지나왔다고 편하게 생각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대본 작업은 즐거운 일과가 됐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일이 ‘딱’ 맞아 떨어졌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 작업이라 특별히 힘든 점도 없었다. 다만 스스로에게 관대하지 못해 채찍질해야 하는 순간이 아주 조금의 힘듦으로 다가왔다. 좋은 연출이 되고 싶다는 바람은 오인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끊임없이 시험했고 확인해야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부족함이 많은 연출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팀 분위기도 워낙 좋았어요. 감사하게도. 경력으로 따지면 함께 한 배우들 중 제일 후배일 것 같아요. 신인처럼 보이는 친구들도 다 연기 경험이 있더라고요. 그런데도 모두 저를 신뢰해줬어요. 신기했죠. 모두 연출로, 또 작가로 제 이야기를 들어주려 노력하더라고요. 연습 끝나고 공연이 올라간 뒤에도 저와 계속 작업 하고 싶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죠. 그래서 그런지 작업 자체가 힘들지는 않았어요.”

 

 


좋은 팀워크는 배우의 신뢰로 돌아왔다. 배우들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자 오인하는 불현듯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렸다. 작품을 준비하며 힘든 점이 없었다던 그의 기억 속 봉인 돼 있었던 ‘힘들었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오인하는 “정신없는 사람들을 통솔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문득 궁금해졌다. 누가 오인하를 가장 힘들게 했을까. 질문을 건네자 그는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사람”이라며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꿔 놓았다.

“격 없이 사람을 대해요. 그러다보니 다소 건방져 보일 수 있어요. 다만 해서는 안 될 말과 단어 사용에 조심하고 있어요. 관계에 있어 불필요한 조심성이 아니라 격을 없애려 노력하는 편이에요. 저의 이런 태도가 상대방을 변화시키더라고요. 점잖은 사람이 비글이 돼 가는 과정을 보며 묘한 쾌감을 느끼곤 해요. 처음에는 다 점잖은 척하는데 결국에는 실패하죠. 서로 물어뜯으며 놀더라고요.(웃음)”

차이를 만드는 건 연출의 작은 변화였다. “불편해하는 것은 경제적이지 않은 것 같다”는 오인하의 철학이 사소한 트러블 하나 없이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이끌어냈다. 또 다른 곳에서는 보여준 적 없는 배우의 진짜 민낯을 드러내게 했다. 이렇듯 무대에서 제대로 물 만난 배우들의 합은 관객 반응으로 이어졌다.

 


“보통은 ‘내가 돈을 주고 이 공연을 본다면’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대중에게 소비되는 것도 중요한 가치잖아요. 취향이야 갈릴 수 있지만 취향 이전에 내가 내 돈 내고 공연을 봤을 때 작품을 잘 봤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 나름대로 객관성을 갖고 봤을 때 ‘비클래스’는 충분히 발전의 여지가 있었고 관객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작품이었어요.”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자기평가였지만, 그 안에 오인하의 확신이 묻어났다. 재연으로 돌아올 것을 확신했던 오인하는 이번 공연을 위해 많은 것을 바꿨지만 보는 이에 따라 ‘무엇이’ 달라졌는지 눈치 못 챌 수도 있다. 그는 ‘건강한 수정 방식’이라며 “연출과 작가의 의도는 남아 있되 더 재미있어졌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택상이라는 아이가 가지고 있는 태도와 정서를 가장 많이 손봤어요. 택상이 분량이 줄어들었죠. 같은 말을 해도 어미에 따라 관객이 느낄 수 있는 정서가 달라요. 아주 단순한 예로 ‘식사를 했느냐’와 ‘밥 먹었냐’가 다르듯 말이죠. 내용을 바꿨다기보다는 조금 더 꼼꼼하게 대사 한 줄 한 줄 보며 내용을 보여주는데 더 나은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선택했어요. 그런 노력이 작품의 몰입감을 높여준 것 같아요.”

또 오인하는 “두 치아키의 춤이 다르다”고 귀띔했다. 이번 공연에서 치아키 역은 배우 김대현과 조원석이 맡았다. 두 배우의 춤을 보고 내린 결정이었다고. 극중 인물에 최적화된 설정이 캐릭터의 매력을 극대화시켰고, 서로 다른 치아키를 보는 재미를 관객에게 선물했다. 이는 치아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피아노를 칠 줄 모르는 배우가 피아노를 쳐야 해요. 텍스트만 보고, 극중 인물이 가진 정서와 드라마만으로 연기하는 것을 뛰어넘어 기능적인 부분까지 소화했으면 했어요. 그러면 더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이번에 따로 오디션을 보지 않았어요. 배우들을 찾아가 1:1로 대화를 나눈 뒤 캐스팅 했어요. 물론 배우들이 느끼기에 오디션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거예요. 연기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요. 인간적인 면을 더 많이 봤죠. 그래서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온 것 같아요.”

 


캐스팅은 신의 한 수였다. 그간의 이미지를 지운 신선한 시도는 관객의 흥미를 돋우기 충분했다. 흥미뿐 만이 아니었다. 새로운 도전으로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 배우에 대한 믿음도 높아졌다. 최적화된 캐스팅은 어떤 조합으로 봐도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더욱 옹골차게 여문 ‘비클래스’에 연일 호평이 쏟아지는 까닭이다.

“배우라면 본인의 연기 스펙트럼이 넓어졌으면 하는 욕심이 있을 것 같아요. 고착화 돼 있는 본인의 이미지가 아닌 다른 분야에 도전한다면 더 재미있게, 또 능동적으로 작업하지 않을까 싶었죠. 평소에도 잘하는 것을 맡아 하던 대로, 마치 반복되는 작업을 하는 것보다 새로운 것을 맡아 처음부터 알아가고 표현하는 재미를 알려주고 싶었어요. 제가 배우를 했기에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관객은 무대에서 배우를 만나잖아요. 무대의 배우 모습이 흔히 말해 ‘본체’의 이미지가 되는 경우가 있어요. 배우라면 그런 것을 타파하고 싶어 할 것 같았죠.”

신선한 도전이었다. 노래 못하는 택상 역에 흔들림 없는 가창력을 자랑하는 배우 박은석이 캐스팅됐다. 싸움만이 자신의 모든 것인 듯 세상에 독기를 품고 살아가는 수현 역을 조풍래, 양지원이 맡은 것도 마찬가지. 그럼에도 무대 위 이들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듣는 이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음치로, 작은 동작에도 괜히 움찔거리게 만드는 폭력성을 드러내며 완벽하게 관객을 속이고, ‘비클래스’의 완성도를 높였다.

 


“저는 어른이 된 택상이가 작가로 있을 때, 또 학생으로 돌아와 무대에 섰을 때 모습이 박은석 배우가 가진 이미지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장기(長技)로만 공연을 만들기에는 아깝잖아요. 작품에 더 잘 어울리고 맞는 옷이 있는데, 살아남을 수 있는 카드 때문에 장기를 말살시키는 것이 아쉬웠어요. 조풍래 배우도 마찬가지예요. 처음에는 피아노 천재와 싸움 잘하고 욕 잘하는 친구 중 선택하라고 했는데 피아노 천재를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막판에 제가 뒤집었어요.”

오인하가 사랑한 ‘의외성’은 적재적소에 캐스팅을 완료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양지원의 캐스팅이 그러했다. 오인하는 첫 리딩 날을 떠올리며 “입 밖으로 욕을 내뱉는 것도 불편해 했다”고 전했다. 전형적인 교회 오빠 스타일에 신앙심도 깊었던 양지원은 결국 해냈고, 그만의 이수현을 무대에 그려놓는데 성공했다.

“이이림 배우는 저와도 잠깐 만난 사이여서 제가 연락을 했을 때 많이 놀랐다고 하더라고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도 안 시켜주는 느낌을 개인적으로 받았어요. 즐거운 도전이 되지 않을까 싶었죠. 관객에게 보이는 직업이라 그 자체가 스트레스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증명할 기회가 될 수도 있잖아요.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으니 판단은 관객이 해주겠죠? 이들이 여러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아닌지. 좋은 평가를 받는다면 행복한 일이죠.”

확신에 찬 캐스팅이 완료됐고, 막이 올랐지만 여전히 오인하는 극장을 찾는다. 거의 매일, 객석에 앉아 공연을 관람하며 연출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선다. 스스로 부족함이 많은 연출이라 평한 오인하는 매일 다른 공연을 보며 영감을 얻고, 다시 ‘비클래스’를 준비한다면 어떤 것들을 다듬어 나가고 추가할지 등을 생각한다고.

“공연을 보고난 뒤 배우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들이 무엇일까 생각해요. 때로는 그 말들이 공연의 질을 높여주기도 하죠. 그래서 모니터링을 자주해요. 다른 이유로는 팀 분위기가 너무 좋기에 응원 해주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에요. 제가 무대에 같이 설 수 없으니 객석에서 응원을 보내는 거죠.”

연출이 매일 같이 빠짐없이 공연장을 찾아 모니터링을 한다. 배우 입장에서 부담스러울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오인하는 “부담을 안 느끼는 것 같다”고 정리했다. 외려 배우들이 연출의 공연장 출입을 더욱 반기고 있다고. 그는 “저 없을 때 더 장난 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 답답해하는 것 같다”고 배우들의 입장을 대변했다.

“감정을 섞어 노트하는 타입이 아니에요. 감정 없이 하고자 하는 말을 다이렉트로 하는 편이죠. 감정이 섞이면 상처 받기 쉬워요. 다행히 함께 하는 스태프도, 배우들도 저를 빨리 파악한 것 같아요. 그래서 노트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주로 변질되는 것을 많이 이야기해요.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는 과한 감정들이 있어요. 그것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때, 그런 것들을 주로 말해주죠. 공연을 처음 보는 관객을 위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경각심을 갖자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사진 홍혜리·에디터 백초현 yamstage_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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