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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인터뷰

[인터뷰YAM #1] 양희준, ‘외쳐 조선’을 노래하다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등장부터 심상치 않다. ‘이리 오너라’. 사람들을 속이는 재주가 상당하다. 그의 말 한마디에 모두 고개를 숙인다. 의심의 눈초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외려 더 당당하게 ‘아래로는 존경을 표하고, 위로는 그 충심에 성은을 내리시는 북촌 세도가’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호패를 보여달라는 말에 잠시 멈칫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다시 양반 행세를 이어간다. 뮤지컬 ‘스웨그 에이지 : 외쳐, 조선!(이하 외쳐 조선)’ 속 홍단의 이야기다


‘외쳐 조선’은 2018 우수크리에이터 발굴 지원 사업’ 선정작으로, 지난해 11월 이틀간의 쇼케이스로 관객과 만난 바 있다. 올해에는 ‘2019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올해의 레퍼토리 뮤지컬 부문’에 선정돼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배우 양희준은 극 중 홍단을 맡아 무대에 오르고 있다. “부조리한 것을 향해 소신 있게, 당당하게 외치고, 그러한 외침으로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고자 하는 작은 소리를 담은 작품”이라고 소개한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눠봤다.

 

 


“대본을 받기 전에 공연으로 먼저 ‘외쳐 조선’을 접했어요. 당시 황민수 배우가 단으로 무대에 오르고 있었거든요. 저와는 정말 친한 선배예요. 선배의 공연을 보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그렇게 ‘외쳐 조선’을 보게 됐는데 정말 재미있고, 유쾌한, 그러면서도 감동적인 공연이더라고요. 이후 민수 선배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공연을 이어갈 수 없어 단 역할에 공백이 생겼어요. 그때 연출님이 저를 찾아와 같이 했으면 좋겠다며 대본을 주셨어요. 워낙 재미있게 본 작품이라 대본을 받은 그 날 공연을 보면서 제가 느낀 것들, 좋은 점과 아쉬운 점,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성 등을 이야기했어요. 연출님 역시 제 의견을 무시하지 않고 경청해줬어요. 그렇게 함께하게 됐죠.”

양희준과 ‘외쳐 조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그저 선배의 공연을 보고 싶었을 뿐인데, 어느새 그 무대에 올라 ‘단’을 연기하고 있다.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작업의 결과물은 지난해 열린 ‘2018 스타라이트 뮤지컬 페스티벌(이하 SMF)’ 무대에 오르며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흥겨운 무대와 배우들의 뜨거운 에너지는 페스티벌을 찾은 관객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기며 다음을 기대하게 했다. 

 


“제작사 대표님의 제안으로 참여하게 됐어요. 저희에게는 모험 같았고, 말 그대로 도전이었어요. 학생들이 설 수 있는 무대라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이미 무대 경험이 많고, 관객의 사랑을 받은 배우들이 서는 무대라 생각했으니까요. 그 무대에 올라 혹시라도 폐를 끼치는 게 아닐까, 또 ‘외쳐 조선’ 쇼케이스를 선보이기도 전에 실망을 안겨주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많았어요. 다행히 반응이 좋았어요. 좋게 봐줘 정말 감사했죠.”

# 관심을 받고자 한다면, 사고를 쳐라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도 조마조마했다던 양희준의 말과는 달리 관객 반응은 뜨거웠다. 박수가 쏟아졌다. 관심은 페스티벌 무대로 그치지 않고 쇼케이스까지 이어졌지만, 쇼케이스 반응은 싸늘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상당했다. 관객은 당근이 아닌 채찍을 선택했다. ‘외쳐조선’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곧 냉정한 평가로 이어졌다. 창작진과 배우들 역시 이러한 평가를 흘려듣지 않고 새겨들었다. 그렇게 새로운 ‘외쳐조선’이 다시금 무대에 오를 준비를 시작했다. 

 

 


“재미있는 건 다 넣고 싶었던 저희의 욕심이 그대로 보이더라고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작품이 저희만 재미있으면 안 되잖아요. 관객 반응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쇼케이스 이후 그러한 평가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이후에는 불필요한 부분을 지우는 작업을 계속 했어요.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구멍도 찾아냈고 그 구멍을 채우는 방법도 모색하며 작품을 다듬어 나갔어요. 조금  객관적으로 ‘외쳐 조선’을 바라보게 됐죠.”

대대적인 수정 작업에 양희준도 목소리를 더했다. 양희준은 주인공 단이 홀로 돋보이기보다는 주변 인물들과의 호흡을 통해 단의 성장이 자연스럽게 보이길 바랐다. 그의 바람이 단의 캐릭터와 분량에 변화를 야기했다. ‘외쳐 조선’이 학생공연에서 머무르지 않고, 더 많은 이들이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처럼 곳곳에서 묻어났다. 

 


“극 중 인물이 주변 인물들로 인해 상처를 받고, 그 상처를 극복해나가는 모습이 잘 그려졌으면 했어요. 서로에게 영향을 받고 성장하는 모습이 잘 보인다면 작품의 메시지 또한 관객에게 더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그래서 연출님에게 말했어요. 제 역할의 분량이 줄어들고, 관심이 주변 인물로 옮겨 가는 것에 아쉬움은 전혀 없었어요. 저 역시 그들에게 영향을 받고, 그로 인해 얻은 것도 많고, 나아가 극 중 인물인 홍단도 성장할 수 있었으니까요.”

인연의 끈은 꽤 단단하게 양희준과 ‘외쳐 조선’을 여몄다. 우진하 연출은 양희준에게 쇼케이스 무대에 함께 서 줄 것을 제안했다. 양희준 집 앞까지 찾아오는 고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에게 제안한 역할은 관군1이었다. 어떤 역할이든 함께하고 싶은 마음뿐이었기에, 연출의 장난도 눈치채지 못하고 양희준은 그마저도 영광이라며 감격했다. 

 

 


양희준은 그렇게 쇼케이스에 이어 본공연 무대에 ‘단’으로 올랐다. 모든 것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음을 강조한 그는 여전히 얼떨떨하다며 멋쩍어했다. 그러면서도 본공연 연습에 돌입하며 마주하게 된 새로운 경험을 떠올리며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학교 다닐 때는 선후배들이 모여 작품을 만들었기에, 나이 차이가 크게 나지도 않았고 경력 차이도 크지 않았어요. 이번에 ‘외쳐 조선’ 본공연을 준비하면서 그러한 경험을 처음 해봤어요. 다행히 함께 한 배우들이 그런 부분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먼저 다가와 주는 것은 물론이고, 조언도 아낌없이 해주고, 분위기 자체를 편안하게 만들어줬어요. 같이 논다는 생각으로 연습할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써줬어요.(웃음)”

 


# 내가 바로 조선에서, 제일 씩씩

오랜 노력의 결과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외쳐 조선’ 본공연, 그 첫 번째 무대를 양희준이 맡았다. 관객 앞에 선 그는 노련하게 자신의 기량을 발휘했다. 양희준이 입은 ‘단’이라는 옷, 그 옷은 전혀 어색하지도 무겁게도 느껴지지 않았다. 깃털처럼 가볍게 무대에서 노니는 그의 모습에 박수가 쏟아졌다. 단이 양희준이고, 양희준이 이미 단인 것처럼. 

“단이는 정말 눈치도 없고, 자기 멋대로 사는 인물이에요. 그 시대에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면 정말 예의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미워 보일 수도 있는데 마냥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이 있어요. 홍단만의 밝음, 유쾌함이 있죠. 보는 이들을 전염시키는 특유의 긍정적인 에너지 말이에요.”

 

 


절대 무너지거나 쓰러지는 법이 없다. 사람들의 매질에도, 손가락질에도 꿋꿋이 일어나 다시 노래한다. ‘내가 제일 씩씩’이라며 자신을 다독일 줄도 안다. 양희준은 극 중 인물의 밝음을 칭찬하면서도 그 안에 녹아 있는 쓸쓸함과 외로움도 놓치지 않았다. 그는 “되게 슬프고 외로운 인물”이라고 덧붙였다. 

“홍단이 철부지처럼, 예의 없이 행동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요. 단이에게 유일한 친구는 자모 아저씨였어요. 아저씨가 죽은 뒤로는 그 무덤 앞에서 혼자 놀아요. 매일 찾아가 일과를 이야기하죠. 그러다 시조를 접하게 되고, 이후에는 시조가 유일한 친구이자 놀이가 돼요. 늘 혼자였기에 사람들의 관심을 누구보다 받고 싶어 하는 홍단이에요. 시조를 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고 하는데 방법을 모르니 더 예의 없이 막 대하는 거예요. 사랑받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는 거죠. 그래서 단이에게 더욱 애착이 가는 것 같아요.” 

 


이러한 애착은 캐릭터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비롯됐다. 양희준은 자신과 극 중 인물의 닮은 점에 집중했다. 우진하 연출이 그에게 요구한 바도 이와 같았다. 연출은 양희준에게 “이렇게 만든 단도 좋지만, 너에게만 보여지는 이미지와 말투, 행동이 굉장히 단과 같아 이 작품을 함께 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그런 부분을 고민해줬으면 한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너다움을 단이에게 녹여달라”고 부탁했다. 양희준은 연출의 말을 새겨들었고, 자신에게서 극 중 인물의 모습을 찾아냈고 그를 캐릭터에 녹여내며 자신만의 홍단을 무대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연출의 바람은 비단 양희준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이번 공연에서 홍단 역은 양희준 외에도 이휘종, 이준영이 맡았다. 두 배우 역시 자신만의 단을 무대서 선보이며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두 배우가 그린 단을 처음 마주한 날 양희준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고 고백했다.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물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충격이었죠. 저 혼자 단이를 만들었다면 한정적인 부분이 더 많았을 거예요. 두 배우가 있어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극 중 인물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죠.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 각각의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정말 도움이 많이 됐어요.”

# 피를 나누지 않은 가족, 골빈당 

시조를 잃은 시조의 나라에서 여전히 시조를 외치는 이들이 있다. 바로 비밀시조단 ‘골빈당’이다. 홍단은 잃어버린 붓을 찾기 위해 진과 시조 대결을 펼쳤던 국봉관을 다시 찾는다. 그는 그곳에서 의문의 사내에 납치당해 골빈당 아지트에서 그들과 처음 마주하게 된다. 

 


“그동안 멀리서만 골빈당을 봐 왔어요. 늘 탈을 쓰고 다니기에 이들의 얼굴을 알지 못하죠. 그래서 처음 봤을 때 ‘당신들은 누구요?’라고 물어요. 골빈당에 대한 첫인상은 좋지 않아요. 자신도 시조를 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은데, 골빈당이 시조로 사람들의 관심을 다 가져가거든요. 그렇게 잔뜩 질투가 나 있는 상황에서 처음 만나게 된 거죠.”

골빈당 식구들은 저마다 역할이 나눠 있다.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조선에서 사라져 버린 시조를 다시 일으켜 세울 계획을 세운다. 홍단이 바라본 골빈당 식구들은 어떤 모습일까. 양희준은 “순수 누님은 다가가기 어렵고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의 소유자다. 말을 하지 않는 인물이라 홍단과는 정반대의 캐릭터”라며 “나중에는 누님이 말을 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고, 나와 같은 아픔이 있다는 걸 알고 나서는 조금 더 애틋한 관계가 생기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기선 형님은 거짓말 못 하고 우직한 스타일이에요. 종일 무게만 잡고 있으니, 홍단이 보기에는 재미없는 인물이라 쉽게 다가가지 못하죠. 객석에서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매 장면에서 기선 형님이 홍단에게 많은 말을 건네요. 시조자랑 예선전과 본선에게 ‘단아, 괜찮다’, ‘단아, 흔들리지 마라’ 등과 같은 말을 하거든요. 믿음이 가는 형님이에요.”

우직한 형님, 기선과 달리 호로쇠와는 만난 순간부터 티격태격하며 날을 세운다. 양희준은 “친구 같은 형님이다. 친구처럼 매일 싸우고, 서로 못 물어뜯어 안달이 났지만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 이제는 얼굴만 봐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고 애틋한 관계를 고백했다. 이들을 이끌고 있는 십주 역에는 배우 이경수와 이창용이 맡아 서로 다른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이경수 배우의 십주는 아재 향기가 물씬 풍겨요. 하는 말들이 정말 썰렁한데 정작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스타일이에요. 아저씨 같죠.(강조) 그렇기에 이후에 오는 특유의 짠함이 있어요. 춤도 격하게 추기보다는 가볍게 춰요. 그런 부분이 아버지가 같은 느낌을 줘요. 필요할 때는 저를 꽉 잡아주기도 하고, 의지할 수 있는 큰 나무 같은 느낌이에요. 이창용 배우의 십주는 아버지보다는 삼촌 같아요. 같이 잘 놀아주는 삼촌이죠. 두 배우의 십주가 정말 달라서 같이 무대에 오르면 다른 웃음과 눈물이 나와요. 늘 똑같은 공연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즐겁게 호흡을 주고받고 있어요.”

질투로 가득했던 골빈당과의 첫 만남 이후, 홍단에게 부채 하나가 건네진다. 아버지가 남긴 부채. 십주는 그 부채를 단에게 전해주기 위해 오랜 시간 그를 찾아다녔다고 고백한다. 아버지의 억울함을 알게 된 홍단은 이후 골빈당과 함께한다. 함께한 시간보다 서로 모른 채 지내온 세월이 더 많은 이들이지만 ‘골빈당은 피를 나누지 않은 가족’이라던 그들의 신조에 걸맞게 어느새 가족 같은 모양새를 갖춰나간다. 홍단도 오래전부터 함께 했던 것처럼 골빈당에 스며든다. 

 

 


“처음으로 생긴 동료이자 가족이에요. 단이에게는 그랬어요. 그렇기에 더 크게 골빈당 식구들이 다가왔던 것 같아요. 아무도 먼저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았기에, 그런 경험 자체가 없었으니 더더욱 그랬죠. 그래서 골빈당 식구들이 고마워요. 왜 홍단이 골빈당과 함께했는지 묻기보다 골빈당에게 왜 홍단과 함께하려 했는지 묻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자모라는 인물이 골빈당에 어떤 존재였기에, 이런 홍단을 이해하고 걷어주는 걸까 싶어요. 감옥에서 그렇게 나온 이후에도 다시 다가와 주잖아요. 단이에게 골빈당은 정말 소중하고 가족 같은 이들이라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어요.”

# 그 소원 다 함께 응원하며

골빈당과 함께하며 홍단의 인생도 변화를 맞이한다. 골빈당의 활약은 결국 임금 귀에 닿았고 어린 임금은 선왕의 뜻을 받들어 15년 전 폐지했던 시조자랑을 부활시킨다. 내로라하는 당대의 시조꾼들이 모두 모였다. 조선팔도 최고의 무대가 펼쳐졌다. 시조 마술사 이금결은 ‘나비야 청산가자’며 기상천외한 묘기를 선보였고, 청산아이들서울은 ‘누릉지밥 누렁이밥’을 외치며 가공할만한 시창력으로 박수를 받았고, 흑분훙은 흥겨운 노래와 반전 넘치는 두릅 향으로 웃음을 터뜨렸지만 ‘불호’를 받으면 예선전에서 탈락했다. 

 


“예선전은 언제 봐도 정말 재미있어요. 그래서 늘 위험한 상태예요. 자칫 잘못하다가는 홍단이 아닌 배우 양희준으로 무대를 즐겨버리게 되거든요. 그렇기에 더더욱 조심하는 장면 중 하나예요. 웃음이 터져도 단으로서 그 무대에 올라 웃어야 하는데 양희준이 더 즐거워 보이면 안 돼 조심하고 있는 장면이에요.”

‘수애구’로 이름을 바꾸고, 탈을 벗고 예선전에 참가했던 골빈당은 유일하게 ‘호’를 받으며 결승전에 진출했다. 예선전 이후 사람들의 반응도 달라졌다. 보기만 해도 화를 내고 손가락질하던 이들이 이제는 ‘외쳐 호오 호’라며 골빈당의 시조를 노래하며 존경 어린 눈빛으로 바라본다. 본선 진출을 자축하는 술을 나눠 마시며 각자의 소원을 말하며 흥을 돋운다. 정작 홍단과 십주 만이 소원을 이야기하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낸다. 

 

 


“‘내 소원은 뭘까’라며 홍단도 잠깐 고민해요. 하지만 결국에는 그 답을 찾지 못해요. 질문만 하고 답은 찾지 못하는 거죠. 이미 소원을 이룬 상태이니까요. 그 자리 자체가 단이에게는 가장 행복하고 소중한 순간이에요. 골빈당과 함께 한 가장 행복한 순간이고, 사람들과도 처음으로 어깨동무하고 함께 노는 거잖아요. 이미 홍단은 소원을 이룬 것처럼 행복한 상황이에요.”

양희준도 홍단과 다르지 않았다. 그 역시 ‘소원’을 묻는 말에 “평소에는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소원을 말했다”며 “지금은 홍단처럼, 좋은 사람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공연하고 있다는 것이 마냥 행복하다. 홍단이 사람들과 어울려 놀 듯, 그렇게 무대에서 행복하게 놀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홍단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권력자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백성을 탄압했고, 등을 돌린 백성들은 골빈당을 향해 다시금 돌을 던졌다. 백성의 반응은 싸늘하게 식었고, 홍단은 달라져 버린 사람들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억울함과 분노는 더욱 커졌다. 마지막 무대를 마친 뒤 홍국은 골빈당에 역모죄를 씌워 그들을 가뒀다. 골빈당을 구하기 위해 진이 나섰지만, 상황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홍단은 진이 시조대판서 홍국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고 분노했다. 관계에 금이 가는 소리가 객석까지 전달됐다.

“진이 시조대판서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아버지 생각이 제일 먼저 났어요. 어쨌든 아버지를 죽인 사람의 딸인 거잖아요. 진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뻔뻔하게 저와 생활하고, 저와 가족인 것처럼 행동했어요. 그러한 것이 홍단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하는 포인트예요.”

 

 


배신감은 함께한 세월로도 막을 수 없었다. 그간 진이 어떤 마음으로 골빈당 활동을 해왔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을 그지만, 그 순간만큼은 배신감에 두 눈이 멀고 만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힘들었다던 양희준의 말처럼, 홍단은 ‘나만 몰랐던 거지. 저 시조대판서의 따님과 잘 해보시오. 저 양반이 잃을 것이 뭐 있겠소. 결국 제 아비가 시조대판서인데’라며 모진 말로 상처를 준다. 그 말이 진이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상처를 내고 있다는 걸 알지 못한 채.

“진이가 홍단을 찾아와 자신도 어머니를 잃었다고 고백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때 홍단의 눈빛이 많이 흔들려요.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진이가 시조대판서의 딸이고, 양반이기에 마냥 행복하고, 부족함 없는 삶을 살았을 거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나아가 나와 같은 상처가 있는 아이라는 것도 알게 되죠. 그런데도 진이는 해야 할 일이 남았다며 다시 궁으로 돌아간다고 말해요. 홍단은 그간 자신이 받아온 상처가 너무 커서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데 있어 늘 망설이고 주저해왔어요. 그런데 진이가 ‘잘 생각해봐. 너도 아직 할 말이 남았잖아’라고 하는데 그때 어떠한 결심을 홍단도 하게 돼요. 그래서 그도 다시 궁으로 가게 되는 거예요.”

 


그저 작은 외침이었다. 세상을 바꿀 거란 기대를 할 수조차 없는 작디작은 소리였다. 그러나 그 외침이 결국에는 세상을 바꾸고 백성의 통곡 소리를 멈추게 했다. 당연한 일인가 의심했던 모든 것이 더는 당연한 일이 되지 않는 세상이 찾아왔다.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부끄러운 조선이 아닌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시조의 나라에서 시조를 당당히 노래할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시조자랑 우승자에게 시조대판서 자리가 약속됐지만, 홍단은 시조대판서가 되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건 단이가 생각한 행복이 아니거든요. 인생의 목표도 시조대판서가 되는 게 아니었기에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 사람들과 어울려 시조를 노래하며 살았을 것 같아요. 소소하게 삶을 즐기면서 말이죠. 그것이 단이가 생각한 ‘행복’이자 제가 생각하는 작품의 엔딩이에요.”

오랫동안 준비해왔다. ‘외쳐 조선’과 함께한 시간만큼 작품을 향한 마음도, 단이로 무대에 오르는 순간도 매회 무르익어 갔다. 짧은 공연 기간이 아쉬울 따름이다. 양희준은 “함께 무대에 오르는 배우마다 모두 호흡이 다르다. 어떤 페어로 보느냐에 따라 호흡이 달라진다. 그때그때 맞는 연기를 하고 싶다. 그래야 조금 더 진실하게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며 “약속된 틀 안에서 다양하고, 능동적으로 단이를 표현하고 싶다. 마지막까지 ‘신선하다’, ‘재미있다’는 반응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안주하지 않고 언제나 생동감 넘치는 공연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을 남기며 인터뷰를 마쳤다.

 

사진 제공 : PL엔터테인먼트, 얌스테이지DB 

 

 

 

에디터 백초현 yamstage_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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