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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인터뷰

[인터뷰YAM #1]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 김태훈의 확신

설마’하는 순간, 현실이 된다. 상상하는 모든 것이 무대에서 그대로 이뤄진다. 무너질까 싶으면 무너지고, 넘어질까 싶으면 넘어진다. 열쇠는 연필이 되고 꽃병은 노트가 된다. 무대에서 불가능은 없다. 불가능도 가능으로 바꾸는 마법이 벌어지는 곳, 그곳이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 무대다. 배우들의 열연은 실수로 어긋나 버린 이야기를 자연스러운 한 편의 ‘연극’으로 재탄생시킨다. 관객은 어떻게든 진행되는 공연에 박수갈채를 쏟아낸다. 웃음을 터뜨린다.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은 ‘뭔가 점점 잘 못 되어가는 연극’이란 뜻으로 극중극 형식을 취한다. 작품 속 콘리 대학 드라마 연구회는 1920년대를 배경으로 미스터리 장르 연극 ‘해버샴 저택의 살인사건’을 공연하고자 한다. 드라마 연구회 사상 최초로 연구회 회원 수와 배역 수가 제대로 맞아떨어진 공연은 평온하게 시작되지만 이후 점차 문제가 발생하고, 급기야 음향장비와 조명이 고장 나는 어처구니없는 재난과도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 무대는 엉망진창이 돼 버린다.

극 중 세실 해버샴과 정원사 아더로 분해 무대에 오르는 맥스는 한 번도 무대에 서 본 경험이 없다. 그는 무대에 오르기 위해 대사를 외웠고 가르쳐준 대로 정확히 해낸다. 다른 배우들과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관객을 사랑하고, 관객이 웃어주면 그것으로 행복하며 있는 그대로의 무대를 즐긴다. 이번 공연에서 맥스 역은 김태훈이 맡았다. 엉망이 된 무대에서 정해진 대로 대사를 이어나가고, 관객의 관심에 해맑은 미소 짓는 그의 모습에 저절로 시선을 빼앗긴다. 김태훈과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 특별했던 오디션, 평범했던 일상

“저는 학교를 졸업하고 무대에 오르기까지 쉬는 시간이 길었어요. 쉬면서 무대에 오르고 싶다는 바람이 간절했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코미디 작품을 꼭 해보고 싶었어요. 오디션 사이트에서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 오디션 소식을 접했어요. 맥스 역할 소개에 ‘열심히는 하지만 무대 경험은 없고 관객에 관심을 받는 것을 좋아하는 캐릭터’라고 적혀 있었어요. 그 글을 보는 순간 예전의 제 모습이 겹쳐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꼭 해보고 싶었어요. 그러한 생각으로 오디션에 지원했죠.”

한국 초연을 위해 특별한 오디션이 진행됐다. 연극의 기본기를 심사하는 1·2차 오디션을 통과한 배우들은 영국 협력 연출 션 터너(Sean Turner)의 요청으로 3~40명씩 그룹을 지어 오디션장에 입장했다. 함께 놀고 즐기는 과정을 통해 호산, 선재, 이정주, 손종기 ,고동옥, 김강희, 이경은, 김태훈, 이용범, 고유나, 정태건 등 11명의 배우가 최종 선발됐다. 이러한 오디션은 공연 시작과 동시에 주목을 받았다. ‘특별한’ 오디션을 통과한 ‘특별한’ 배우들. 김태훈은 이러한 평가에 수줍게 웃었다.

 


“외부 작품에 참여한 경험이 적어 다른 공연 오디션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지 못해요. 그래도 이번 오디션이 좋았던 것은 심사하는 사람과 심사를 받는 배우 사이에 형성되는 ‘갑을관계’가 없었다는 거예요. 분위기 자체가 달랐어요. 같이 게임 하면서, 캐릭터나 장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작품을 만들어갔죠. 그렇게 오디션을 봐서 그런지 몰라도 마음이 편안하고, 편하니까 더 연기할 맛이 나더라고요.”

오디션이 주는 특유의 긴장감을 느낄 새도 없이 끝나버렸다. 준비해간 것을 모두 보여줬는지, 확신이 서지 않은 채 끝나버린 ‘이상한’ 오디션이었다. 극중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 그는 ‘관객의 반응에 즐거워하고, 그때부터 무대를 즐기기 시작한다’는 소개 글을 떠올렸다. 평소대로 골방에 들어가 오디션 준비를 했지만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즐거움은 노력한다고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김태훈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생각을 바꿨고 골방에서 나왔다.

 

 


“내가 언제 즐거움을 느끼는지 생각했어요. 놀이공원에 가서 놀이기구를 타면서 대사 연습을 했죠. 준비 과정이 이렇다 보니 오디션장에서 ‘이 캐릭터를 어떻게 보여줘야지’, ‘대사를 어떻게 표현해야지’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보다 감사한 마음이 더 컸어요. 오디션을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죠. 준비한 것과 다른 부분도 있었지만, 심사위원들이 요구하는 것에 자연스럽게 동화될 수 있었어요.”

김태훈은 오디션장에서 만난 배우 이정주를 기억했다. 이정주는 데니스 역을 맡아 극 중 퍼킨스 집사로 무대에 오른다. 김태훈은 “진짜 캐릭터 설명에 나와 있는 모든 것을,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표현하더라. 그냥 그 사람이었다. 정말 신기했다. 측은하고 불쌍해 보인다고 적혀 있는데 그 자체여서 오디션인데도 불구하고 공연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예측할 수 없었던 오디션. 그만큼 ‘합격’을 가늠하는 것도 어려웠다고.

 


그는 “1차부터 시작해서 4차까지 오디션을 봤다. 당연히 1차에서 떨어질 줄 알았다. 1차 오디션에서 연출님이 그랬다.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고. 대사를 정말 빠르게 처리했다”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망한 줄 알았는데 연락이 왔다. 감사한 마음으로 다녀오자는 생각으로 2차 오디션에 참석했다. 계속 합격 소식을 듣게 되더라”라며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최종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정말 다리가 풀렸어요. 마지막 오디션에서 저와 같은 역으로 오디션을 본 친구와 술을 마시고 있었거든요. 그 친구가 저보다 오디션을 잘 본 것 같아 속상한 마음에 술을 마셨어요. ‘그래, 내가 처음부터 어떻게 붙겠어’라는 생각으로 말이죠. 연락이 와서 재차 확인했어요. 혹시 동명이인이 있지 않을까 싶었죠. 얼마나 기뻤냐 하면은요, 술을 마시다 합격 소식을 듣고 집에 가서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달리면서 소리 질렀어요. 기분이 정말 좋았거든요.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서 소리를 지르고 또 질렀어요. 소름 돋았죠.”

 

 

 

# 오디션, 다음은 연습과 공연

긴 시간에 걸쳐 진행된 오디션에 당당히 합격했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지만, 김태훈은 감사한 마음으로 모든 오디션에 참여했고 자신의 이름을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 초연 출연자 명단에 올리는데 성공했다. 공연을 올리고 관객과 만나기 위해 이번에는 연습이라는 관문이 남아 있었다.

“연습이 어렵지는 않았어요. 기본적으로 팀 분위기가 좋았거든요. 부족한 점이 있으면 같이 ‘으쌰으쌰’하는 분위기였어요. 그래서 정말 힘을 많이 얻었어요. 따라오는 속도가 조금 느리면 조급하게 보채지 않고 느긋하게 기다려줬어요. 슬랩스틱이 많고, 무대가 무너지고, 그러니 위험하지 않을까 많이들 걱정하더라고요. 배우들도 이런 공연은 처음이다 보니 힘들다기보다는 외려 더 재미있게 연습했던 것 같아요.”

 


관객의 걱정은 하나다. ‘다치면 어떻게 하지?’. 그만큼 위험 요소가 곳곳에 포진돼 있다. 무대는 무너지고, 무너지고, 또 무너진다. 무대는 무너지고 배우들은 여기저기 부딪히고 넘어지고 구르고 쓰러진다. 끌려나가는 이도 있다. 돌아왔을 때 무대는 이전의 그 무대가 아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진짜’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오는 것도 당연하다.

“배우도 사람이다 보니 조금씩 어긋나는 부분이 있어요. 그로 인해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죠. 모든 배우가 섬세하게 약속한 것들을 지켜주고 있어요. 연습 과정에서 어떤 것이 위에서 떨어졌을 때 어느 정도 위치에 서 있으면 다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그런 것을 서로 지켜주고 있어요. 그래서 아직 사고가 나지 않았어요. 연습할 때부터 ‘안전이 제일’이라고, 안전을 강조해왔기에 가능한 것 같아요.”

 

 


안전한 공연을 위해 연습실에는 실제 무대와 같은 세트가 세워졌다. 연습을 거듭하며 어떤 상황에서 무엇이 떨어질 때 어떻게 있어야 하는지 합을 맞췄다. 실제 무대를 방불케 하는 연습으로 위험을 대비했다. 여전히 배우들을 긴장시키는 진짜 ‘위험’은 따로 있었다. 바로 웃음이다. 김태훈에게 ‘웃음참기’는 여전히 풀어야 할, 그럼에도 쉽게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다고.

“맥스 같은 경우, 산드라가 기절하는 장면이 있는데요. 정말 심각한 상황인데 극은 계속 이어나가야 해요. 산드라가 기절하지 않은 상황으로 대사를 이어가는 것이 정말 웃기더라고요. 대사를 할 때 선배들 눈을 보면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표정이 읽혀서 더 웃겨요. 웃음을 참는 건 지금도 힘들어요. 어떻게 참느냐? 방법은 없는 것 같아요. 관객이 보기에 티 안 나게 더 진지하게 연기하고 있어요.”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은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싶을 때 보면 좋은 극’으로 입소문을 탔다. 지난 2012년 런던의 캐쥬얼한 프린지 공연장 Old Red Lion Theatre & Pub에서 코미디 단막극으로 선보인 이 작품의 첫 공연 관객수는 고작 4명이었다. 그러나, 기발한 아이디어와 엄청난 유머로 중무장한 이 작품은 점점 관객들 사이에서 회자 되기 시작됐고, 결국 2014년 웨스트엔드로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한국 초연도 이와 다르지 않은 모양새로 공연이 진행되고 있다. 입소문을 타고 관객이 극장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

“연습할 때, 실제 공연되면 관객이 느끼기에 ‘최소한 유쾌하게 관람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누군가 즐거워하면, 그러한 기운이 보는 이에게도 전달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박장대소까지는 아니어도 ‘웃긴대?’라고는 생각할 거라 확신했어요. 그만큼 무대서 배우들의 역할이 중요해요. 우리들만의 웃음이 이 작품을 더 흥미진진하게 만들어가는 원동력 같아요. 모두 가져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에 버금가는 유쾌함을 얻어가는 관객들이 많은 것 같아 다행이에요.”

 

 


원 캐스트로 모든 배우가 무대에 오른다. 공연 기간도 짧지 않다. 긴 시간, 무대에 올라 매일 같은 상황을 연출하고 같은 웃음을 관객에게 전달해야 한다. 매너리즘(mannerism, 항상 틀에 박힌 일정한 방식이나 태도를 취함으로써 신선미와 독창성을 잃는 일)에 빠지기 쉽다. 몇 번의 공연을 통해 김태훈 역시 매너리즘과 마주했고, 이를 경계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장면에서 어떻게 연기하면 최소한의 웃음과 반응이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관객 반응에 기대치가 생긴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러한 반응이 나오지 않을 때도 있잖아요. 그럴 때가 몇 번 있었어요. 그때 생각한 것이 있는데, 관객 반응에 지나치게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물론 관객 반응에 힘을 얻기도 하지만, 배우가 주체가 돼 공연을 이끌어 나간다는 생각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죠. 극 중 인물의 감정 등 보여줘야 할 것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 하던 대로 하는 것이 최고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사진 홍혜리·에디터 백초현 yamstage_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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