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뮤지컬 /인터뷰

[인터뷰YAM #2] ‘1446’ 박유덕, 내 사람 향한 애틋한 마음

세종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왕세자였지만, 결국 모든 것을 해낸 왕으로 기록됐다. 그를 성군으로 이끈 건 피로 왕의 길을 걸어간 아버지 태종이 있었기 때문. 여기에 실존하지 않는, ‘1446’에만 존재하는 인물인 전해운도 힘을 보탰다. 속내를 숨기고 있는 전해운을 세종은 내치지 않고 그마저 품으며 애민정신을 드러낸다.

“세종 역시 궁금증을 품고 있지 않았을까요? ‘왜 나에게 저런 말을 할까’라면서.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곁에서 내 이야기를 들어 주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어쩌면 의심을 한 순간부터 경계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아버지도 ‘아무도 믿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을 테고. 지켜보면서 알 수 있었을 텐데 ‘아니겠지’라는 마음으로 바라보려 했겠죠.”

 

 


전해운 이야기가 시작되자 박유덕은 세종의 아버지인 태종을 언급했다. 이 모든 것이 아들을 강하게 키우고자 한 아버지의 큰 그림이었다는 것. 전해운은 고려의 후손이다. 이를 태종이 아들인 세종에게 비밀로 하지 않았을 테고, 세종 역시 그가 자신의 곁에 있는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그러자 이번에는 미안한 마음이 박유덕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소용돌이쳤다.

“미안하죠. 전해운이 복수의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 자체가 미안해요. 아버지가 그 마음을 알면서도 세종 곁에 둔 거잖아요. 아들을 강하게 키우려 복수심을 이용한 거잖아요. 아버지 뜻대로 전해운을 경계할 수 있어 왕으로서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세종은 그를 자신의 곁에 두고 벌하지 않았어요.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안고 가려 했죠.”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나를 배신한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특히 더 그렇다. 박유덕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는 “작품을 만나면서 비슷한 일들을 많이 겪었다. 배신도 많이 당했다”고 털어놨다. 분노가 이는 순간마다 그는 ‘1446’을 떠올렸다고.

“그런 일을 겪으면 사람이기에 화가 나는 것이 당연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이분도 참았는데 나도 참아야지’.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내가 받은 상처를 상대방에게 갚아 주지 않으려는 마음이 더 커진 것 같아요. 물론 예전의 저였더라면 미쳐버렸을지도 몰라요. ‘1446’을 만나고 나서 더 많이 참게 됐어요. 남들이 보기에는 바보 같아 보일 수도 있지만 순해서 바보가 된 것이 아니에요. 세종대왕과 닮아가려 해요.”

 

 


채찍만으로는 성장할 수 없다. 당근도 함께 줘야 한다. 세종대왕에게 당근은 그의 곁을 지켜준 소중한 이들이다. 신분을 뛰어넘어 ‘벗’의 관계를 맺을 장영실이 그러하다. 장영실은 세종대왕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박유덕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동료, 또는 벗”이라고 정리했다. 그는 “같은 길을 함께 손잡고 같은 마음으로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일인 것 같다”며 조선의 왕인 세종과 장영실의 만남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 바를 이야기했다.

“장영실의 첫인상은 굉장히 건방져 보이죠. 그런 모습에서 자신과 닮은 점을 발견했을 거예요. 충녕도 형님이 양녕에게 바른 소리로 조언을 많이 했으니까요. 사원이 대표에게 직언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잖아요. 세종이 느끼고 있던 갈증이 무엇인지 장영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어떤 생각을 하고 있기에 이렇게 바른 소리를 할까 궁금했을 것 같기도 해요. 공감대도 형성됐을 테고요. 공감대가 형성되면 금방 친해질 수 있잖아요.”

 


왕과 신하의 만남이지만 세종은 장영실에게 마음을 환히 열었다. 어떠한 격식도 필요하지 않았다.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어 궁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만났다 하면 장난기 넘치는 ‘농’이 자연스럽게 터져 나왔고, 고기를 좋아했던 세종의 성격을 엿보게 하는 애드리브는 다음에는 어떤 대사로 웃음을 터뜨리게 할까 기대하게 했다.

“원래 없던 장면이에요. 재미있게 끝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숨을 돌릴 수 있는 장면이니까요. 애드리브로 ‘고기를 좋아하느냐’, ‘고기 먹자꾸나’를 하게 됐는데 고정 대사가 됐어요. 무대에 오르기 전에 ‘이렇게 할 테니 잘 해 봐라’라고 분위기만 말해요. 말을 잘 안 하는 편이라서. 그러면 상대 배우가 당황하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저도 많이 웃게 돼요. 박유덕과 다른 배우들의 ‘농’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연기할 때마다 호흡이 달라져 더 재미있어요. 저 역시 그 장면을 즐기고 있죠.”

 

 


고기 사랑은 애드리브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박유덕에게 ‘고기’란 무엇인지 묻자 돌아온 답변은 “요즘 공연이 끝나면 매일 고기를 먹는다. 왜 세종대왕님이 고기를 좋아했는지 알 것 같다”였다. 매 공연마다 모든 에너지를 무대에서 쏟아낸다는 박유덕은 체력 보충을 위해 고기를 선택했다. 고기를 먹을 때마다 그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힘들었기에 매일 고기를 드셨을까.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며 웃어 보였다.

작품은 박유덕에게 세종대왕을 덧입혔다. 박유덕은 마치 역사 속 세종대왕이 환생한 것처럼 무대에서 자애롭기 그지없는 왕으로 관객과 마주했다. 관객에게 세종의 애민정신을 인자한 미소로 전달했고, 인간 이도의 아픔과 고뇌를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먹먹한 눈빛으로 표현했다. 세종대왕을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그의 마음이 무대에서 고스란히 그려졌다.

 


“극장을 찾아주는 모든 분이 작품을 보고 위로를 받아갔으면 좋겠어요. 사랑을 많이 느꼈으면 해요. 세종대왕은 정말로 순수한 마음으로 사람을 바라보고 사랑을 줬어요. 아낌없이 주는 사람을 느낄 수 있죠. ‘1446’을 계기로 모두의 마음이 따뜻해졌으면 해요. 헌신과 위로를 느꼈으면 해요. 와서 같이 울고 웃고, 물론 이 작품은 우는 부분이 더 많겠지만 울면서 감정을 쏟아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삶의 축소판’ 같은 ‘1446’의 매력에 제대로 빠진 박유덕은 “작품을 하며 느낀 감정들을 감히 놓지 못할 것 같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평생 작품과 함께하고 싶은 그의 바람을 엿볼 수 있었다. 나이가 들면 세종이 아닌 태종으로 무대에 오르고 싶은 바람도 남겼다. 그는 “아주 많은 위로를 받았기에 감사한 마음이 크다. 또 세종대왕을 연기하게 돼 영광이고 감사하다”고 마음을 전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사진 홍혜리·에디터 백초현 yamstage_m@naver.com

<저작권자 © 얌스테이지 YAMSTAG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