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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인터뷰

[인터뷰YAM #1] ‘톡톡’ 이현욱, 우리 밥(BOB)은요

어떻게 이런 조합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쉽게 마주할 수 없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저마다 다른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는 이들은 낯을 가리고 서로를 경계하기 바쁘다. 불편한 시간이 속절없이 흐르고,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한 마디가 터져 나온다. “우리 게임 할까요?”. 주사위를 던져 나온 숫자만큼 말을 이동해 땅을 사고팔고, 통행료를 받는 게임이다. 제안자는 눈에 띄는 초록색 셔츠를 입고 있는 밥(BOB)이다.

연극 ‘톡톡’은 프랑스의 유명 작가 겸 배우이자 TV쇼 진행자인 로랑 바피가 집필한 작품으로, 뚜렛증후군, 계산벽, 질병공포증, 확인강박증, 동어반복증, 대칭집착증을 가진 6명의 환자가 강박증(Troubles Obsessionnels Compulsifs, TOC) 치료의 최고 권위자인 스텐 박사에게 진료를 받기 위해 모이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유쾌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연극 ‘유도소년’을 하면서 코미디 연기에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말한 이현욱은 이번 공연에서 대칭집창증과 선공포증 환자인 밥 역을 맡아 무대에 오르고 있다. 그와 함께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 이현욱이 발견한 ‘특별한 순간’

“주로 밀도 있고 깊이가 있는 작품을 해왔어요. 그러다 ‘유도소년’ 공연을 하면서 코미디 연기에 흥미를 느꼈죠. 다행히 기회가 와 하게 됐죠. ‘톡톡’이 가지고 있는 소재도 흥미로웠어요. 아마 보시는 관객들도 그럴 거로 생각해요. 강박증 환자들이 모였을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궁금해할 것 같아요.”

흥미로운 소재에 끌려, 코미디라는 장르의 매력에 사로잡혀 이현욱은 ‘톡톡’을 선택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작품에는 연령도, 성별도, 직업도, 성격도 각기 다른 6명의 강박증 환자가 등장한다. 배우들 역시 자기 색이 확실해 어떤 조합으로 보느냐에 따라 작품의 결이 달라진다. 또 배우 간 호흡을 어떻게 가져가느냐에 따라 관객에 전달되는 메시지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신경 써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

 


“코미디 작품의 경우 배우 한 명이 연기를 잘한다고 해서 공연히 흘러가는 것은 아니에요. 그래서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코미디는 앙상블 위주의 공연이다 보니 속도를 맞추고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제대로 반응 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런 것들에 집중하며 연습했어요. 또 서로의 연기를 의심하지 않았고 당연히 제 연기를 받아 줄 거로 믿으며 연기하고 있어요.”

함께하는 이들을 향한 믿음은 팀워크로 이어졌다. 좋은 분위기에서 연습이 진행됐고 본공연이 시작됐을 때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따뜻하다’는 말로 팀워크를 설명한 이현욱은 “그런 것들이 무대에서 표현되더라. 단합이 잘 되니 현실적인 웃음이 나올 때도 있다”고 고백했다.

 

 


# 앞으로 해도 BOB, 뒤로 해도 BOB

치료를 위해 모인 이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강박증이 드러나는 것을 꺼린다. 이와 달리 밥은 자신의 강박증을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공개한다. 그룹 치료의 장점을 어필하고 게임을 주도하며 분위기를 띄우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다른 인물들이 보여준 강박증을 대하는 태도와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이다. 밥에게 강박증은 도대체 어떤 의미인 걸까, 문득 궁금해졌다.

“밥은 유일하게 자신의 강박증에 동의를 구하는 친구예요. ‘이거 대칭이지 않으냐’고 사람들에게 묻죠. 대칭에 집착하는 것을 숨기지 않아요. 그래서 그룹 치료를 잘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룹 치료가 효과적이라고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인 것 같아요. 성격도 낙천적이에요.”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이현욱은 대본에 설명되지 않은 밥의 과거를 찾아 자신만의 이야기를 구축해 나갔다. 강박증에 시달리던 어린 밥은 주변의 무시와 멸시를 넘어 괴롭힘을 당하며 자신의 강박증을 숨기려 애를 썼다. 견딜 때까지 견뎌보자며 버티려 했지만 끝내 그 한계에 다다른 그는 살기 위해, 또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강박증을 더는 혼자만의 비밀로 가둬두지 않고 사람들과 나누기로 결심했다. 이현욱의 설명에 따르면 밥의 과거는 그랬다.

“벼랑 끝으로 내몰렸을 때, 그 즉시 포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그것을 기회로 삼고 다시 일어서려는 사람이 있어요. 밥은 후자에 가까워요. 사람들에게 알리자고 마음먹은 거죠. 그렇게 자신의 강박증에 대해 동의를 구하는 지금의 밥이 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처음부터 지금과 같지는 않았겠죠. 다들 처음에는 낯을 가리잖아요. 저 역시 그렇고요. 그래도 밥은 알았을 거예요. 이들에게만큼은 내가 가지고 있는 강박증을 이야기해도 된다는 것을요.”

 

 


밥과 만남은 이현욱에게 고민의 시간으로 다가왔다. 그는 “밥에 대한 설명이 적다. 기본적인 신상만 설명돼 있다. 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인물이 달라진다”며 난감해했다. 캐릭터 구축을 위해 빈 곳을 채워야 했다. 이를 위해 상상력이 총동원됐다. 논리의 오류를 줄이려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며 완성도를 높여 나갔다. 자신이 생각한 ‘밥’은 이런 인물이라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그는 타당한 근거들을 찾아 캐릭터에 덧입혔다.

“밥은 보험회사 직원이에요.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을 만나야 했을 테고 그때마다 굉장히 당황스러운 일도 많았을 것 같아요. 때로는 그런 자신을 바라보며 민망해하기도 하죠. 그룹 치료를 받아본 경험이 있기에 치료를 받기 위해 모인 사람들 앞에서 더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았을까요?”
 

 


타인 앞에서 나의 병을 이야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결점을 공개하는 것은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황을 한두 번 겪어본 것이 아니기에 이들은 더욱 꽁꽁 자신의 강박증을 숨기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을 주저한다. ‘그룹 치료’라는 말이 나오자 화들짝 놀라고, 불편함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반면 밥은 그룹 치료가 좋았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미 그룹 치료를 받은 적 있는 그가 다시금 스텐 박사를 찾아온 것은 치료가 성공적이지 않았기 때문인데 어째서 밥은 그룹 치료를 부정하지 않을까.

“유일하게 등장인물 중 치료목적으로 상담실을 찾지 않아요. 앞서 진행된 그룹 치료의 결과가 성공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밥은 희망 하나를 가지고 떠났을 거예요. 그래서 다음 그룹 치료를 기대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다들 치료 효과를 기대하지만 반드시 강박증이 치료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밥은 치료를 통해 사람들 속에 속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던 것 같아요.”

 

 


# 대칭을 향해, 선을 밟아서는 안 돼!

특히 밥은 하나의 강박증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현욱은 선공포증과 대칭강박증을 가진 극 중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제일 먼저 그는 자신에게서 강박증을 찾아 나갔다. “선을 발견하면 눈으로 한 번씩 선을 따라가는 습관이 있다”고 밝힌 이현욱은 “그러한 것을 해야 하는 이유를 계속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과장된 행동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대칭집착증의 경우는 주변에 편집증이 있는 친구들을 보면서 참고했어요. 함께 사는 서현우 배우가 그런 면이 있거든요. 약 같은 것도 크기대로 채워 놔야 하죠. 가끔 제가 그걸 흩트려 놓기도 하는데.(웃음) 그런 모습을 보면서 강박증이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계속 확인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대칭강박증을 표현할 때는 대칭이 맞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쉼 없이 확인하고 있죠.”
 

 


주변을 관찰하고 대칭을 바로 잡는다. 그래서 밥은 손도 발도 눈도 한시도 가만히 있는 법이 없다. 계속해서 움직이고 무언가를 쫓으며 바쁘게 돌아간다. 이현욱은 “이 친구는 모든 상황에서 강박증을 느낀다. 양손을 바삐 움직이는 것은 일종의 신경안정제 같은 거다. 바닥에 있는 선을 손으로 긋고 있는 것인데, 그래서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는 두 손을 잡고 있다”며 “대칭과 선이 연결된 동작이라 하나의 장치로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바닥은 선으로 넘쳐난다. 그래서 무대는 밥에게 치명적인 장소다. 민무늬 바닥재를 사용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선으로 무늬를 낸 바닥은 밥에게 발을 디딜 틈도 주지 않는다. 숨이 턱턱 막혀온다. 선은 바닥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물건이 선으로 이뤄져 있다. 그렇다면 밥은 도대체 어디서 안정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괜스레 짠해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아직 공연 중에 선을 밟은 적이 없어요. 혹시라도 제가 공연 중에 선을 밟으면 기절할 테니 누군가는 저를 일으켜 줘야 한다고 미리 말해 두기는 했어요.(웃음) 밥은 선공포증이 있어요. 소파에도 선이 있죠. 그런 선까지 체크 하면 정말 다닐 수가 없어요. 그래도 확인은 하고 있어요. 발끝이 책장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도 신경 쓰면서 말이에요. 다만 저는 ‘바닥에 있는 선을 못 밟아서요’라고 말하고 시작해요. 나름 타협한 거죠.”

# 릴리 그리고 프레드, 밥의 마음이 향하는 곳

밥은 극 중 릴리와 러브라인을 형성한다. 치료를 위해 방문한 상담실에서도 사랑을 싹튼다. 갑자기 마음을 빼앗겨 버리고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다음 만남을 기약한다. 짧은 순간에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이뤄진다. 이현욱은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일단 릴리가 너무 사랑스럽다”며 “하지만 밥은 더 나아가 릴리의 마음에 매료됐고 연민을 느끼며 그 사람의 깨끗함에 끌렸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처음 대본을 통해 릴리와의 러브라인을 보고 불편함을 느꼈어요. 대놓고 러브라인이잖아요. 극이 가지고 있는 본질을 흐릴까 걱정됐죠. 그래서 밥이 릴리에게 관심을 보이는 과정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여주기로 했어요. ‘톡톡’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희망’이기에, 둘의 관계도 로맨스가 아닌 ‘희망’으로 가져가고 싶었죠.”

밥과 릴리의 로맨스를 기대하고, 그것을 좋아하는 관객에게는 아쉬움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이현욱은 연습 과정에서도, 공연 중에도 릴리 역을 맡은 배우들과 주고받은 대화를 언급하며 러브라인의 방향성을 확고히 했다. ‘로맨스를 의도하지 말자’, ‘자연스럽게 발생 되는 감정으로 가자’고 다짐하며 그는 관객을 설득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그렇기에 이들의 사랑은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아닌 열린 결말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고.

 

 


“희망을 안고 떠나는 건 확실해요. 좋은 친구가 됐을 수도 있고, 서로 의지하며 지낼 수도 있죠. 프랑스 영화를 좋아하는데 대부분이 열린 결말이에요. 열린 결말이다 보니 마음껏 상상할 수 있잖아요. 그게 프랑스 감성인 것 같기도 해요. 안 좋은 상상이 아닌 좋은 쪽으로 하는 상상 말이에요. 결말이 있어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도 있지만 열린 결말도 좋은 것 같아요.”

‘톡톡’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매력적이다. 이현욱은 밥으로 무대에 오르고 있지만 제일 마음이 쓰이는 인물로 프레드를 꼽았다. 프레드는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욕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 일쑤다. 사람들은 그를 ‘욕쟁이’로 오해하고, 그는 ‘나는 욕쟁이가 아니야’라며 울부짖는다.

 


“뚜렛 증후군을 앓고 있는 분과 만난 적이 있어요. 갑자기 욕을 하는데 누가 들어도 저한테 하는 말이었어요.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화를 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어요. 그게 그 사람이 의도한 것이 아니잖아요. 그들은 좋은 점도 왜곡해서 욕설과 함께 말한다고 해요. 의도와 상관없이 욕이 나오니깐 미안한 마음도 들 테고 자존감도 낮아질 것 같아요.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힘들더라고요.”
 
이현욱은 강박증을 왜곡하거나 희화하는 것을 경계했다. 중간 지점을 찾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었다. 공연은 다큐멘터리가 아니기에 강박증을 극대화해 표현하는 것이 맞지만, 정도의 차이는 엄청난 결과를 불러일으키기에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이들을 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들이 시달리고 있는 강박증을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었다”며 “개인적으로는 정확하게 강박증에 대해 인식시키는 것이 ‘톡톡’이라는 작품이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톡톡’은요

궁금했던 것들을 질문했을 때 돌아오는 답변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생각하지 못한 물음에는 잠시 시간을 들여 생각을 정리한 뒤 막힘없이 답했다. 오랫동안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다. 평소 이현욱의 연기관을 엿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는 “항상 인물의 감정선을 정해놓고 공연을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다만 ‘톡톡’ 만큼은 예외였다고.

“무려 20%를 비워놓고 공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그 20%는 연습실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관객이 없는 상태로 우리끼리 연습을 하는 거잖아요. 관객 앞에서 연기할 때의 호흡, 속도를 예측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관객과 만나야 채워지는 부분이기에 연출님에게 동의를 구하고 첫공을 올렸어요. 제가 정한 감정선에 확신이 없는 상태라 굉장히 무서웠어요. 4회 연속 공연을 마치고 나서 모두 채워 넣었죠. 결코 연습이 덜 된 상태로 무대에 오른 것은 아니에요.”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극”. 그렇기에 이현욱은 다시 돌아온 ‘톡톡’을 봐야만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그래도 희망이 있고, 따뜻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 이 공연을 봐야 하는 이유로 그것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며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담겨 있고,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보고 나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 좋다”고 바람을 전했다.
 


“극 중 프레드가 하는 말이 모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인 것 같아요. 자기보다 남을 생각할 때 강박증이 없어진다고 하잖아요. 주변 사람들을 더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그런 메시지가 강하게 와닿았어요. 갈수록 개인주의가 심해지고 있잖아요. 물론 내가 주체자인 건 당연하지만 역지사지라고 하잖아요.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려는 마음이 사라진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에요. ‘희망’이라는 불씨를 계속 살려가는 느낌이 강하죠.”

 

 

 

 

사진 홍혜리·에디터 백초현 yamstage_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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