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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인터뷰

[인터뷰YAM #1] ‘1446’ 박유덕, 인간 이도에 반하다

세종대왕. 우리는 이 이름만 들어도 그의 업적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 한글 창제. 그보다 값진 업적이 또 있을까. 흥미로운 이야기를 찾는 이들은 이미 세종대왕을 주인공으로, 한글 창제와 반포의 과정을 담아 콘텐츠로 탄생시켰다. 그리고 여기 뮤지컬로 새로이 세종대왕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 관객과 만나고 있다. 바로 뮤지컬 ‘1446’이다.

제목만으로 주인공이 세종대왕이라는 사실을 눈치챌 수 없다. 세종대왕의 업적은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몇 해에 한글 창제를 시작해 반포했는지까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1446’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관객은 공연을 통해 ‘1446’의 뜻을 파악하고 이해하고 그것을 가슴에 새긴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한 그해를 말이다.

“소헌왕후가 세상을 떠난 해이기도 하다”고 설명을 덧붙인 배우 박유덕과 함께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 박유덕, 세종과 만나다

“세종대왕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가 많죠. ‘뿌리 깊은 나무’도 있고요. 제가 TV를 잘 보지 않아 참고하지는 못했어요. 그런 콘텐츠와 ‘1446’이 다른 점은 세종대왕의 업적을 다루고 있다기보다는 인간 이도의 삶, 백성을 위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고, 왜 한글을 창제했는지 등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에요. ‘1446’이라는 제목 자체가 한글을 반포한 인간 이도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해주고 있는 제목이라 생각해요.”

본 공연에 앞서 ‘1446’은 트라이아웃 공연을 통해 관객에 첫선을 보였다. 이후 세종대왕, 한글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일상에 스며드는 외부 활동을 펼치며 본공연을 준비해왔다. 박유덕은 ‘1446’에서 세종 역을 맡아 무대에 오르고 있다. 작품에 남다른 애정을 드러내며 활발한 활동을 펼친 그는 이제 공연 막바지를 향해 힘차게 달려가는 중이다.

 


“배우 박유덕이라는 사람은 사실 외부 행사를 잘 하지 않는 편이에요. 공연에 집중하고 싶거든요. 이번에 ‘1446’을 하면서 외부 행사에 정말 많이 참여했어요. 플래시몹부터 라디오, 방송 출연까지. 그러한 행사가 홍보 효과가 좋았어요. 이를 통해 세종대왕의 또 다른 모습을 많이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도 뿌듯했고 좋았죠. 해본 적 없는 것들을 할 수 있어서 즐거웠어요.”

박유덕은 한 달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1446’ 트라이아웃 공연을 준비했고 성공리에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힘든 시간을 함께 보낸 스태프와 배우들, 그만큼 작품에 대한 애정은 배가 됐다. 불러줬기에 함께 하게 됐다고 표현했지만 박유덕은 “꼭 하고 싶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다”고 말한 그의 눈에는 ‘1446’을 향한 애정이 가득 차 있었다.

“이 작품을 하면서 저를 많이 되돌아본 것 같아요. 배우로서의 삶은 물론이고 인간 박유덕,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도 말이죠. 저를 더 겸손하게 만들어준 작품이기도 해요. 인간 이도의 모습을 더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그러면 관객들 역시 작품을 보고 난 뒤 주변 사람들을 되돌아보고,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지 않을까요? 예전보다 더 주변 사람을 챙기게 됐어요. 그 부분에서 ‘1446’이 저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지 않나 싶어요.”

 

 


애정이 넘쳐난다. 그늘은 애정에 가려져 버렸다.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도 모두 잊혀졌다. 정해진 시간에 모든 것을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도 어느새 기분 좋은 긴장감으로 탈바꿈했다. 본공연을 준비하면서 쉼 없이 진행된 외부 행사마저도 행복한 추억이 됐다.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적어도 박유덕에게 ‘1446’은 그랬다. 작품을 준비하며 역사 공부를 해야 하는 그 순간마저도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아무래도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해서 검색만으로도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종이로 된 책으로 확인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세종대왕에 관한 책들을 많이 찾아봤죠. 실록도 읽었어요. 책마다 비슷하면서 다른 부분이 있는데 그런 부분을 정리해서 창작진들과 대화를 나누며 느낀 점을 공유하고 저만의 세종을 채워나갔어요. 또 아버지도 아들이 세종대왕 역을 맡는다고 하니 본인도 역사 공부를 하셨더라고요. 그래서 아버지와 함께 대화를 나누며 몰랐던 부분을 배우고 그랬어요.”
 

 


아버지와의 대화는 아들에게, 배우 박유덕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안겨줬다. 또한 박유덕은 여주의 한 화장실에서 목격한 풍경이 인상 깊었다며 추억담을 털어놨다. 그는 “화장실에 세종대왕의 업적이 붙어 있었다. 그 당시에 출산휴가가 있었다는 것도 놀라운데 남편에게도 휴가를 줬다고 하더라. 또 추우면 추울까, 더우면 더울까 걱정하며 죄인들까지 섬세하게 신경 썼다고 하더라”라며 “그런 것을 보면서 백성과 사람을 진심으로 아낀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감동했다. 스스로 많이 놀랐다”고 고백했다.

“세종대왕의 개인적인 아픔들을 알고 나서는 마음이 굉장히 아팠어요. 이분도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제일 많이 느끼고 있어요. 그 고통을 어떻게 풀었을까 싶더라고요. 그 아픔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말을 하고, 글을 쓸 수 있는 거잖아요. 감사한 마음이 크죠. 몰랐을 때는 소위 말해 ‘영웅’ 같았어요. 작품을 만나고 공부를 하고 나서는 ‘이분도 사람이었구나’ 싶어 존경심이 생기더라고요. 세종대왕이 백성들을 바라보던 그 마음을 더 공감할 수 있게 됐어요.”
 

 

 


# 인간 이도, 박유덕과 만나다

무대에 오른 박유덕은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눈물을 흘린다. 외숙들이 숙청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그의 어깨는 무겁게 내려앉고 눈물을 멈출 줄 모르고 폭풍처럼 쏟아져 내린다. 같은 장면을 보고도 형님인 양녕대군은 광기에 사로잡혀 분노하지만 충녕은 그러지 못한다. 오열하고 또 오열하며 아파한다. 부디 이 피의 참극이 끝나기를,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오버추어에서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조선을 왜 만들었고 어떻게 만들었는지 말해요. 그 자체가 무섭더라고요. 예전에는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어요. 본공연을 하면서부터 그 순간이 무섭게 다가오더라고요. 그 역시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 거예요. 누구의 목숨과 바꿔 만들어진 조선인지를. 무대 뒤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정말 무서워요. 아버지가 무섭게 보이기도 하고 외숙들이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너무 슬프죠. 그래서 많이 울게 되는 것 같아요.”

 


특별히 눈물을 왈칵 쏟아내기 위해 준비하는 것은 없다. 외려 슬퍼도 슬퍼하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는다고. 박유덕은 “양녕과 충녕은 성격부터 다르다. 형이 속마음을 내뱉는다면 동생은 참는 타입이다. 슬퍼도 슬프지 않게 표현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기에 그는 “연기적으로 감정이 폭발하는 장면이 별로 없다. 내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그런 감정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에게 물었다. ‘내 사람들’에 대해.

이번 공연에서 양녕대군 역은 박정원, 최성욱, 황민수가 맡아 박유덕과 호흡을 주고받는다. 그는 “박정원 배우와는 오랜 시간 함께 연기를 해왔기에 호흡이 정말 잘 맞는다. 양녕의 슬픔과 아픔이 정말 많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최성욱 배우는 자신의 아픔을 이기려 하는 양녕이다. 또 황민수 배우는 잘 모르겠다. 어떤 것을 가졌는지 알 수 없게 꼭꼭 숨겨 놓는다. 그 자체가 스스로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제가 바라본 양녕은 정말 슬퍼 보여요. 무대에서 바라보면 세자로서 짊어지고 가야 하는 그 무게감이 느껴져요. 실제 양녕과 충녕은 사이가 좋았다고 해요. 충녕이 양녕에게 바른 소리를 잘했다고 하더라고요. 동생이 잔소리를 많이 하니 형님 입장에서는 불편했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동생 입장에서는 세자로서 해야 할 도리를 지키라며 가르치고 훈계하는 것이 아니라 불쌍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조언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가 느끼는 아픔과 압박감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좋은 말을 해주고 싶었겠죠.”

부담감은 결국 양녕과 충녕의 운명을 뒤바꿔놨다. 양녕은 폐위됐고 그 자리를 충녕이 대신했다. 독서를 좋아하던 셋째 아들은 감히 생각도 해본 적 없는 왕세자가 됐고 결국에는 왕위에 오르는데 성공했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즐기고자 했던 충녕의 삶은 한순간에 피바람 부는 권력 싸움의 중심에 들어섰다.

 


“충녕은 3개월 만에 왕위에 올라요.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많이 놀랐을 것 같아요. 평소 책을 좋아하고 생각에 빠지는 걸 즐겼다고 해요. 그런 부분에서 어느 정도 왕이 됐을 때의 자신을 준비했을 것 같기도 해요. 물론 감히 자신이 왕이 될 거라는 생각을 했을까 싶기는 해요. 형들이 있으니 자신은 왕이 될 리가 없다고 생각했을 테죠. 충녕은 그저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며 그렇게 자신의 삶을 즐기려 했어요.”

권력의 중심에서 세종은 소중한 사람들을 하나둘 잃었다. 내 사람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그의 마음을 더욱더 아프게 했다. 왕이 되지 않았더라면, 형님이 왕세자에서 폐위당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삶은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소중한 이들을 잃지도 지키지 못한 마음에 미안해하지도 않았을까. 이러한 생각이 양녕을 향한 원망으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종대왕이라면 그러지 않았겠죠. 그 역시 사람이기에 남 탓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이 ‘1446’에서 보여주고자 한 인간 이도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것 같아요. ‘형님 때문에 내가 왕이 됐다’, ‘왜 나를 왕세자로 만들었느냐’고 탓할 수 있는 것도 세종 역시 인간이기에 그럴 수 있는 거죠. 사람이 약해지면 남 탓을 하게 되잖아요. 참고 참아 왔는데 그럴수록 더 힘들고 내가 아프니깐 다른 사람 탓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계기로 마음을 다잡고 더 강해지고 단단해질 수 있었겠죠.”

충녕은 왕세자가 됐고 폐위되지 않았다. 그리고 왕이 돼 조선의 백성을 위한 정책을 실행했다. 업적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왕세자였던 양녕은 그러지 못했다. 그 무게에 짓눌려 일어서지 못했다. 폐위된 양녕과 왕이 된 충녕. 두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박유덕은 “첫째와 셋째 아들의 차이 같다”고 운을 뗐다. 첫째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기대가 곧 부담으로 다가왔을 것이라고.

 


“물론 셋째 아들인 충녕에게도 아버지가 마음을 썼겠지만 양녕에 대한 마음이 더 컸을 거예요. 또 충녕은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어요. 실제적인 경험은 양녕이 더 많지만, 이미지트레이닝을 통해 충녕 역시 왕세자가 되면, 왕이 되면 겪게 될 일들을 간접 체험했을 것 같아요. 모든 과정을 충녕은 옆에서 지켜봤잖아요. 그래서 양녕과 다른 길을 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의 길을 가게 되면 피로서 자신이 누군가의 목숨을 대가로 치러야 한다는 것도 누구보다 잘 알았을 테고. 두 번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않겠다고 다짐도 했겠죠.”

 

 

 

 

사진 홍혜리·에디터 백초현 yamstage_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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