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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인터뷰

[인터뷰YAM #1]‘인터뷰’ 정동화가 찾은 경우의 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사소한 변화가 익숙함에 균열을 가져오고 또 다른 새로움을 창조한다. 뮤지컬 ‘인터뷰’에서 정동화가 이와 같은 역할을 맡았다. 그는 비슷한 캐스팅으로 ‘새로움’보다는 ‘익숙함’을 택한 작품에 변화를 이끌어내는 기폭제가 됐다.

‘인터뷰’는 살아남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한 소년이 또 다른 남자와 인터뷰를 하며 거짓과 진실의 실타래를 풀어가는 미스터리 심리 스릴러이다. 베스트셀러 추리소설 작가 유진 킴 역에는 이건명, 민영기, 김수용, 최영준, 박은석이 캐스팅됐다. 비밀을 품은 추리소설 작가지망생 싱클레어 고든 역은 김재범, 김경수, 정동화, 이용규가 맡는다. 의문의 사고로 죽은 18세 소녀 조안 시니어 역에는 김주연, 김수연, 최문정, 박소현이 함께 한다.

“싱클레어 고든 역을 맡았다. 겉으로 보이기는 보조 작가 인터뷰를 하러 온 사회초년생이지만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앓고 있는 친구”라고 극중 인물을 소개한 정동화와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 그때 아닌, 지금 만나 ‘인터뷰’

“대본은 예전에 받아 봤어요. 일정이 맞지 않아 지난 시즌에 함께 하지 못했는데 이제야 기회가 닿았네요. 워낙 해야 할 것도 많고, 보는 관객도 연기하는 배우도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걱정 아닌 걱정을 했죠. 게다가 혼자 해내야 하는 상황이라 외로움도 컸어요. 같이 만들어 가는 이가 있다면 서로 의지하고 그랬을 텐데.(웃음) 그만큼 연습하면서 ‘인터뷰’라는 작품에 애정이 생겼어요.”
 
정동화는 오래 전 ‘인터뷰’ 대본과 함께 출연 제의를 받았다. 그간 참여했던 작품과 다른 결을 자랑하는 ‘인터뷰’에 흥미가 생겼고, 도전이 되겠다는 생각에 긍정적으로 검토했다. 바람과 달리 인연은 쉽게 닿지 않았다. 그는 외려 “지금 참여하게 된 것이 다행이다. 그때 참여 했더라면 조금 더 외롭지 않았을까”라고 애써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빗나간 인연은 돌고 돌아 다시금 정동화를 찾아왔다. 그는 ‘인터뷰’ 제작사 대표인 김수로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김수로 대표님과 면담을 많이 했어요. 이야기 할 때마다 친한 형 같고, 이웃사촌 같은 편안함을 느꼈어요. 첫 만남부터 그랬어요. 김수로 대표와 작업한 배우들이 ‘가족 같다’는 말과 함께 다시 작업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많이 하더라고요. 딱히 ‘족쇄’가 있는 건 아닌데, 좋아해 같이 하게 되는 거죠. 말뿐만이 아니에요. 그런 분위기가 정말 있어요. 조만간 다른 작품으로도 함께 할 것 같아요.”

2016년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시작된 ‘인터뷰’는 본 공연을 비롯해 벌써 세 번째 시즌을 맞이했다. 김수로 대표와의 면담을 거쳐 정동화는 2018 ‘인터뷰’ 공연에 합류했다. 이번에는 싱클레어 고든 역에 캐스팅 배우 수만 해도 그를 포함해 4명이다. 그간 극중 인물을 거쳐 간 배우도 상당하다. 모두 작품을 통해 연기력을 증명했고, 인기를 얻었으며 믿고 보는 배우로 거듭났다. 그만큼 새로 투입된 정동화가 짊어지고 가야 할 부담감도 상당할 터.

“그 역할에 참여했던 배우 수가 많다는 것은 경우의 수가 많다는 뜻이기도 해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큰 틀은 비슷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이미 경우의 수가 다 나와 버렸어요. 처음에는 ‘과연 내가 새로운 것을 보여줄 수 있을까’ 걱정이 됐어요. 다른 배우와 겹쳐 보이는 것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죠. 어떤 배우와 연기 노선이 비슷하다는 것은 좋은 평가가 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 배우들이 그럴 거예요. 자기만의 색깔을 구축하고 싶다고. 저 역시 그랬어요.”

 

 


나와 있는 경우의 수를 피해 새로움을 추구했다. 정동화는 “그럴수록 ‘내 한계는 여기까지인가’ 싶어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다행인 것은 ‘인터뷰’ 공연을 보지 않았다는 것. 그는 오로지 대본에만 의지했고, 상대 배우와 호흡을 나누며 작품에 접근해 나갔다. 그렇게 자신만의 ‘색깔’을 찾는데 성공했다.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정동화 만의 색을 낼 수 있도록 지금도 고민하고 있다고.

“큰 변화는 일부러 피했어요. 지난 시즌에 참여했더라면 생각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지만, 대본을 읽었을 때 인격 간의 변화를 크게 두면 외려 저에게 ‘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칫 잘못하다가는 큰 변화를 주다 몰입이 깨질 수도 있거든요.”
 
해리성 정체감 장애에 대한 공부도 이러한 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이 됐다. 정동화는 ‘본체’가 있고 상황에 따라 새로운 인격이 탄생하는 것으로 인물의 캐릭터를 정리했다. 몰입이 깨지는 순간, 모든 것이 끝이라는 생각으로 대사 하나도 놓치지 않고 되뇌며 인물을 구축해 나갔다. 그는 “호흡이 끊기는 순간 ‘거짓말’이 돼 버리는 극이다. 그만큼 인물 간 폭에 중점을 두며 연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담감도, 위험 요소도 많은 작품이지만 정동화는 ‘인터뷰’를 택했다. 섣불리 “공연을 즐겨주세요”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지만 그는 조심스럽게 답변을 이어갔다. 스스로에게 ‘이 작품의 매력은 무엇일까’ 물었다던 그는 에디터에게 반대로 질문을 하며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냈다. 정동화가 찾은 답은 배우에 있었다. 그는 “배우들이 열정을 다해 작품의 내용을 관객에게 전달하려 노력한다. 배우들뿐만 아니라, 피아니스트, 스태프들 모두가 순간순간 뜨거운 열정을 전달하는데 그것이 매력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 아픈 손가락, 맷 시니어

“누나를 죽인 살인범을 찾아 떠도는 추격자예요. 맷은 그만큼 뜨거운 인물이죠. 보이는 행동은 지미가 가장 뜨겁지만, 감정은 맷이 더 뜨겁다고 생각해요. 맷은 인격들의 주인이지만 그가 주인인 줄도 몰라요. 그저 누나를 죽인 이가 싱클레어 고든이라 믿고, 실은 그렇지 않지만 10년 동안 그를 찾아 헤맸다는 착각에 빠져 있죠.”

 

 


싱클레어 고든은 유진 킴을 찾아온다. 유진 킴과의 인터뷰 중 싱클레어 고든은 또 다른 이름으로 무대에 올라 관객과 만난다. 인격의 변화는 ‘인터뷰’를 채우는 주요 소재로, 배우의 연기력을 결정짓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각기 다른 인격은 맷 시니어 안에서 발현되고, 성향도 성격도 언어와 행동도 극명하게 갈리는 이들의 모습은 관객의 몰입을 높이며 극에 빠져들게 한다.

“예를 들어 지미 경우, 많은 배우들이 새 아빠에서 모티브를 찾았다고 해요. 저 역시 그런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저는 새 아빠보다는 다른 곳에서 캐릭터를 찾았어요. 지미는 굉장히 유약한 친구예요. 건장한 친구라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렇기에 자기가 할 수 없는 것을 동경하죠. 단순히 폭력적이기보다는 기괴하고, 속을 알 수 없는 인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영화 ‘맨인블랙1’에 등장하는 바퀴벌레 아저씨처럼요. 웃긴데 하나도 안 웃기고, 무섭지만 하나도 안 무서운, 알 수 없는 인물로 지미를 그렸어요.”

 


새로운 캐스팅은 기대를 한 몸에 받았고, 첫 공연 이후 정동화에 대한 평가는 호평과 혹평을 오갔다. 지미를 그린 그의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심심찮게 들려왔다. 지미는 도대체 왜 갑자기 셔츠 단추를 풀어헤치고 맨살을 보여주는 것일까. 무대를 활보하는 그를 지켜보는 관객 머리 위에 물음표가 백만 개 꽃피었다. 이와 관련된 답도 들을 수 있었다.

“저는 지미를 연기할 때 욕을 하지 않아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야기를 할 때 욕을 섞으면 되레 관심이 식고 전혀 이야기가 궁금해지지 않더라고요. 앞서 말한 것처럼 바퀴벌레 아저씨처럼 괴기함을 찾고 싶었어요. 연출님도 ‘재미있긴 한데 이래도 되나’고 하더라고요. 일부러 웃기려 한 건 아니에요. 괴상한 것을 찾다 보니 때로는 웃긴 캐릭터가 되더라고요. 셔츠를 풀어헤치는 것은 맷 시니어와 지미가 전혀 다른 결의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예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아예 다른 느낌을 주려다 보니 의상의 도움을 받게 됐어요. 셔츠도 똑딱이로 돼 있지 않았는데 의상팀에 부탁해서 똑딱이로 바꿨죠.”

가지가 많아도 근본은 하나다. 서로 다른 인격이 존재해도 본체는 맷 시니어 하나이듯, 정동화는 흔들리지 않는 뿌리로 각 캐릭터를 단단하게 여몄다. 그가 찾은 ‘뿌리’는 조안을 향한 ‘사랑’이었다. 그러한 마음을 그는 무대에서 조금씩 흘리며 관객에게 단서를 제공했다.
 

 


“노네임도 그래요. 아무 감정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그 역시 인격 변화를 보여요. 그건 그냥 일어나는 변화가 아니에요. 이유가 있는 거죠. 조안이 ‘새 아빠가 술을 마셨다’, ‘도망가야 한다’고 과거 이야기를 끄집어내요. 그다음에 변화가 일어나요. 그게 바로 인격 변화의 동기라 생각해요.이처럼 모든 장면마다 조안에 대한 사랑을 각 인물이 품고 있어요.”

각 인격의 캐릭터는 저마다의 스토리를 가지고 정동화에 의해 생명력을 얻는다. 배우를 가장 힘들게 한 인물은 누구일까. 그는 망설임 없이 맷 시니어를 꼽았다. 자신의 이름이 밝혀지는 장면을 연습할 때, 쉽게 풀리지 않아 당황했다던 정동화는 “연출님이 그러더라. ‘다들 여기서 한 번씩 쉬어갔다. 너도 그렇구나’라고”라며 유독 어려움을 호소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공개했다.

“생각해 봤어요. 만약 진짜 유진 킴이 누나를 죽인 범인이라는 것을 알고 그를 찾아갔더라면, 그 앞에서 지금과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을까 하고요. 어려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제 안에서 충돌이 생기더라고요. 연습 과정에서 이 부분에 의문을 품고 일부러 알고 있다는 뉘앙스로 살짝 흘려 보기도 했어요. 그런 식으로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이끌고 갈 방법을 찾아가고 있어요. 미세하게 차이를 두면서 말이죠.”

 


맷 시니어는 정동화를 힘들게 한 캐릭터인 동시에 그가 가장 사랑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정동화는 “실제 뉴스로 맷 시니어 이야기를 접했더라면 누구도 그를 동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에도 관객은 물론이고 연기하는 배우마저 맷 시니어를 동정하는 까닭은 그의 전사가 고스란히 무대에서 펼쳐지기 때문. 이와 관련된 설명을 이어갔다.

“이 인물을 연기하다보니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저는 알아야 하잖아요. 극중 유진 킴이 ‘왜 이 아이가 괴물로 변했는지 알지도 않고 방치하면 또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고 말해요. 그런 이유로 맷 시니어가 제일 눈에 밟히죠. 정말 괜찮은 청년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 괴물이 됐으니 안타까워요. 물론 현실에서 뉴스로 접했다면 이런 감정은 절대 느끼지 않았을 거예요.”

‘인터뷰’를 둘러싼 논란 아닌 논란 중 하나가 이 지점이다. 맷 시니어를 범죄자로 볼 것인가, 사회가 낳은 괴물로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하여 모든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어떠한 이유로 범죄는 정당화될 수 없는데 ‘인터뷰’는 살인을 저지른 맷 시니어의 과거에 집중하며 ‘어쩔 수 없었음’에 힘을 보탠다.

“맷 시니어를 불쌍하게 생각하고, 그에게 안쓰러움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을 찾아야 했어요. 그게 저에게 주어진 과제였죠. 그 지점을 찾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죽은 조안을 안고 미안해하는 장면이 그만큼 표현하는데 어려웠어요. 대본에 나와 있는 것을 그대로 표현하자면 순서가 자연스럽지 않다고 생각했죠. 우발적으로 일어난 살인이라면 그렇게 빨리 누나를 보내고 뭍으로 올라올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 부분들을 잘 만들고 싶었어요. 우발적으로 죽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인물에 접근하려 애썼어요.”

 

 

 

 

사진 홍혜리·에디터 백초현 yamstage_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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