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초인종이 세 번 울리고, 보조 작가 지망생 싱클레어 고든이 유진 킴을 찾아온다. “시작된 건가요? 인터뷰”라는 말과 함께 유진 킴은 싱클레어 고든의 능력을 시험한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극’을 받은 싱클레어 고든은 인격에 변화가 생기고, 또 다른 인격과 마주한 유진 킴은 숨겨진 진실을 찾기 위해 더욱 깊숙이 그를 파고든다.
“공연을 하다 보니 싱클레어 고든보다 유진 킴 역할이 연기하기 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유진 킴이 짠 판 안에서 노는 거잖아요. 유진 킴은 연기 안에서 또 연기를 해야 하죠. 가끔은 ‘연기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그 경계가 모호할 때가 있어요. 그만큼 연기 잘하는 배우가 유진 킴을 맡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유진 킴이 절 몰아붙일 때 뒤지지 않고 맞받아 칠 때, 연기하는 입장에서 굉장히 흥미로워요.”
맷 시니어에게 유진 킴은 어떤 존재일까. 정동화는 “너무 고마운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유진 킴은 맷 시니어의 정신을 감정하고, 병을 진단하고, 범죄 이유를 분석한다. “저도 그 이유가 궁금하다”던 그는 지난 시즌 등장했다 이번 시즌에서 사라진 ‘레이첼’을 언급하며 “자기 딸이 희생자 중 한 명이었다면 정말 그럴 수 있을까 더 의문이 생겼을 것 같다. 그 시즌도 쉽지 않았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유진 킴의 동기에 관해 정동화는 골몰했고, 답을 찾기 위한 모험을 시작했다.
“대외적으로는 이유가 설명 돼 있어요. 맷 시니어 같은 괴물이 태어나지 않도록 방법을 고안하고, 범죄 없는 올바른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많은 여성을 죽인 사람을 대의명분을 갖고 치료할 수 있을까요? 그건 또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모든 사건은 조안에 의해 발생했다. 조안이 있어야 맷 시니어의 범죄가 성립된다. 맷 시니어와 비슷한 논리로 보는 입장에 따라 조안을 바라보는 시각에 차이가 발생한다. 정동화는 이번에도 조안 편에 섰다. 그는 “조안이 나쁘게 비춰지는 것이 가슴 아프다”고 운을 뗐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너무나도 잘 알기에, 또한 인간적인 조안 캐릭터에 공감하기에 그는 이러한 말을 할 수 있다고.
“조안이 하는 생각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들이에요. 새 아빠의 폭력에 매일 노출 돼 있고, 엄마는 정신을 놨고, 그런 상황에서 아기가 울면 조안이 대신 혼나야 해요. 조안은 이 모든 것을 다 감내해 내야 해요. 그런데 맷을 예뻐할 수 있을까요? 그만큼 ‘죽어버렸으면 좋겠어’라는 말이 현실적으로 다가왔어요. 전혀 밉지 않았죠. 사람이라면 저럴 수 있겠다 싶었어요.”
조안과 맷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얽히고설킨 실타래처럼 쉽게 풀리지 않는다. 때로는 비정상인 관계를 맺는 두 사람에 어리둥절하며 그 순간, 맷의 마음이 무엇인지 조안의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다. 정동화는 그마저도 “사랑을 이용해 무언가를 이루려한 것은 아니다. 그저 그 순간 마음이 통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감정이 앞선 어린 아이였어요. 현실이 너무 싫은 거죠. 당장 여기서 살고 싶지 않고, 그러한 마음을 조안은 솔직하게 표현했을 뿐이에요. 조안은 감정에 있어 지극히 정상적인 인물이죠. 그런 상황에서, 그러한 라이프스타일을 좋아할 아이가 있을까요?”
극과 관련된 궁금증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에디터는 초반 ‘인터뷰’ 공연을 본 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인물의 흥분도와 비례에 빨라지는 대사 속도에 귀를 의심했다. 속도만큼 전달력도 높아졌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엔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물었다. 정동화는 “어떻게 보면 마음이 앞섰던 것 같다. 공연을 빨리 끝내야 할 이유는 없었고, 급한 일이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라고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이 친구의 상태를 생각하면 마음이 자꾸만 앞서게 돼요. 누나를 죽인 살인자를 앞에 두고 여유롭게 생각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저 역시 템포가 느린 편은 아니고 원래 속도감 있게 연기하는 것을 좋아해요. 거기다 마음까지 앞서다보니 더 심하게 몰아붙인 것 같아요. 그래서 러닝타임이 초반에는 차이가 많이 났어요.”
정동화는 ‘인터뷰’ 무대에 처음 올라 어느덧 한 달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공연까지 무대에 선 시간만큼 남았다. 그는 “점점 러닝타임이 늘어날 것 같다”고 남은 공연에 관해 귀띔했다. 물론 많이 늘어나지는 않겠지만, 초반 공연과 달리 점차 안정적인 러닝타임을 완성해 나갈 것 같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마음을 조금 내려놨어요. 맷이 가지고 있는 뜨거움이 식었다는 뜻은 아니에요. 유진 킴의 대화에 귀 기울이며 느끼고 그 상황 안에서 조금 더 있을 법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첫공과 막공을 비교하면 전혀 다른 공연이 나온다고 하잖아요. 저 역시 관객과 만나면서 새롭게 발견하는 것도 있고. 초반에는 전체 이야기를 빨리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서둘렀는데 이제는 각 인물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밟아가는 방향으로 진행할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어떤 장면에서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추가되더라고요.”
정동화는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기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했다. 그는 몇 번이나 고민하고, 말을 다듬고 고르는 과정을 거쳐 관객에게 건네고 싶은 이야기를 꺼냈다. 정동화는 “어쨌든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보니 ‘공연 보러 오세요’라는 말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무대 예술은 관객이 봐주지 않으면 공허하고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예술의 꽃은 관객이다. 아무리 대단한 작품이라도 관객이 봐주지 않으면 그저 결과물에 불과하다”며 “이 작품이 관객의 기억에, 가슴에 좋게 남기를 바란다. 저 역시도 순간순간 후회 없이 무대에 오르려 노력하고 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지며 인터뷰를 마쳤다.
사진 홍혜리·에디터 백초현 yamstage_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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