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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인터뷰

[인터뷰YAM #1] ‘뱀파이어 아더’ 정민의 판타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의뭉스럽다. 무표정한 얼굴이 괜히 기분을 언짢게 만든다. 저 사람은 뭔가 숨기는 게 있을 거야, 라는 의심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피어오른다. 자신을 ‘뱀파이어’라 주장하는 이와 단둘이 사는 남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뮤지컬 ‘뱀파이어 아더’는 자신을 뱀파이어라고 칭하는, 그러나 송곳니도 나지 않고 날지도 못하는 뱀파이어 소년 아더의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신진 작가 데뷔 프로그램인 블랙앤블루 시즌4를 통해 선정, 1년여의 개발 과정을 거쳐 관객과 만나고 있다. 극 중 평생 아더 만을 위해 헌신하지만, 비밀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존 역을 맡은 배우 정민과 만나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 정민이 그린 판타지

정민은 제작사 연작과의 인연으로 ‘뱀파이어 아더’의 출연을 결정 지었다. B급 코미디를 표방했던 ‘홀연했던 사나이’의 출연은 그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코미디에 애정을 드러낸 정민은 이번에도 그와 비슷한 추억을 쌓을 수 있을 거로 기대했다. 창작 뮤지컬이 그러하듯 ‘뱀파이어 아더’는 준비 과정을 통해 조금씩 수정 작업이 이뤄졌고 결국에는 첫인상과 다른 결과물이 완성됐다.

“장르가 코미디였으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작품이 나왔을 것 같아요. 초반에는 코미디 장르에 맞춰 아이디어를 많이 제시했어요. 작품 준비 과정 동안 아더와 엠마, 두 인물 위주의 장면이 많아졌고 그에 맞춰 이야기가 수정됐어요. 장르도 코미디에서 판타지로 바뀌었고요. 판타지로 풀면 앞서 준비한 노래, 이야기를 담을 수 있거든요. 물론 아쉬움도 있죠. 존이 할 수 있는 것들이 제한되니까요. 대신 무게감이 생겼어요.”

 


아더와 엠마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기에 존의 서사는 한쪽으로 밀려났다. 그럼에도 정민은 극 중 인물의 이야기를 온전히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자기만의 서사를 차곡차곡 쌓아 나갔다. 존은 어떤 인물인지 묻는 말에 그는 엘리자벳의 이름을 언급하며 두 사람의 만남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긴 이야기가 끝나자 정민이 그린 ‘존’과 마주했다.

“엘리자벳은 처음으로 존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준 인물이에요. 엘리자벳을 바라보며 평생 집사로 함께할 거로 생각했는데, 결국 혼자가 되고 말아요. 저택을 떠난 여자는 죽고 그가 남긴 아이를 맡아 엘리자벳 대신 그 아이를 지키겠다고 약속하죠. 그 과정이 결코 존에게는 행복한 시간이 아니었을 거예요. 아더를 또 다른 엘리자벳으로 바라보면, 존은 ‘다시 행복할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아더는 엘리자벳이 아니잖아요. 엘리자벳이 죽었을 때 존의 인생도 끝났다고 생각해요.”

 

 


정민은 존 역을 맡은 배우들과 생각을 공유하며 캐릭터 구축에 힘을 쏟았다. 그런 그가 제일 궁금했던 한가지는 ‘언제까지 아더가 존의 통제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였다고. 극 중 아더의 나이는 18세, 19세로 설정돼 있다. 이 나이는 성년이 되는 나이로, 자기주장을 활발하게 펼치며 스스로 세상을 살아가는 시기다. 이에 정민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어렸을 때는 세상에 대해 알지 못하기에 존의 말을 믿고 그의 통제에 따라 살았을 거예요. 그다음에는 어떻게 하려고 했을까 싶더라고요. 분명 존도 알았을 거예요. 아더와 평생을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요. 나이가 들면, 모든 사실을 밝히려 했을까 싶기도 해요.”

 


정민은 존의 역할을 엠마에게 위임했다. 엠마의 등장은 반갑지 않은 ‘변수’가 분명했지만, 그로 인해 존은 자연스럽게 극에서 퇴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정민은 “존은 세상에 대한 증오가 심한 인물이다. 아더와 세상을 격리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었다. 그 일은 이제엠마가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존이 죽음을 택한 것도 이해가 됐어요. 존은 자기가 아더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다 해줬다고 생각했을 것 같더라고요. 성년이 된 후 그의 곁에 엠마가 있고, 엠마가 자신의 역할을 해줄 거라 믿었겠죠. 이후 둘이 남남처럼 지내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존의 죽음은 분명 비극이 맞지만, 극 안에서 가장 행복한 결말이지 않을까 싶어요. 엠마가 없는 상황에서 존이 죽어버리면 아더는 정말 혼자가 돼 버리죠. 그에게 세상을 알려줄 사람이 존 말고 또 다른 사람이 생긴 거잖아요. 다행이죠.”
 

 

 


# 이해하기, 그 시작은

정민은 공연 내내 무표정한 얼굴로 관객 앞에 선다. 존을 연기하기 위해 선택한 ‘가면’은 자칫 잘못하다가는 ‘연기하기 싫은가?’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물론 그 역시 배우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큼 정민은 자신이 구축한 캐릭터를 무대서 표현하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했고 연기로 극 중 인물의 사연을 전달했다. 거듭된 고민 끝 그가 찾은 답은 캐릭터에 확신을 불어넣었다.

“공연만 보면 존이라는 인물을 이해하기 쉽지 않아요. 보편적이지도 않고 서사도 부족하죠. 극이 존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건의 키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 존인 동시에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마무리 짓는 역할도 그가 담당하고 있어요. 저 역시 대본을 받았을 때 ‘이걸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나’ 싶었어요. 인물의 서사는 배우인 제가 만들어가는 거잖아요. 고민을 많이 했죠.”

 


가장 쉬운 길은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을 캐릭터에 대입하는 것이었다. 이해되지 않는 인물의 캐릭터를 받아들이기 위해 존 역을 맡은 배우들과 나는 대화에서 찾은 ‘답’은 ‘사이코패스’였다. 사이코패스의 ‘사이코’라는 단어를 존에게 대입하면 모든 것이 해결됐다.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영원히 남아 있을 것 같았던 물음표도 말끔히 사라졌다. 고민을 쉽게 해결할 수 있었지만, 정민은 이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존이라는 인물에 그런 단어를 사용하고 싶지 않았어요. 초반에는 사이코패스 느낌을 주기 위해 등장할 때 낫이라든가 칼을 들고나온 적도 있어요. 이런저런 시도를 많이 했는데, 결론은 그거였어요. ‘평범한 사람이 가장 무섭다’. 평범한 사람이 극한으로 치달았을 때, 나오는 모습들 있잖아요. 극 중 ‘인간보다 무서운 것은 없다’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이 대사에 가장 부합한 인물이 존이지 않을까요.”

 

 


그렇게 정민은 극 중 인물의 서사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그제야 무표정했던 그의 얼굴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웃을 수 없었던 까닭. 정민은 엠마가 저택에 들어오며 시작되는 ‘뱀파이어 아더’의 상황으로 설명을 대신했다. 그는 “앞서 말한 것처럼 존이 아더를 돌보는데 있어 난관에 부딪혀 있는 상황에 엠마가 찾아온 것이다. 엠마의 등장으로 아더는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되고 세상에 그리고 여자에 관심을 갖는다”며 “존도 그러한 상황이 처음이기에 어떻게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애초에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이 일을 준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운을 뗐다.

“어쩌면 존에게도 상당히 힘든 시기였을 거예요. 그런 상황에 놓인 인물이다 보니 장난기 있는 모습이라든가 웃음기 가득한 모습 등을 보여주면 안 될 것 같았어요. 캐릭터를 향한 오해의 소지를 줄일 수 있는 방책은 감정을 드러낼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인물을 보여주자는 거였어요. 공연을 보면 아실 거예요. 엠마는 현실을 사는 인물이라 감정의 폭이 정말 넓어요. 아더와 존은 반대죠. 감정이 격해질 수밖에 없는 장면에서도 아더와 존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요. 이에 연기하는 배우들도 의식적으로 감정을 절제하려 하죠.”

 


‘도대체 어떤 감정인 거야’라고 묻고 싶을 정도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존. 그런 존이 유일하게 목소리를 바꾸고 자신의 감정을 보여주는 순간이 있다. 결말에 해당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다. 그는 엘리자벳 이름을 외치며 계단을 오른다. 어딘지 낯선, 이질적인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마치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같은 “엘리자벳”이 무대를 가득 채운다.

“제가 설정한 존은, 엘리자벳이 저택을 떠난 순간부터 자신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인물이에요. 중간중간 보면 웅크리고 앉아 엘리자벳을 기다리는 장면에서 어릴 때의 모습을 형상화하고자 했어요. 엘리자벳이 죽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영혼이라도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그러니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거고. 그러지 않으면 이런 행동을 할 수 없어요. 목걸이를 건네받는 순간이 존의 감정이 처음으로 드러나는 시점이에요. 어린 시절에 멈춰 있는 존을 보여주기 위해 목소리 톤도 그렇고 우는 모습도 어린아이처럼 표현했죠.”

 

 


# 나의 사랑, 나의 엘리자벳

존을 이야기할 때 엘리자벳을 빼놓을 수 없다. 극에는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지만, ‘뱀파이어 아더’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 바로 엘리자벳이다. 그는 존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정민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전부. 삶의 전부”라고 답했다. 지금과는 다른, 당시 시대 상황에 맞춰 그는 엘리자벳이 삶의 전부가 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을 설명했다.

“존은 집사였어요. 당시 집사라는 직업은 정말 천한 계급에 속했어요. 인간 취급도, 대접도 받을 수 없죠. 그런 존이 홀로 이 저택에 들어오게 된 거예요. 엘리자벳이 친구가 돼 주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더라고요. 아마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존에게 있어 엘리자벳은 친구이면서 동시에 인생의 보호막이었을 거예요. 그런 감정이 있기에 지금의 존이 보이는 엘리자벳을 향한 집착이 이해 되더라고요.”

 


엘리자벳이 저택을 떠났다. 존은 홀로 남겨졌다. 홀로 남겨진 존은 떠난 엘리자벳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외로운 시간을 버텨내며 소년은 어른이 됐다. 돌아올 거란 확신은 없었지만 주고받은 서신을 통해 존은 엘리자벳이 언젠가는 다시 저택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거라고. 정민은 “엘리자벳이 힘들 때, 그 힘듦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존이었다. 엘리자벳이 힘들어하는데도 존은 해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 더 힘들어했을 것”이라며 극 중 인물의 아픔을 어루만져 줬다.

“그런 와중에 엘리자벳이 죽었어요. 그로 인해 존도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지켰어야 해’라고 과거형의 대사가 있었는데 지금은 ‘지켜야 해’로 대사가 수정됐어요. ‘지켰어야 해’라는 말은, 엘리자벳이 죽고 난 다음 존이 한 말이었을 거예요. 죄책감이 컸겠죠? 그 죄책감에 엘리자벳이 죽고 존도 죽음을 택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총을 들고 있는 상황 자체가 엘리자벳이 죽었을 때 존이 취한 행동 같아요.”

 

 


과거형에서 현재형으로의 변화. 그 작은 변화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이끌어냈다. 존은 이미 한차례 죽음을 택했다. 엘리자벳을 따라가려 결심했던 것. 그를 막아 세운 것은 아더였다.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존은 총을 내려놓고 아더를 키우며 살아가기로 마음을 바꿔야 했다. 정민은 “마지막 장면은 두 장면이 합쳐진 장면인 것 같다. 총을 겨누기 직전까지는 엘리자벳이 죽었을 때와 같다”고 말했다. ‘행복한 어른이 되었어요’라고 말하던 소년은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한 번도 웃지 않고 아더의 곁을 지켰던 그는 끝끝내 행복한 어른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어둠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작품에 그런 순간이 정말 많아요. 슬픔과 행복이라는 단어로 감정을 나누는데, 실제로 둘은 같은 감정이에요. 극과 극으로 표현돼 있기는 하지만 말이죠. 행복함이 극에 치달으면 우리는 눈물을 흘려요. 반대로 정말 슬플 때는 눈물이 나오지 않고 웃게 되죠. 겪어 본 사람들은 분명 이해할 거예요. 그런 맥락으로 풀어보면 자신의 아픔을 승화시킨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모순’이죠. 살아가기 위해 ‘나 괜찮아’라고 말하는 부분일 수도 있어요.”

 


엘리자벳이 없는 존의 삶은 살아갈 힘조차 낼 수 없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삶과 같았다. 살아가기 위해, 살아내기 위해 존은 자신을 이해시켜야 했고 위로해야 했다. 게다가 아더를 보면 죽은 엘리자벳이 자꾸만 생각나니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정민은 “엘리자벳을 아더에 투영시키면, 아더를 볼 때마다 엘리자벳이 보여 힘이 든다. 그 인물을 아예 엘리자벳으로 생각하면 다시 행복해지긴 하지만, 그렇게 자신을 세뇌하며 사는 것도 힘들었을 것”이라며 존의 심정을 헤아렸다.

 

 

 

에디터 백초현 yamstage_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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