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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인터뷰

'더 라스트 리턴' 윤혜숙 연출, "'자리(권리)'에 대한 한 편의 우화와도 같은 작품"

전석 매진된 '갓극'의 막공 취소표-아마도 단 한 장뿐일-를 쟁취하기 위해 벌어지는 단 하룻밤의 우화. 두산아트센터의 ‘두산인문극장 2024: 권리’ 첫 번째 공연으로 지난달 30일 개막한 연극 '더 라스트 리턴'의 시놉시스는 흥미진진 그 자체다. 연극이라는 장르에서 시놉시스만으로도 관객을 끌어당길 수 있는 이 기발한 연극의 시작은 아일랜드 극작가 소냐 켈리가 매진된 공연의 취소표를 기다린 실제 경험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연극 티켓 한 장을 둘러싼 교양 넘치는 설전이나 연극과 관련한 코미디를 기대하고 간다면 자신의 상상과 전혀 다른 결말을 맛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에서 초연되는 이 색다른 작품의 연출을 맡은 윤혜숙 연출은 '더 라스트 리턴'을 "실패로 시작하는 작품이자, 취소표라는 마지막 한 '자리'를 통해 우리의 권리, 어떤 한 사회의 성원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두산아트센터 공식 유튜브를 통해 진행된 윤혜숙 연출의 인터뷰를 얌스테이지가 기사로 옮겼다.

 

사진=두산아트센터 공식 유튜브 캡쳐

 

"사람이 자기 자리 하나 지킨다는 게 이렇게까지 힘들 일인지,

그리고 정말로 전 존재를 걸고 해야 하는 일이어야 하는지."

 

"연극이라고는 본 적도 없는 한 인물이, 당연히 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극장에 왔다가 매진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깊은 절망에 빠져요. 꼭 봐야 하는 사정이 있기 때문인데, 대기 줄에 서면 표를 구할 수도 있다는 희망이 생기죠. 하지만 자신과 똑같은 희망을 품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타나면서 희망이 불안으로, 분노로, 또 어떤 다른 감정들로 변해나가는 이야기. 그것이 '더 라스트 리턴'입니다."

 

2020년 제11회 두산연강예술상 공연 부문 수상자이자 연극 '마른대지', '편입생', '숨그네' 등을 연출한 윤혜숙 연출은 '더 라스트 리턴'을 이렇게 소개한다. 처음 이 극의 연출을 맡기로 하고 희곡 대본과 함께 시놉시스, 소개 자료를 받았지만 '어떤 편견도 없이' 극을 이해하고자 희곡부터 먼저 읽었다는 그는 결말을 예상할 수 없는 '더 라스트 리턴' 전개에 매력을 느꼈다. 윤혜숙 연출은 "평범한 사실주의 희곡이라고 생각하며 읽어나가는데, 뒤로 갈수록 '왜 이렇게 되는 거지? 이 작품이 대체 어디까지 가려고 하는 거지? 이렇게까지 간다고?'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만큼 예상을 뒤엎는 전개가 지속되는데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납득이 되지 않거나, 다 뭉개버리는 전개가 아니라 굉장히 개연성이 있고 수긍하게 만드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었다"고 희곡을 마주하고 느낀 첫 인상을 설명했다.

 

'자리(권리)'에 대한 한 편의 우화와도 같은 작품

 

윤혜숙 연출은 "취소표를 구한다는 건 절망에서 어떤 희망이 생긴다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왜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줄을 서서 대기해야 하는지다. 자원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반드시 만나게 되는 문제"라며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사실, '자리'라는 것을 놓고 만든 하나의 우화 같기도 하다. 코믹적 요소도 있고 그걸 통해 재미있는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새삼 일깨워주는 어떤 것이 있는 작품"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줄은 누가 세우고, 자리는 왜 늘 부족하고, 줄 세우는 사람은 온데간데 없는데 줄 선 사람들끼리 아웅다웅 다투고 있는 모습을 보면 '왜 저 사람들끼리 저렇게 싸우고 있지?'하는 이상한 감정이 든다"는 윤혜숙 연출은 "그리고 둘러보면, 줄에 서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도. 이런 생각을 관객분들께서 같이 나눠주셨으면 좋겠고, 줄에 서지 못한 사람이 있지는 않은지 함께 두리번거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사진=두산아트센터 공식 유튜브 캡쳐

 

"이 작품은 특이하게 막 전환이 없어요. 오직 등장인물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작품이 전환되고, 앞으로 나아가죠. 그래서 등장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관객분들이 전환을 느낄 수 있도록 연출하려고 노력했어요."

 

윤혜숙 연출은 고민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무대 중간에 설치된 회전문은 그 상징적인 의미 못지 않게 많은 역할을 해내는데, 인물의 '등장'에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며 전환 효과를 불러온다. 여기에 국내 초연에서 새로 만든 '중창단(이유주·정대진·조두리)' 역할 3인방도 각 인물들이 등장하거나, 전사를 이야기할 때 감초 같은 연기로 힘을 보탠다.

 

새로 '중창단'이라는 역할을 만든 가장 큰 이유는 극의 처음과 끝을 수미상관으로 장식하는 '유럽가' 때문이다. 윤혜숙 연출은 "초반에 '유럽가'라는 노래로 작품이 열리는데, 이 노래의 가사가 중요하다. 하지만 음원으로 틀고 끝내면 '밝고 신나는 분위기를 위해 이 노래를 틀었구나'라고 생각하고 가사는 못 들으실 것 같더라. 그래서 가사를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 중창단 세 분을 모시게 됐다"고 설명했다.

 

'유럽가'의 가사는 극 시작과 동시에 극장 상단 전면부의 모니터를 통해 송출된다. 'Est Europa nunc unita / et unita maneat / una in diversitate / pacem mundi augeat.' 100분 간의 관극이 끝나면 베토벤 교향곡 9번 '환희의 송가'에 독일어로 가사를 붙여 만든 이 노래가 극의 시작과 끝에 울려퍼지는 의미를 선명하게 깨달을 수 있다. 윤혜숙 연출은 "무대 자체는 심플하지만 그 안에서 인물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갈등들, 그리고 사람들이 어떻게 변해가는지에 대해 집중해 보신다면 재미있게 보실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연극 '더 라스트 리턴'은 오는 5월 18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상연된다.

 

 

에디터 김희선 yamstage_@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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