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더는 엠마에게 어떤 존재일까. 유주혜는 “큰 위로가 되는 친구이자 진정한 나를 알게 해준 친구”라고 정의했다. 이번 공연에서 아더 역은 배우 오종혁, 기세중, 이휘종이 맡아 무대에 오른다. 각기 다른 매력의 아더와 만난 엠마는 또 다른 모습을 드러내며 관객에 ‘뱀파이어 아더’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그 미묘한 차이가 재관람으로 관객을 이끌고 있다.
“너무 다른 매력이라 만날 때마다 재미있어요. 오종혁 아더는 보이는 것과 달리 정말 귀여워요. 억지로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새어 나오는 그런 귀여움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엠마가 조금 더 쉽게? 아더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것 같아요.”
기세중의 아더는 어떨까. 그는 ‘카리스마’라는 단어를 사용해 설명을 이어갔다. 유주혜는 “카리스마 안에 연약함이 담겨 있다. 연약함에서 오는 두려움이 느껴질 때가 많다”고 말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단어들이 기세중과 만나 그만의 조화를 만들어냈다. 때문에 유주혜는 기세중 아더와 만날 때 유독 ‘연민’을 느끼게 된다고 털어놨다.
“이휘종의 아더는 조금 더 섬세한 것 같아요. 엠마와 호흡을 더 많이 주고받으려 노력하는 게 느껴져요. 섬세하고 부드러운데 의지하려는 면도 보이죠. 그래서 엠마로서 저 역시 누나의 느낌으로 리드하게 되고, 저도 모르게 리더십이 생기더라고요.(웃음)”
#만만하지 않은 창문 밖 세상
엠마는 아더와 친구가 됐다. 엠마는 쿠키를 구워 아더에게 건넸고, 쿠키 맛에 반한 아더는 그에게 마음을 열었다. 친구가 된 뒤 두 사람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을 상대방에게 알려주기로 했다. 아더는 글을, 엠마는 창문 밖 세상에 대해. 물론 시작부터 ‘화기애애’ 했던 것은 아니다.
“아더가 그래요. ‘무지함은 죄가 아니지만, 무지함에서 나오는 행동은 죄’라고. 자신이 의도한 것이 아닌데 혼남을 당하는 거잖아요. 엠마도 살면서 글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거예요. 하지만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고, 배울 방법도 없었어요. 어떻게 보면 못난 핑계일 수도 있어요. 자기에게 화가 났던 것 같아요. ‘누구는 모르고 싶어서 모르는 건가’라면서.”
물론 엠마의 ‘변’(辨)은 통하지 않았다. ‘무지’로 인해 그는 아더는 물론이고 존에게도 비난을 받았다. 심지어 아더는 ‘글을 배워 본 적 없느냐’며 고자세로 엠마의 자존심을 건드린다. 나아가 ‘너는 책을 읽은 적 없으니 다양한 세상을 모르겠구나’라고 쐐기를 박는다. 유주혜는 그런 상황에서 엠마가 느낀 감정에 대해 “책에 담긴 세상보다 ‘진짜’ 세상이 더 말이 안 되는 일로 가득하다. 그런 부분에서 엠마는 기가 찼을 것”이라며 “아더와 존이 얼마 남지 않은 엠마의 자존심을 제대로 건드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거리에서 나고 자란 엠마. 그렇기에 배우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많다. 누구도 그에게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스스로 보고 배우는 수밖에 없었다. 보고 배울 것이라곤 앞서 말한 것처럼 다른 이의 물건을 훔치는 도둑질뿐이었다. 그런 엠마에게도 유일하게 잘하는 한 가지가 있었는데 바로 ‘쿠키 굽기’다. 쿠키 굽는 솜씨가 예사 솜씨가 아니다. 쿠키 맛에 반한 아더가 저택에서 머무는 것을 허락할 정도니 두 말하면 입 아프다.
“여러 가지를 생각해봤어요. 엠마가 잠깐 고아원에서 지내게 됐을 때 그곳에서 제빵 기술을 배웠을 수도 있어요. 아니면 일용직으로 일을 구했는데 그곳에서 쿠키 굽는 기술을 배웠을지도 모르죠. 또 다른 생각은 엠마가 식모 일을 했을 때 자연스럽게 배웠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다양하게 열어놓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고아원에 있을 때 배운 것에 더 무게를 두고 있죠.”
# 엠마의 선택
엠마는 저택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 동안 그는 아더에 대한 인상이 바뀌었고, 둘은 친구가 됐다. 이후 저택에서 나온 엠마는 기사를 통해 아더와 존의 관계를 알게 됐다. 그리고 그는 아더를 구하기 위해 저택으로 달려갔다. 분명 같은 시간을 보냈는데, 존을 바라보는 엠마의 시선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한치의 망설임 없이 그를 의심했고, 그에게서 아더를 지키려 애썼다. 문득 궁금해졌다. 엠마에게 존은 어떤 인물인가.
“그 부분에 대해서도 존 역을 맡은 배우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존과 엠마의 갈등을 저택 안에서 더 심화시켜야 한다고 말이죠. 엠마가 존을 계속 의심하게 해야 한다고 말이에요. 그런 부분이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이 축소됐어요. 배우들과 대화를 통해 정리한 것은 ‘엠마와 존이 저택 안에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다’라는 거예요. 엠마에게 있어 존은 그냥 매정한 사람, 냉혈한인 거죠. ‘아더는 좋지만, 저 사람은 그냥 안 좋다’ 또는 ‘나와는 맞지 않는다’에 가까운 느낌이에요. 어떠한 유대감 없이 ‘청소하세요’라고 명령만 하는 그런 사람인 거죠.”
모든 이야기에는 ‘끝’이 있다. 결말을 향해 극은 달려간다. 인물들은 결국 어떠한 선택을 하고, 작품은 막을 내린다. 극이 끝나고 난 뒤, 이후의 삶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특히 예상하지 못한 결말을 맞을 때 더더욱 그러하다. ‘뱀파이어 아더’ 이후, 엠마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창작 초연이다 보니 다양한 에필로그가 존재해요. 엠마는 그림을 그릴 줄 알고, 글도 읽을 줄 알아요. 이제 그는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알게 됐어요. 일자리를 구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게 되면서 더는 도둑질을 하지 않아요. 또 다른 에필로그는 아더가 죽지 않고 살았다면, 저택에서 나온 그와 함께 돌아다니면서 세상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예요. 그 저택에서는 계속 살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 유주혜는 엠마가 처한 상황이 현실 속 우리네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관객들도 그렇고, 우리 모두 살아가면서 크고 작게 상처를 받게 되는 것 같다. 배신도 당한다”라며 “엠마에 대입해 생각해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자는 위로까지는 아니더라도 공감, 또는 ‘그래 나도 살아보자’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동질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상처를 딛고 다시 살아보자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엠마를 통해 들려주고 싶은 숨겨진 메시지도 살짝 공개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사람이 겉으로 보기에는 돌처럼 딱딱해 보이더라도, 본연에는 다른 모습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으면 해요. 겉으로만 보고 판단하지 말고 본연의 모습을 발견하길 바라요.”
사진 홍혜리·에디터 백초현 yamstage_m@naver.com
<저작권자 © 얌스테이지 YAMSTAG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