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아트센터의 DAC Artist(두산아트센터 아티스트) 배해률(극작가)의 신작 <시차>가 20번째 이음희곡선(배해률 작, 이음, 2024)으로 출간됐다. 2016년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시작으로 극작가로 활동해온 그의 세 번째 희곡집이다.
2023년 DAC Artist(두산아트센터 아티스트)로 선정된 배해률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동시대 크고 작은 사건들 속 타자를 향한 선의에 대해 이야기하는 극작가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심히 저지르는 폭력과 혐오를 감각하기 위해 노력하며, 소외되었음에도 타자에게 선하려는 의지를 가진 이들의 삶에 주목한다. <사월의 사원>으로 제11회 벽산문화상 희곡부문 수상, <서울 도심의 개천에서도 작은발톱수달이 이따금 목격되곤 합니다>로 제59회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배해률은 “모든 존재가 참사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음을 나누고 싶었다. 참사와 옅게 관계를 맺고 있는 누군가도 참사 이후 변화를 경험하고 삶의 방향이 굴절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필요했던 것 같다."고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연극 <시차>는 20년의 시차를 둔 2개의 이야기를 통해 반복되는 위태로운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선의들에 대해 보여준다. 1부는 성소수자 증오범죄의 피해자였던 ‘최윤재’가 자신과 같은 병실에 입원한 ‘최희영’의 부탁을 들어주면서 시작된다. 2부는 지방의 장례식장에서 일하는 장례지도사 ‘최세민’이 의문의 조문객들과 조우하며 전개된다.
1부와 2부는 각각 1994년의 성수대교 붕괴, 2014년의 세월호 침몰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작품은 단순히 참사를 배경으로 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통해 각 인물이 마주하는 상실, 공감, 그리고 연대의 감정을 탐구하며, 사회적 비극이 개인과 공동체에 남긴 상처를 깊이 있게 조명한다.
연극 <시차>는 다양한 시각 요소와 밀도 있는 대사로 관객이 무게와 고통을 간접적으로 감각하게 한다. 무대의 기둥과 바닥에는 상처와 균열이 드러나 있고 배우들은 흩어진 물건들 사이로 무대를 오가며 연기하며 당시의 불안정한 사회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시간의 흐름을 모래 시계로 형상화해 상단 프로젝터 영상으로 송출하며 과거부터 현재까지 참사의 흔적이 지속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자막해설 타이틀에 사용된 노란 리본을 연상케하는 '사월십육일체'는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4.16 재단에서 제작한 폰트로, 연극 <시차>에서는 참사가 남긴 상처와 균열을 담아내고자 했다. 이를 통해 참사가 반복되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이를 어떻게 기억하고 애도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연극 <시차>는 희곡집으로도 만나볼 수 있다. 작품에는 남겨진 인물들이 상실과 아픔을 나누는 대사가 담겨 있다. 1970년 원주삼광터널 열차 충돌로 동생 부부를 잃은 박정현은 조카 박현오에게 “오늘 그 다리는 너희 엄마, 아빠 때랑은 전혀 달라”라며 과거의 상처를 드러내고, 김선아는 제주도 여행을 떠나는 반장에게 “내일 그냥 여기 오는 걸로. 같이 계시는 걸로.”라고 말하며 남겨진 이들이 수없이 건네고 싶었으나 차마 하지 못한 말을 대신 전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력감 속에 남겨진 이들이 애쓰는 모습을 포착한 대목도 찾아볼 수 있다. 김선아는 최세민에게 “뭐라도 해야 겠어서.”라고 말하며 사회적 책임과 연대를 강조한다. 2부에서는 시간이 지나도 계속해서 반복되는 참사들을 비선형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통해 각 사건들이 인물들, 더 나아가 관객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보여주며 단순히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까지도 여전히 모두에게 흔적으로 남아 있음을 깨닫게 한다.
희곡집 <시차>는 온라인 및 오프라인 서점에서 구매 가능하다. 가격은 19,000원이며 문의사항은 이음 편집부를 통해 가능하다.
에디터 김희선 yamstage_@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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