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를 소재로 한 장르의 클리셰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현재까지도 수없이 변주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클리셰를 꼽자면 단연컨대 뱀파이어와 인간의 러브 스토리가 아닐까 싶다. 영원한 삶에 지쳐 죽음을 갈망하는 고독한 뱀파이어가 아름다운 인간에게 반해 사랑에 빠지고, 인간은 저항할 수 없는 뱀파이어의 매력에 흔들리지만 둘을 둘러싼 제3자(주로 방해꾼 역할을 맡는 약혼자) 사이의 갈등 속에서 그로테스크하고 아름다운 비극으로 끝나는 이야기 말이다.
고전 중의 고전인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수없이 변주되고 재창조되며 여전히 사랑받는 중이듯이, 인간과 ‘인외’, 그 중에서도 고딕이라는 장르가 주는 매력적인 음산함과 태생적 에로티즘을 곁들인 뱀파이어의 사랑 이야기는 시대와 장르를 불문하고 늘 뜨겁게 사랑받아왔다. 지난 11일, 링크아트센터 드림 1관에서 개막한 뮤지컬 <카르밀라>에 대한 기대감이 유독 특별했던 이유기도 하다.
대학로에는 이미 수많은 뱀파이어 이야기가 존재하지만, <카르밀라>가 특히 궁금했던 이유는 이 극이 가지고 있는 독보적인 개성 때문이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뮤지컬 <카르밀라>는 뱀파이어 소재의 고딕 소설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카르밀라>(조지프 셰리든 르 퍼뉴·1872년작)를 모티브 삼아 만들어졌다. 그러니 무엇보다 최초의 여성이자 레즈비언 뱀파이어를 다룬 원작을 2024년의 무대에 어떻게 구현할지 궁금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재능 넘치고 매력적인 여성 배우들이 펼치는 뱀파이어 로맨스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카르밀라>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에디터 관람 회차를 기준으로, 첫 등장부터 서늘한 매력으로 분위기를 압도한 카르밀라 역의 유주혜와 천진난만하면서도 수심 어린 로라를 연기한 박새힘, 그리고 발랄함과 오싹함 사이를 오가며 서사의 전환을 책임진(사실상 원작 카르밀라의 캐릭터 속성을 흡수한) 닉 역의 김서연까지 모두 안정적인 가창력과 연기력을 바탕으로 100분의 시간 동안 흠 없이 무대 위를 채운다. 슈필스도르프 역의 반정모 역시 이들의 관계에서 한 발자국 물러난 채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한다.
원작 소설의 <카르밀라>나 리딩 버전의 <카르밀라>와는 상당히 달라졌지만, 극의 주된 골자는 역시 카르밀라와 로라의 관계다. 여기에 카르밀라를 중심에 둔 닉의 존재가 더해지며(리딩 버전과 달리 여성 뱀파이어 캐릭터로 재창조되면서) 흡사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를 연상케 하는 매력적인 구조의 경쟁 관계까지 형성됐다. 물론 원작 <카르밀라> 정도의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언급이나 묘사는 없다. 전체적으로 '순한 맛'의 뱀파이어 로맨스에 가깝다. 의상과 소품 등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아쉬움은 옥에 티다. 뮤지컬 <카르밀라>는 오는 9월 8일까지 링크아트센터드림 드림1관에서 공연된다.
에디터 김희선 yamstage_@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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