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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인터뷰

[인터뷰YAM #2] ‘트레이스 유’ 노윤의 아픈 손가락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트레이스 유’를 보고 나면 이 말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2인극으로 이뤄진 작품은 누구에게 시선을 주고 감정을 몰입하느냐에 따라 아픈 손가락이 달라진다. “여기 내가 있어. 내가 원하는 건 자유”. 자유를 갈망하는 우빈의 눈빛에 시선을 빼앗기는 순간 무대에는 오로지 그만 존재한다. 그의 이야기가 궁금해지고, 마음이 쓰인다. 무슨 사연이 있길래 이토록 슬픈 눈으로 자유를 노래하는지 알고 싶은 마음에 애가 탄다.

“제가 생각하는 우빈은 다른 자아 아무것도 필요 없이 오직 본하와 함께 살아가고 싶어 하는 인물이에요. 자해만 하지 않으면 말이죠. 그러다 보니 본하를 품고 가는 식으로 연기하려 해요. 본하는 일을 저지르고, 치우는 건 우빈의 몫이잖아요. 약간 엄마 같은 느낌도 있어요. 우빈은 굉장히 착한 아이에요. 하지만 그런 우빈이 한 번 미치면 누구도 말릴 수 없죠.”
 

 


본하와 공존하는 것. 그것이 우빈의 유일한 목표다. 이를 위해 그는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움직인다. 첫 등장의 순간 마이크와 낙서를 바라보는 우빈에 대해 노윤은 “이 공연의 에필로그가 공연 처음에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마이크는 본하의 것이다. 본하는 이 마이크를 가지고 진술을 해야 한다. 그날의 우빈의 심정을 보여주고 싶어 마이크를 쳐다본다”고 덧붙였다.

“낙서와 마이크를 보면서 ‘지금까지 이렇게 있었지’, ‘오늘을 시작해보자’라는 생각을 해요. 오늘이 어제와 같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어제의 일에 이어서 오늘이 진행될 수도 있고. 그렇다 보니 ‘오늘은 성공하자’, ‘본하야 잘하자’라는 생각으로 무대에 올라요. 그다음 저는 제 자리로 가서 본하를 부르고, 그렇게 다시 극이 이어지는 느낌으로 해당 장면을 풀어나가고 있어요.”

본하와 우빈은 같이 또 따로 존재한다. 무대에 덩그러니 홀로 남겨질 때 우빈은 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땅따먹기하고, 때로는 본하의 이름을 쓰기도 한다. 그 공간을 노윤은 ‘스퀘어’라고 불렀다. ‘트레이스 유’의 무대는 쓰임새가 다양하다. 클럽 ‘드바이’로 사람들에게 오픈된 공간이 되었다가 본하와 우빈 만이 존재하는 대화의 장이자 그들의 내면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스퀘어는 그보다 더 깊은 우빈의 내면, 또는 본하의 내면을 보여주는 장소다.

 


“스퀘어에서 우빈과 본하는 한 번도 얼굴을 마주 보지 않아요. 그곳에서 하는 행동은 ‘나라면 혼자 있을 때 무엇을 할까’라는 생각에서 착안한 것들이에요. 우빈은 본하가 약을 먹지 못하도록 약을 모아 둬요. 약을 먹으면 둘 중 한 명은 죽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약을 밟아버려요. CCTV로 볼 때 우빈이 그러한 행동을 하면 안 되니 땅따먹기를 하는 거죠. 그건 본하와 우빈이 어릴 때부터 함께 땅따먹기하며 지냈다는 것을 보여주는 모션이기도 해요. 다음 장면에서 문성일 배우도 땅따먹기하는데 그래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죠. 동시에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다는 것도 보여줄 수 있어요.”

본하를 대하는 우빈 만큼, 우빈을 대하는 노윤 역시 치밀했다. 섬세하게 캐릭터를 다듬어 나갔다. 그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듯 관객 반응 역시 뜨겁다. 노윤이 그린 우빈의 매력을 묻자 그는 “초반 본하에게 휘둘리고 놀림 받는 우빈이 궁금하다면 추천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극과 극의 캐릭터를 선보이길 원한다던 그는 이를 위해 의상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

 

 


“의상도 저에게는 일종의 ‘장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이러한 것을 의식하고 의상을 교체한 것은 아니에요. 원래는 의상이 지금 입는 재킷이 아니라 흰색 셔츠였어요. 그 의상으로 후반부 연기를 하려고 하니 본하와 겹치는 느낌이더라고요. 의상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순간 지금 입고 나오는 코트를 봤어요. 보자마자 ‘이거구나’ 싶었어요. ‘태양에 눈이 멀어서’ 끝나고 의상을 교체하고 무대에 나와요. 의상의 힘을 어느 정도 받는 것 같아요. 관객들이 말해주길 코트 입고 나오니 무섭다고 하더라고요. 본하에게 심어주고 싶은 감정이 무서움이 맞고, 또 초반과 후반 감정 상태를 그렇게 나누는 게 좋을 것 같아 의상을 바꿔 입고 나오고 있어요.”

 
# 나는 너야, 너는 나야

“너 진짜 미친거니 정말 돌아 또라이. 세상 누구보다 네가 또라이 또라이. 너 진짜 미친거니 정말 돌아 또라이. 세상 누구보다 네가 또라이 또라이”. 의미 없는 논쟁에도 수확은 있다. ‘똘끼’는 둘 다 만만치 않다는 것을 관객에게 확실하게 보여줬으니 말이다. 대외적으로 ‘드바이’의 또라이는 구본하다. 하지만 우빈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도토리 키재기에도 이들은 누구보다 진지하다. 서로 다르다 주장하는 이들, 우빈이 바라보는 본하는 어떤 인물일까.

 


“확실한 것은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라는 거예요. 하지만 대사에 나와 있듯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기억을 지워버려요. 그만큼 연약하죠. 기억을 지우고 자해하고, 아픔이 많아요. 센 척을 하지만 아니에요. 그러다보니 점점 더 본하를 감싸게 되는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이 몰아붙이는 연기를 하는데, 본하가 울고 있는 모습을 보면 측은지심이 생겨 안쓰럽더라고요. ‘내가 너무했나?’ 싶기도 하고요. 사람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아이라고 생각해요. 본하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능력도 대단한 것 같아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모성애를 자극하게 본하를 만드니 말이에요.”

이번 공연에서 본하 역은 문성일, 박규원, 최석진이 맡아 열연을 펼치고 있다. 노윤은 문성일과 고정 페어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우빈 역을 맡은 다른 배우들과 달리 박규원, 최석진과도 호흡을 맞춘 바 있다. 각기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는 세 본하, 우빈을 연기하는 노윤에게도 다르지 않았다. 상대방의 연기는 좋은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노윤의 우빈을 더욱 단단하게 다듬어 나갔다.

 

 


“문성일 배우의 본하는 굉장히 침착해요. 말도 잘하죠. 통통 튀는 느낌보다는 진중해요. 보고 있으면 마음이 먹먹해지기도 해요. 문성일 배우의 눈이 상대방을 참 슬프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래서 후반부에서 제가 더 강하고 세게 몰아붙이게 돼요. 제가 이렇게 하면 더 잘 슬퍼해주고, 잘 당해주니까요. 워낙 연기를 잘하기도 하고. 가끔 화를 내다가도 눈을 마주 보게 되면 갑자기 슬퍼질 때도 있어요. 또 마음 편하게 연기할 수 있어 좋아요.”

함께 공연하는 횟수가 늘어 갈수록 그들만의 ‘플롯’이 생기기 마련이다. 문성일과의 공연에서는 ‘-주세요’가 특별한 순간으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사전 합의는 말도 안되는 일. 본하가 내뱉는 말에 우빈은 행동해야 한다. 오늘은 어떨 것을 시킬까 걱정하며 노윤은 무대에 오르기 전 만반의 준비를 한다. 물론 그러한 준비는 문성일의 입을 통해 ‘주세요’가 나오는 순간,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정말 상상하지 못한 것이 나올 때가 있어요. 그때부터 머리를 풀가동 시키죠. 나름 시간을 끌면서 받아치려 하는데 그래도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있어요. 얼마 전에는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물에 젖은 고사리를 표현하면서 주세요’를 하라고 하더라고요. 정말 말도 안 되는 요구라 어려웠던 기억이 나요.”

또 노윤은 박규원을 향해 “노래를 정말 잘한다”고 칭찬했다. 그렇기에 메인 보컬 자리에 있기 충분한 본하라고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이어 그는 “귀엽다라는 단어가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봐도 본인이 당하고 있는 상황인데 ‘다 필요없어. 내가 다 이겨’라며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 정신적으로 가장 어린 본하를 연기하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고통받을 때도 굉장히 고통스러워하는 스타일에요. 후반부에는 그래서 바닥에 붙어 일어나지도 못해요. 도망 다니기 바쁘죠. 고개도 들지 못하고요. 박규원 배우와 연기할 때는 살짝 우빈이 사이코패스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최석진과의 만남은 예정에 없었다. 갑작스럽게 성사된 크로스 페어였다. “날 것 그대로의 최고봉이었다”는 노윤 말처럼 뜨거운 반응을 일으킨 회차로 각인됐다. 그는 최석진과 이제 겨우 두 번의 공연을 마쳤다. 그래서 노윤은 최석진의 본하를 설명하는데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세 명의 본하 중 가장 또라이에 어울리는 본하가 아닌가 싶어요. 솔직히 이야기하면 이 사람이 무엇을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아요. 그만큼 초집중 상태로 공연을 해야 했죠. 처음 공연했을 때 본하가 ‘트레이스 유’를 부르고 마이크 자리에 맥주병을 꽂아 놓고 가는데 정말 어이가 없어서 화도 나지 않았어요. 물론 재미있었어요. 앞으로 또 만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하게 되면 재미있는 공연이 나올 것 같아요.”
 
일명 ‘막내페어’로 불린다. 우빈 역을 맡은 배우 중 막내는 노윤이다. 본하를 연기하는 배우 중 막내는 최석진이다. 막내들이 만나 ‘이 구역의 또라이는 바로 나’라는 것을 보여주며 박수갈채를 받았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결말이었다. 첫 번째 크로스페어 공연에도 소름끼치는 반전을 자아내는 엔딩으로 잊을 수 없는 공연을 선물했다.

“저도 엔딩이 그렇게 나올 줄 몰았어요. 이렇게 하자고 합의하고 무대에 오른 것은 아니에요. 가볍게 결말에 대한 이야기를 하긴 했어요. 초반에는 노래도 그렇고 대사도 그렇고 처음 맞추는 합이라 ‘삐그덕’ 거리더라고요. ‘이거 잘못하면 큰일 나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제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모두 다 쏟아냈죠. 최석진 배우도 같은 것을 느꼈나 봐요. 다행히 반응이 좋았어요. 정말 감사하더라고요.”

노윤에게 소중한 작품 그 자체인 ‘트레이스 유’. 오랜 시간 관객을 만나고 있고, 이미 많은 관객이 관람한 공연이지만 그는 “모든 배우가 정말 열심히 관객들을 만날 준비를 해왔다. 장담한다. 한 페어를 보면 또 다른 페어가 보고 싶어질 것 같다”며 “일이나 다른 것들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와서 공연을 보고, 커튼콜을 즐기면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다”고 말한 뒤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사진 홍혜리·에디터 백초현 yamstage_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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