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결혼합니다”. 존과 캣은 결혼을 하루 앞둔 날 세상에서 잊지 못할 경험을 한다. 부부가 된다는 설렘도 잠시, 예상치 못한 일들의 연속 속에 두 사람은 당황하며 그간 보여준 적 없는 ‘진짜’ 나를 드러낸다. 때로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내뱉기도 하고, 상대방의 모습에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그렇게 조금씩 성장하며 ‘내일’의 결혼을 맞이한다.
뮤지컬 ‘투모로우 모닝’은 결혼 전날의 커플과 이혼 전날의 부부, 인생 최대의 터닝 포인트를 하루 앞둔 두 커플의 운명적 하룻밤을 그린 영국 대표 로맨틱 뮤지컬이다. 지난 2006년 런던 초연 이후 뉴욕 오프-브로드웨이, 일본, 호주, 독일 등에서 공연되며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번 공연에서 존 역을 맡은 배우 이태구와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 세상에 뮤지컬이라니
“성열석 연출과 김보정 배우와 예전에 ‘뷰티풀 선데이’라는 연극을 했어요. 당시에도 서로 호흡이 잘 맞았는데 이번에 ‘투모로우 모닝’ 새 시즌을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거예요. 연출님이 뮤지컬에 도전해보겠느냐고 묻더라고요. 그동안은 뮤지컬 무대에 설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투모로우 모닝’ 오디션을 보고 합격하면 함께 하자고 해서 오디션을 봤고, 지금 이렇게 무대에 오르고 있어요.”
그야말로 오랜만에 서는 뮤지컬 무대다. 그간 이태구는 ‘뷰티풀 선데이’, ‘히스토리 보이즈’, ‘두 개의 방’, ‘수탉들의 싸움_COCOK’, ‘밀레니엄 소년단’ 등 주로 연극 무대에서 활동해 왔다. 그만큼 용기가 필요했고, 도전을 위해 남다른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했다. 땀방울을 흘리며 연습에 매진했고, 무대에 올라 관객과 만나 후회 없는 공연을 선보이기 위해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었다.
“노래도 노래이지만 제가 몸을 정말 못 써요. 몸치에요. ‘투모로우 모닝’ 공연을 봤는데 ‘이걸 내가 한다고?’ 싶었죠. 연습과정도 힘들었어요. 안무 감독님도 그렇고, 조감독님이 많이 도와줬어요. 동작도 쉬운 거로 바꿔줬죠. 연습하면서 정말 많이 혼났고, 그렇게 배워나갔어요.”
매력적인 작품을 만났고, 그 안에서 함께 호흡하고자 하는 바람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러니 힘들어도 포기할 수 없었다. “한 인물에 치우치지 않고, 각자의 서사를 가지고 가는 것이 매력적”이라고 말한 이태구는 “극 분위기를 밝고 귀엽게 만드는데 일조하는 ‘존’ 캐릭터가 배우로서 욕심이 났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당당히 ‘투모로우 모닝’을 올릴 수 있었다.
“극 중 존은 무책임해도 꼴 보기 싫지는 않아요. 외려 귀엽죠. 사건을 통해 존은 성장해요. 그런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자기밖에 모르던 존이 가족을 생각하고, 자신을 희생할 줄 알게 되는 과정이 흥미로웠어요. 물론 그 과정에서 갈등이 생겨 캣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말이에요.”
극중 인물은 연기하는 배우와 닮았다. 당연한 이치다. 존과 이태구도 그렇다. 보고 있으면 ‘존=이태구’라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그에 대해 사전 정보가 없는 관객이라도, 마치 그럴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만큼 이태구는 존과 혼연일체 된 연기로 무대에 서 관객을 매료시킨다.
“주변에서 공연을 보고 ‘너 같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어요. 그간 해온 작품과 달라 의외의 모습을 봤다고 하는 분도 있고요. 결혼을 해 본 적 없고, 결혼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지만 저와 가장 많이 맞닿아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투모로우 모닝’에서 존은 살면서 마주하게 되는 사건들, 낯설지 않은 일상의 일들을 겪어나가요. 그러다 보니 제가 더 많이 극중 인물에 들어갈 수 있었죠.”
주변을 둘러보면 흔히 마주치는 풍경들, 그 속에서 이태구는 존을 찾아냈다. 실제 성격이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상황에 그는 극중 인물에 자신을 오롯이 맡겼다. 때로는 연애시절 기억이 도움이 되기도 했다. 이태구는 “연애 할 때 내가 어땠는지 기억을 떠올려 봤다”며 장난기 가득한 존, 캣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애교를 부리는 존에 자신을 녹여 냈다. 그 기억은 이후에도 요긴하게 사용됐다.
“옛 연인 레이첼을 떠올리며,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담아 노래하는 장면이 있어요. 공연 중 1열 객석에 앉은 관객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죠. 대부분 여성 관객이 앉아 있는데 한 번은 남성 관객이 앉아 있더라고요. 순간 ‘저분을 보고 해야 하는 걸까’ 고민을 했죠. 결국 그분에게 지나간 연인인 양 연기를 했어요. 저 포함, 모든 관객이 그날 웃음이 터졌던 기억이 나요. 외려 그분은 덤덤하게 보시더라고요.(웃음)”
당황스러운 순간, 멈칫하기 마련인데도 이태구는 재빨리 생각하고 민첩하게 행동했다. 무대에서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때문에 배우는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상황을 자연스럽게 풀어 나갈 수 있는 센스가 필요하다.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자세가 배우의 연기를 더욱 깊이 있게 다듬는다. 이태구는 어떨까. ‘유연하게 대처하는 편인 것 같다’는 말에 그는 손사래를 쳤다.
“공연 중 그런 상황이 항상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웃음이 터졌어요. 다른 공연 같으면 상대 배우가 나와 잡아주거나 할 수 있는데 ‘투모로우 모닝’은 제 솔로 부분에서 일어난 돌발상황이잖아요. 그 순간은 다른 배우들이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요. 상황에 내던져지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죠.”
하나부터 열까지, 쉬운 게 없다. 이태구는 연극 ‘밀레니엄 소년단’ 공연 중 ‘투모로우 모닝’ 연습을 시작했다. “공연 기간과 연습 기간이 겹친 것이 처음”이라던 이태구는 “이미 공연이 올라갔고, 한 달 안 되게 남았으니 연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처음이다 보니 정신이 더 없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게다가 뮤지컬이다 보니 연기에만 신경을 쓸 수도 없는 노릇. 그는 “춤과 노래도 철저하게 연습해야 했다. 무한 반복과 연습을 통해 지금 이 정도까지 올라온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이라며 웃어 보였다.
“보통 첫공 날 떨리기 마련인데 유독 더 많이 떨었던 것 같아요. 연극 같은 경우, 물론 그러면 안 되지만 대사 실수를 하거나 흐름을 놓치면 배우 자신이 티 내지 않고 다시 원상복구 할 수 있어요. 뮤지컬은 아니에요. 정해진 리듬과 박자가 있어 음이 나가거나 박자를 놓치면 제가 한 실수를 모두가 알아차리게 되죠. 그만큼 연습을 많이 해야 했어요. 걱정도 됐죠. 다행히 첫공에서는 큰 실수가 없었어요. 외려 공연 시작하고 1주일 정도 지나고 가사를 놓친 적이 있어요. 식은땀이 났죠.”
# 결혼을 앞둔 남자 ‘존’
사랑과 결혼, 그것이 곧 ‘투모로우 모닝’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결국 서로의 행복을 위해 ‘결혼’을 선택하고(존과 캣), 사랑했던 이들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이혼’을 결정한다(잭과 캐서린). 파란만장한 삶의 면면을 고스란히 담아놓은 작품은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를 재생산해 낸다.
“결혼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주변에 결혼한 친구가 별로 없거든요. 요즘은 다들 늦게 결혼하는 추세잖아요. 이번 설에 집에 내려갔더니 ‘결혼 안 하느냐’는 말을 들었어요. 그래서 ‘무슨 결혼이냐’고 대답했죠. 저는 35세까지 결혼 생각을 안하려고요. 작품을 위해서라면 결혼을 하고 싶다고 말해야 하는데, 결혼이라는 게 쉽지 않은 문제라는 걸 공연을 하면서 깨닫게 돼요. 현실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경제적인 부분도 준비해야 하고.”
이러한 고민은 극중 인물에게도 유용하게 작용한다. 결혼식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전히 존은 현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철없는 그의 성격이 캣을 더욱 힘들게 한다. 속이 타는 건 관객도 마찬가지. 이태구는 결혼 서약서를 작성하지 못한 존의 심정을 대변했다. 그제야 조금은 존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존이 그러죠. ‘벼락치기해야 잘하는 스타일’이라고. 저 역시 그래요. 마감 기간이 정해져 있으면 꼭 임박해서 완성해요. 그냥 놀 때는 재미가 없는데, 야자(야간 자율 학습)를 땡땡이치고 놀면 더 재미있잖아요. 그런 쾌감이 있는 것 같아요. 존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캣을 사랑하지 않아 서약서를 못 쓰는 건 절대 아니에요.”
결국 존은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아빠가 되기로 결심한다. 서약서에 자신의 마음을 꾹꾹 눌러담아 캣에게 전달한다. 두 사람은 행복한 ‘내일’을 기대하며 결혼 당일, 아침을 맞이한다. ‘투모로우 모닝’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잭과 캐서린의 이야기를 통해 또 다른 ‘사랑’을 들려준다. 한때는 설렘으로 가득했던, 풋풋했던 시절을 간직하고 있을 그들의 이야기를.
“전 시즌 공연을 보면서 잭이 이해가 안됐어요. 나쁜 짓을 하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용서 받을 수 있나 싶었죠. 아이를 바라보며 부르는 넘버가 있는데 그때 잭이 아담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왜 그가 힘들었는지 말해줘요. 그럼에도 용서 받을 수 있는 일인가 싶더라고요.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잭을 나쁜 놈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이해된다는 의견도 있어요.”
결혼에 대한 생각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늘 이야기할수록 어렵고, 답을 찾기 힘든 문제다. 누가 강요한다고 답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가 깨닫고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나만의 문제로 남는다. 이렇듯 ‘투모로우 모닝’은 이태구에게 결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줬다. 깊이 고민한 적 없던 결혼이 그에게 비로소 ‘문제’로 다가왔다.
“작품은 결혼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해 봤을 법한 내용을 담고 있어요. 살면서 한 번쯤은 결혼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죠. ‘투모로우 모닝’을 보고 좋은 쪽으로 답을 찾아가길 바라요. 혹시라도 답을 내리지 못해도 진지하게 고민해볼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더불어 위로도 받을 수 있을거라고 믿어요.”
# 나를 내려놓는 과정
이번 공연에서 존의 사랑, 캣 역은 강연정, 김보정, 김환희가 연기한다. 이태구는 “연정 배우와 연기를 하면 확실히 누나라서 그런지 편하게 기대 가는 면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다. 많이 잡아준다고 해야 할까”라며 “연정 배우가 리드를 해주면 내가 따라간다. 에너지가 넘친다”고 운을 뗐다.
“연정 배우와 할 때 슬퍼지는 순간이 있어요. 눈물 날 것 같은 ‘찡함’이 잘 사는 페어죠. 김보정 배우와는 동갑내기 친구예요. 아마추어 밴드도 같이 하고 있고, 오래 봐온 사이라 정말 편해요. 그래서 못 볼 것 다 보고 결혼하는 친구 사이의 투닥거리는 모습이 잘 사는 것 같아요. 김환희 배우는 제가 느끼기에 가장 파워풀한 캣이에요. 모든 부분에서 가장 ‘힘’ 있는 모습을 보여주죠.”
‘투모로우 모닝’은 계속되지만 이태구는 관객과 먼저 이별을 고해야 한다. 이제 조금 편해지기 시작했는데 얼마 남지 않은 공연 기간이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그는 “분장실에 가면 ‘이제 정 떼야지’라면서 다른 배우들이 장난을 친다. 장난인 줄 알지만 한편으로는 아쉽더라”며 점점 다가오는 페어별 막공에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존이 그랬던 것처럼, 이태구도 ‘투모로우 모닝’과 함께 성장했다. ‘투모로우 모닝’은 처음이라 적응 하는 과정이 녹록하지 않았지만 점차 무대에서 즐길 줄 아는 배우로, 존을 더욱 생동감 있게 표현해내는 배우로 성장을 거듭하며 관객 마음을 제대로 사로잡았다. 실은 극중 인물과 닮은 꼴 배우가 아니라는 걸, 피나는 노력으로 일군 결과물이었다는 것을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눈치챌 수 있었다.
“존처럼 까불거리는 면도 있겠지만 원래는 그런 성격이 아니에요. 혼자 있으면 조용하고, 튀지 않는 성격이라고 생각해요. 작품을 하면서 그런 성격이 많이 깨졌어요. 표현하는데 있어 어려움을 덜었죠. 뮤지컬 장르다 보니, 확장해 표현하는 것도 저에게는 숙제였어요. 춤, 노래에 제 감정과 의도를 실어 관객에게 전달해야 하는데 ‘투모로우 모닝’을 통해 많이 배웠죠. 저에게 또 다른 무기가 생긴 것 같아요.(웃음)”
성장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술술 풀리는 이야기 속에서성장은 더딜 뿐이다. 갈등이 있고 좌절을 맛본 뒤에 비로소 자신과 마주하고 성장의 길목에 들어서게 된다. 그러다보니 존을 바라보는 관객 시선은 마냥 곱지만은 않다. 실제로 공연장에서 한 관객이 드라마를 보듯 육성으로 욕을 해 당황했다고. 이태구는 관객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는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사랑스럽게 봐 줬으면 한다”고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이태구는 여전히 남아 있는, 자신이 해결해야 할 숙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며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공연이 시작되면 제가 무대에 홀로 등장해요. 첫 시작을 제가 하는 거죠. 짧지만 오롯이 다 책임져야 해요. 관객은 오프닝 무대를 보고 공연에 대한 첫 인상을 갖게 되잖아요. 그러면서 결혼에 대한 설렘도 전달해야 해요. 호흡이 뜨지 않고 박자도 맞춰야 하죠. 완벽하지는 않지만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존이 캣을 만나 성장했듯, 이태구는 ‘투모로우 모닝’을 만나 한 뼘 더 성장했다. 그런 이태구의 ‘내일’을 응원해본다.
사진 홍혜리·에디터 백초현 yamstage_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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