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YAM #2]백기범, 별을 쏘다

루이스는 아버지가 그토록 사랑했던 바다로 나갔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항해 일지를 썼다. 첫장부터 막혔다. 무엇을 써야하는지 몰랐다.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항해일지를 채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매일 같이 그 많은 나날을 어떻게 항해일지에 담을 수 있었을까.

굳이 바다가 아니어도 괜찮다. 우리도 인생이라는 바다를 힘겹게 항해하고 있으니. 백기범에게 ‘항해일지를 적는다면 첫 장에 무엇을 쓰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한 참 뜸을 들였다. “적을 말이 없어서가 아니다. 너무 많아서 무엇을 먼저 적을지 고민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참을 생각한 끝에 백기범은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느려도 괜찮으니 포기하고 돌아가지 말자. 천천히 걸어가도 좋고, 기어가도 좋으니, 뛰어가는 사람 보고 그 사람을 쫓아가지 말자. 내 페이스대로 걸어가자. 끝까지 완주하자.’ 그렇게 적고 싶어요. 배우로서 방황을 많이 했어요. 친한 친구들이 일찍이 배우로서 입지를 굳혀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뮤지컬 ‘햄릿’ 이후 작품 활동을 1년 정도 쉬었어요. 그기간 동안 웹드라마도 촬영했고, 밴드 활동도 했어요. 밴드 활동은 지금도 하고 있어요. 앨범도 2장이나 냈어요.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도 있고, 바리스타 자격증도 취득했어요. 연기 말고 다른 것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해보고 싶은 것을 다 해봤어요. 잠깐 쉴 생각이었는데 정말 오래 쉬었네요.”

항해 일지 첫 장에 채우고 싶다는 말과 달리 백기범은 포기도 했고, 돌아도 가봤고, 뛰어가는 사람을 보고 그를 쫓아가려 자기 페이스를 잃기도 했다. 그리고 그 시간을 보내고 난 뒤 다시 깨달은 것은 무대에서 연기하고 노래하고 싶다는 간절함이었다.

“초심과 열정을 찾았어요. ‘해적’ 첫공을 올렸을 때 어떤 분이 ‘역시 무대가 잘 어울린다’고 말해주셨어요. 보람찼죠. 내 생각과 여러분 생각이 다르지 않다는 것,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았어요. 첫공을 올리고 정말 많이 울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해보려고요. 기회가 되면 무대에서 더 많이 뵙고 싶어요.”

잠시 쉬었다 가도 괜찮아. 그 시간이 없었으면 지금의 이 순간도 존재하지 않을 테니. 누구보다 무대의 매력을, 소중함을 잘 알고 있는 백기범. 그에게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건넸다. “배우가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그러자 이번에도 물어봐 주기를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답변이 쏟아져 나왔다.

“운동을 좋아해서 육상부, 농구부 활동을 열심히 했어요. 체대 입시에도 도전했죠. 밴드부도 했는데 그때 제가 노래하는 걸 좋아하는 것을 알게됐어요. 그래서 실용음악과에 진학하기로 결심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뮤지컬 영화 ‘하이스쿨 뮤지컬’을 봤는데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팝 음악으로 뮤지컬을?’ 그렇게 뮤지컬 장르에 관심을 두게 됐죠.”

연극영학과에 진학했지만 자신이 배우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던 백기범을 배우로 이끈 건 다름 아닌 친구 윤소호였다. 그는 “본인은 모를 것”이라며 친한 친구의 데뷔가, 배우로서의 활동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했다. 백기범이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윤소호는 무대 데뷔를 치렀다. 데뷔작은 챙겨 볼 수 없었지만, 휴가 나오는 날이면 늘 동기의 공연을 보러 극장을 찾았다고.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를 처음 봤어요. 이후 그 친구 작품은 모두 챙겨봤죠. 신기했어요. 대견하더라고요. 나와 같이 대학 생활을 하고, 매일 술을 마시고 놀던 친구가 이제는 무대에서 역할을 맡아 연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멀게만 느껴졌던 뮤지컬 배우라는 꿈이 그때 처음으로 가깝게 다가왔어요.”

생각보다 빨리 꿈을 이뤘다. 그는 기뻐했고, 꿈을 찾게 해준 친구에게 고마움을 드러냈다. 백기범은 “정작 본인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아이러니한게 데뷔한 지 6년이 지났는데, 한 번도 소호와 같은 작품을 하지 못했다. 같은 무대에 서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배우라는 직업의 매력. 그것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에 있다. 여러 인물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백기범은 그것을 가장 큰 매력으로 꼽았다. 그는 “다른 인물로 산다는 것, 그리고 그 삶을 누군가가 바라봐 준다는 것. 그로인해 여러 사람에게 사랑받는다는 것, 그게 제일 큰 매력”이라고 이야기했다. 잘 해냈을 때의 반응이지만, 그럼에도 그는 배우라는 직업이 주는 뿌듯함에 한껏 심취해 있었다.

홍혜리 에디터 © 얌스테이지 YAMSTAGE

“자기 전에 관객에게 받은 편지를 읽는 게 요즘 저의 행복이에요. 편지에 제가 생각하지도 못한 디테일이 적혀 있을 때도 있고, 저보다 저를 더 잘 아는 것 같아 편지를 읽으면서 많이 울어요. 이런 감정은 정말 배우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정말 행복해요.”

방황을 했고 다시 찾은 행복이다. 그렇기에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해적’을 준비하고, 무대에 오르는 과정에서 이미 겪을 수 있는 고비를 다 겪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백기범은 “‘해적’ 연습 시작하기 전에 성대 수술을 했다. 연습 기간에는 다이어트를 해야 했고, 그로인해 면역력이 떨어져 축농증도 생겼다. 입술 포진도 3주간 지속됐다”며 “누구는 삼재라고도 하는데 뭐가 됐든 다 이겨냈고, 어제도 공연을 잘하고 나왔다. 이제는 어떤 고비가 찾아와도 이겨낼 수 있고, 어떤 슬럼프가 찾아와도 이겨낼 준비가 돼 있다”고 자신했다.

백기범은 온도차가 큰 배우다. 웃는 얼굴과 그렇지 않을 때의 얼굴이 극과 극을 달린다. 때로는 그런 온도차 때문에 “화 났느냐”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고. ‘해적’ 배우들도 그런 백기범을 오해하고 속마음을 잘 털어놓지 않은 사람이라 오해하기도 했다고 그는 말했다. 그렇기에 더 많이 웃으려 노력하는 편이라던 백기범은 “배우로서 그런 온도차가 도움이 된다. 표정이 풍부하기에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이 더 많다. 그게 배우로서 저의 장점”이라고 정리했다. 기복 없는 배우가 되고자 한 그의 바람. 그 바람의 결과물인 ‘해적’의 루이스와 앤을 늦기 전에 많은 관객이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에디터 백초현 yamstage_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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