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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인터뷰

[인터뷰YAM #2]‘더픽션’ 박규원, 한 권의 인생으로부터

“그레이에게 소설은 ‘전부’예요. 그리고 와이트를 만나면서 ‘우리의 전부’로 바뀌죠.” 뻔할 지도 모르지만, 무명작가 그레이 헌트에게 소설은 ‘인생’이었다. 때로는 가장 뻔한 대답이 가장 큰 울림으로 찾아오듯 그 이상의 현답(賢答)은 없었다.

그레이의 조력자이기도, 동업자이기도 한 와이트는 그야말로 어느 날 불쑥, 말 그대로 ‘한 줄기 빛’처럼 그의 삶에 찾아온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수 있는 시간 동안 함께 ‘그림자 없는 남자’를 만들어간다. 그레이가 바라본 와이트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와이트는 그레이에게 ‘생명’을 다시 불어 넣어준 친구예요. 그레이는 이미 작가로서 생명력을 잃은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와이트를 우연히 만나면서 그레이의 삶이 바뀌죠. 와이트를 만나지 않았다면 이 소설이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을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와이트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인터뷰 내내 박규원은 상대 배역인 와이트에 대한 애정을 듬뿍 드러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넘버로 꼽은 ‘소년의 밤’에도 와이트에 대한 서사가 녹아있다. 무대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장례 미사에서 마주친 어린 소년을 바라보는 그레이의 눈빛은 사뭇 씁쓸하게 그려진다.

“‘소년의 밤’에 등장하는 소년은 와이트의 어린 시절을 그리고 있어요. 저는 이 장면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순간 가장 위로받아야 할 친구는 그 어린 소년인데 누구도 소년을 위로해주지 않죠. 그 장면에서 정말 표현하고 싶은 것은 ‘그레이도 그렇다’는 거예요. 노래를 부르며 위로하고 있지만, 소년에게 다가가지는 못해요. 나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죄책감이 있는 거죠. 그런 경험들이 쌓여 오늘의 그레이를 만들었을 거예요. 공연을 할수록, 저에게 그 장면이 크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살인자의 손에 어머니를 잃은 소년은 악(惡)을 악으로 처단하는 소설 속 살인마 ‘블랙’에 매료된다. 소년은 ‘그림자 없는 남자’의 재연재를 통해 살인마 블랙을 세상에 다시 내보이고,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이 판치는 세상에 블랙을 표방하는 실제 살인마가 등장한다. 무의식적으로 그레이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죽음의 무게를 누가 정할 수 있느냐’. 이처럼 ‘더픽션’은 1시간 30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동안 거대한 담론을 제시한다.

“저는 그 누구도 남에게 무언가를 강요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게 선이든 악이든 권유를 할 수는 있지만 강요할 수는 없어요. 범죄자를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맞고 틀림을 누가 정할 수 있냐는 물음인 거죠. 그렇기에 저 역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강요하는 삶을 살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와이트가 저질렀던 오류를 범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완벽하지 않아요. 누구든 실수할 수 있죠. 다만 그 실수를 얼마나 빨리 인정하고, 처음으로 되돌아올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와이트는 악을 악으로 처단해야 한다고 외치지만 그레이는 고개를 젓는다. 작품 말미 그는 ‘네 자신을 잃지 말아라’는 짧은 한마디를 남기고 자살한다. 박규원은 그의 선택을 “와이트를 위한 희생”이라고 표현했다. 다소 극단적이고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선택에 대해 그는 고민을 거듭했다.

“가장 고민했던 장면이에요. 처음부터 자살할 용기는 없었을 거예요. 어쩌면 그레이가 생각한 최선은 와이트의 죄를 뒤집어쓰고 죗값을 치르는 거였을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와이트는 설득 당하지 않아요. 그가 그레이에게 소리를 치고, 그러다 보니 죄책감을 느끼면서 선택의 강도가 조금 더 세진 거죠. 물론 훨씬 더 많은 대화가 오갔을 거예요.”

 


박규원이 극중 인물로서 관객들에게 던지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기다렸다는 듯 ‘따뜻함’이라고 답했다. 해피엔딩을 좋아한다며 운을 뗀 박규원은 작품에 대해 “피가 섞이진 않았지만 가슴 따뜻한 형제들의 이야기”라고 정리했다.
“요즘은 맹목적인 비난들이 너무 많아요. 남이 잘되는 것을 못 보는 시대기도 하고요. 결국에는 사람들이 여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더픽션’을 통해 관객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요. 이 가슴 따뜻한 이야기로 관객이 한 주를 살아가는 힘이 되기를 바라고요.”

 

 

 

사진 홍혜리·에디터 백초현 yamstage_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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