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YAM #1] ‘6시 퇴근’ 랑연, 인연의 또 다른 시작점에서

두 번째 만남이었다. 인터뷰로 배우 랑연과 마주한 것이. 그리고 우연찮은 기회에 한 번의 만남이 더 있었다. 그 세 번의 만남을 기억한 배우는 자그마한 선물을 준비해왔다. 소중하게 펼쳐 놓은 인연의 끈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몽글몽글 피어오른 감동은 잊지 못할 추억을 한 페이지 가득 채워 넣었다.

뮤지컬 ‘6시 퇴근’은 제과 회사의 ‘홍보2팀’ 직원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작품은 회사로부터 한 달 안에 정해진 영업실적을 거두지 않으면 팀이 해체된다는 통보를 받은 팀원들이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직접 록밴드를 결성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많은 우여곡절을 그려낸다. 극 중 여행작가를 꿈꾸는 대리 다연 역을 맡은 랑연은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는 공연”이라며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와 함께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 새롭게 시작된 인연

작품도 사람과 사람의 인연처럼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뮤지컬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 무대에 오르고 있던 랑연은 지인의 소개로 ‘6시 퇴근’과 인연을 맺었다. 좋은 이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흔쾌히 작품에 참여하기로 결정했고, 계약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리고 무대에 오르기 위해 연습에 매진하며 캐릭터를 다듬어 나갔다.

“배우들이 악기를 직접 다뤄야 해요. 그렇기에 연습 과정이 힘들 수도 있고 나름의 고충도 있을 거예요. 그것 역시 익숙해지면 충분히 즐길 수 있어 매력적이죠. ‘6시 퇴근’은 스트레스받는 작품이 아니에요. 외려 저는 공연을 하면 할수록 힐링 받고 있어요. 다만 ‘극 중 인물의 캐릭터를 어떻게 하면 더 잘 구축할 수 있을까’ 등 극을 탄탄하게 다듬을 수 있는 장치들을 찾아야 했는데 그런 것들이 힘들었죠.”

배우에게도, 보는 관객에게도 악기 연주는 흥미로운 요소가 분명했다. 때로는 실수가 발생해도 그마저 ‘라이브’의 매력으로 자연스럽게 극에 스며들었다. 흥겨운 리듬이 가득한 무대는 관객과 배우를 연결 지으며 서로의 호흡을 주고받는 장으로 탈바꿈한다. 이에 랑연은 “실수하지는 않을까 걱정되긴 했다. 늘 처음 하는 공연처럼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무대서 애드리브를 능숙하게 해내는 배우도 아니고”라면서도 “다행인 것은 2인극 출연 경험이 나름 있어 무대에서 대처하는 노하우가 생겼다”고 말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는 그러한 경험으로 ‘듣는 힘’이 생겼다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극 중 다연은 직장인 밴드 ‘6시 퇴근’ 안에서 건반을 담당한다. 랑연은 또 한 번 피아노 앞에 서게 됐다. 뮤지컬 ‘리틀잭’에서 그는 피아노 연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바 있다. 기타와 피아노 실력은 이미 검증된 상태에서 다시 한번 피아노 앞에 선 랑연에게 기대가 모이는 것도 당연한 결과였다. 기대에 부응하듯 그는 능숙하게 피아노 앞에서 기량을 뽐내고 매력을 드러냈다.

“다행히 저는 피아노 악보를 볼 줄 알고 리듬감 역시 연습이 돼 있는 상태여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어요. ‘리틀잭’에서 줄리는 피아노 연주를 하지만 객석에서는 손가락이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그 움직임을 직접 확인할 수 없었죠. 세컨드 피아노도 있었고요. ‘6시 퇴근’은 달라요. 현란하게 연주해야 하죠. 팔이 두꺼워지는 느낌이에요. 또 정리된 것을 외우라고 하면 외우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에요. 그런 부분이 힘들긴 했지만, 연습을 거듭할수록 익숙해지더라고요.”

서울 집에 피아노가 없어 연습이 힘들었다던 랑연은 함께 앨범을 발표한 작곡가 루브의 도움으로 전자 키보드를 빌려 쉴 때도 연습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연습의 고비는 다행히 넘길 수 있었다. 그러자 또 다른 문제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배역에 여러 배우가 캐스팅된 ‘6시 퇴근’은 다양한 조합으로 새로운 공연을 볼 수 있다는 매력이 있지만, 자칫 잘못했다가는 공연이 산으로 가버리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장점을 살리기 위해 배우들은 더욱 노력해야 했고, 연습으로 합을 맞춰나가며 공연의 완성도를 높여야 했다.

“연습할 때와 무대에 올랐을 때 간극이 가장 적은 공연이었던 것 같아요. 캐스트가 많다 보면 정해진 템포대로 진행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는데요. 그래서 모두 그 부분에 걱정이 많았어요. 스태프들이 고생이 많았죠.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요. 걱정이 많았지만 다행히 무사히 공연을 마칠 수 있었어요.”

이번 공연에서 다연 역은 랑연을 비롯해 총 네 명의 배우가 맡는다. 그러다 보니 무대에 오르는 횟수가 많지 않다. 합을 맞추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힘들어 보이는 스케줄에 걱정이 앞섰다. 빠듯한 일정도 분명 문제이지만, 무대에 오르는 기간이 길수록 연기 흐름을 이어가는 것에도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불안할 것 같은 대사는 계속 연습해요. 문제는 피아노예요. 악기는 조금만 안 쳐도 손이 금방 굳어져 버려요. 그런 불안감 때문에 틈틈이 연습하고 있어요. 캐스팅이 많다 보니 경우의 수도 많아요. 그만큼 리허설 시간이 길어요. 주말 공연이 있을 때는 공연 4시간 전에 극장에 가요. 리허설하고 무대에 오르면 커튼콜을 4번 한 기분이 들 정도죠.”

# 여행작가, 다연이 쓰고 싶은 글

다양한 사람이 공존하는 회사에서 눈에 띄는 인물이 있다. 할 말은 하고 사는 사람. 상대가 자기보다 높은 계급의 상사라 하더라고, 불합리한 대우에 발끈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 대리 다연은 맡은 업무는 ‘똑’ 소리 나게, 완벽하게 해내면서 동시에 상대의 지위고하 막론하고 바른말 할 줄 아는 그런 인물이었다. 극 중 인물의 이러한 성격은 배우 랑연과 만나 더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개했다.

“연출님이 바란 다연은 털털한 매력이 있는 인물이었어요. 그래서 잘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죠. 제가 많이 털털한 편이거든요. 그러한 성격을 잘 표현하면 괜찮을 것 같았어요. 그렇게 정리된 다연이라는 인물은 사회성이 굉장히 좋다는 거예요. 똑 부러지는 성격이죠.”

극적인 효과는 물론이고 현실적인 부분까지 꼼꼼히 챙겼다. 랑연은 극 중 인물에 관객이 더 공감할 수 있도록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다듬었다. 사회성을 갖춘 캐릭터로 중심을 잡으니 다른 설정들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인사성이 밝아야 하고, 친근한 성격에 정의로움까지 갖춘 그런 인물.

“다연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에요. 인간관계에서 암묵적으로 정한 ‘예의’라는 게 있잖아요. 그런 것을 벗어났을 때 잘 못 보는 편이죠. 예전에는 불편한 행동을 누군가 하면 표정부터 변했는데, 지금의 다연은 그렇지 않아요. 열은 받지만 오죽하면 저럴까 싶은 마음이 들어 측은하게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미워하지 않고 이해하려 더 노력하고 있어요.”

랑연과 만난 캐릭터는 생동감이 넘쳐 흐른다. 결코 미워할 수 있는 당돌한 매력을 안고 관객 앞에 선다. 그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도 시간문제다. 창작진이 의도한 이미지가 아닐지라도 랑연은 자신과 닮은 캐릭터를 무대에 세웠고,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보였다.

“장보고 앞에 서류를 떨어뜨리는 장면이 있어요. 말도 안 되는 장면인데 그 순간 울화통이 터져요. 그게 제 본모습에 가까워요. 연출님이 ‘욕만 안 했지 속으로는 욕하고 있는 것’이라고 노트해줬어요. 회사에서 잘리면 안 되지만 그래도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의 감정을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어요.”

여행작가를 꿈꾸지만, 현실은 회사원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해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정해진 시간, 아니 그보다 더 늦은 시간에 퇴근하기 일쑤다. 다연에게 회사는 돈을 버는 곳이자,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곳이며 동시에 능력을 인정받는 곳이기도 하다. 랑연은 그런 극 중 인물을 향해 “어디서 무엇을 하더라도 잘 해낼 거라는 믿음이 있다”고 운을 뗐다.

“여행작가를 꿈꾸지만, 회사생활을 하며 사람들과 만나고 지내는 것도 즐거울 것 같아요. 배우들도 연습과 공연이 반복되는 삶을 살지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요. 그것도 하나의 여행과 같다고 생각해요. 다연은 여행을 가고 싶다기보다는 여행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에요. 삶에 얽매여 있는 시간만으로는 자신이 쓰고 싶은 것을 쓰는 것이 부족하죠. 그 때문에 떠나고 싶어 아등바등하지 않아요. 글을 쓰고 싶어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거죠. 목표가 달라요.”

# 다연과 장보고, 55색 마음

계약직 사원 장보고의 마음이 향한 곳에 다연이 있다. 하지만 다연의 마음은 그와 같지 않다. 러브라인이라고 하기에는 어딘지 애매하다. “러브라인처럼 보이나요?”라고 물을 정도로 랑연은 다연과 장보고의 관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지난 시즌과 가장 많은 차이를 보이는 지점 또 바로 이 부분이다. 그는 “장보고는 음악이 하고 싶고 다연은 글을 쓰고 싶어 한다. 공통점을 발견했을 때 공감하는 마음이 커진다”라면서 “이성적인 호감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번 공연에서 장보고 역은 고유진, 주종혁, 조풍래, 임준혁, 이승헌이 맡았다. 5인 5색 장보고와 연기 호흡을 주고받아야 하는 랑연은 “너무 다르다”는 말로 각각의 매력을 대신했다. 인터뷰 당시만 해도 그는 고유진, 임준혁과 무대에 오른 적이 없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임준혁의 경우 특별회차로 랑연과 한 무대에 오를 확률이 적었다. 그만큼 무대에 올랐을 때의 기대감은 상당했다.

“준혁이의 장보고는 평생 못 볼 것 같아요. 연습할 때, 그리고 객석에서 본 준혁이는 4차원 같아요. 그래서 꼭 함께 연기해 보고 싶어요.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요. 순수하면서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예요.”

반면 주종혁의 장보고는 싱어송라이터를 꿈꾸는 극 중 인물의 욕망이 내재 돼 있는 만큼 야성미가 넘친다고. 조풍래 이름이 나오자 랑연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정말 웃기다. 진짜 회사원 같은 느낌이다. 소극적인 모습도 보이고. 그럼에도 용기를 내 자기의 꿈을 이야기하는 캐릭터로 표현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승헌이는 그냥 커요.(웃음) 무대에 딱 한 번 같이 서봤어요. 정갈한 장보고예요. 굉장히 엄친아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회사에 다녀도 되나?’ 싶더라고요. 비주얼이 주는 이미지와 달리 연기는 순박하게 하니 거기서 오는 매력이 정말 대단해요. 제가 총을 쏘면 쓰러지는 장면이 있는데 정말 귀여워요. 그건 꼭 봐야 해요.”

임준혁과 마찬가지로 꼭 한 번 무대에서 만나고 싶은 장보고로 제일 먼저 이름을 언급한 고유진. 랑연은 고유진의 매력을 단번에 파악했다. 그는 “무대에 선 고유진 배우를 보니 정말 장보고 캐릭터를 잘 살리더라. 그간 노래 잘하는 가수로만 알고 있었는데 연기도 잘하는 배우라는 걸 느꼈다”며 “상대 배우와의 호흡도 잘 받아주고 무대를 이끌어 나가는 에너지가 대단하다.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느껴져 빨리 만나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할 말은 하고 살아요, 우리

인터뷰가 무르익어 갈수록, 랑연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고민은 극 중 인물의 성격에 관한 것이었다. ‘6시 퇴근’이라는 작품 안에서는 다연은 사이다 발언으로 속을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당돌한 회사원이다. 모두의 응원을 받을 만큼 매력이기까지 하다. 현실에서는 어떨까. 누구도 쉽게 자기 생각을, 속마음을, 타인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없다. 랑연 역시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나 계급사회인 직장에서는 더더욱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렵다.

“회사생활을 할 때, 또는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생기면 그것을 내 잘못으로 끌고 오지 않았으면 해요. ‘6시 퇴근’에서처럼 직장인 밴드 활동을 하는 것도 좋겠죠. 좋은 쪽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을 찾았으면 합니다. 이 작품을 보고 대리만족을 느꼈으면 해요. 물론 다연의 모습을 보고 상사에게 바른말 하겠다고 소리치면 안 돼요. 회사라는 공간이 그렇게 숨 막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홍혜리 에디터ⓒ얌스테이지 YAMSTAGE

‘6시 퇴근’ 속 등장인물들은 가슴에 저마다 꿈을 품고 살아간다. 꿈을 가슴에 묻어두고 잠시 현실과 타협해 일상에서의 시간을 보낸다. 언젠가는 이 꿈을 펼치는 날이 오르라, 부푼 희망을 안고 말이다. 랑연은 꿈과 현실의 타협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 편이냐는 질문에 “타협을 넘어선 것 같다”고 답했다.

“타협해야 하는 순간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그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뮤지컬 업계 상황도 좋지 않고, 특히 여배우들이 설 수 있는 무대에 많지 않잖아요. 그런 상황이 마냥 속상하기도 했어요. 현실을 인정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부분과 나를 채워가는 시간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나라는 사람은 세상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면서 발전해 나가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랑연은 마지막으로 “배우들이 연주를 잘하는데 틀리는 것도 봐줬으면 한다. 일부러 틀리는 것이다. 라이브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라고 강조했다. 그런 그에게 ‘6시 퇴근’은 어떤 의미의 작품으로 남을까. ‘쉼터’. 랑연은 작품을 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그는 “치유 받고 있다. 제 공연이 아닌 날에도 극장을 찾아 공연을 봤는데 벌써 6번이나 봤다. 관객들 역시 노래를 다 외울 때까지 봤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에디터 백초현 yamstage_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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