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YAM #1] 조풍래, 우리와 닮아 더 사랑스러운 ‘6시 퇴근’

서글서글한 눈으로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모든 질문에 진솔하게 답한다. 자기 생각이 제대로 전달되기를 바라며 경험담과 지인의 이야기까지 아낌없이 꺼내놓는다. 사근사근한 성격은 감출 수 없듯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인터뷰가 진행되고 준비한 질문에 알찬 답변이 돌아온다. 배우 조풍래와의 만남이 그랬다.

조풍래는 ‘6시 퇴근’에서 극중 계약직 사원 장보고 역을 맡아 무대에 오르고 있다. ‘6시 퇴근’은 제과 회사의 ‘홍보2팀’ 직원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작품은 회사로부터 한 달 안에 정해진 영업실적을 거두지 않으면 팀이 해체된다는 통보를 받은 팀원들이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직접 록밴드를 결성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많은 우여곡절을 그려낸다. 그와 함께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 조풍래와 장보고, 나와 닮은 너

“캐스팅이 발표되고 주변에서도 의아해했어요. 개인적으로 ‘6시 퇴근’ 넘버가 좋았어요. 이야기도 기존에 제가 해온 작품과 결이 달랐고요. 한 번 보면 쉽게 파악되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죠. 어렵게 분석하며 보는 극이라기보다는 주변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고민을 안고 사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마음 편히 보고 노래도 같이 흥얼거리고, 공연을 보는 동안만큼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해요. 그래서 출연하게 됐어요.”

관객에게 ‘6시 퇴근’은 어렵지 않은, 보기 편한 극이 분명하다. 반면 무대에 오르는 배우에게는 어려움을 안겨주는 작품이다. 직장인의 삶과 애환을 담고 있다 보니 조풍래에게는 특히 더 힘들게 다가왔다고. 그는 “직장 생활을 해 본 적 없어 부장, 차장, 대리 등과 같은 체계도 알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서울예술단 출신인 조풍래는 “단원, 중단원, 인턴이 있기는 했지만 사회와는 다른 체계였다. 단원이면서 동시에 선후배 관계였는데 직장은 다르더라”라고 설명했다.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했어요. 대부분이 과장 자리에 있다보니 인턴 때 어땠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작품 내용을 알려주니 인턴이면 회사 존폐에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을 거라고도 하더라고요. 자기 회사가 아니니까. 물론 그 친구들의 말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어요. 이들의 조언을 참고해서 저만의 장보고를 만들어나갔죠. 극 중 인물은 ‘마지막 회사 생활일 수도 있겠다’라는 대사처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장보고는 2년에 한 번 계약이 끝나면 회사를 옮겨야 한다. 마지막 회사 생활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그런 극 중 인물의 모습은 조풍래와 닮아 있었다. 조풍래 스스로도 그렇게 평가했다. 그는 “작품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고 또 안 들어올 수도 있다. 걱정하는 모습이 저와 닮았다. 그러면서도 미묘한 차이가 있어 장보고를 연기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고백했다.

“제가 생각하는 장보고는 그런 사람이에요. 본인은 완벽하다고 생각하는데 밖에서 보는 나는 허술하고 빈틈이 많죠. 직장을 다니는 친구들이 항상 그런 말을 해요.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자기감정 표현에 솔직하지 못하게 된다고. 화나는 일이 있어도 화를 낼 수 없다고. 상사 반응에 따라 인형처럼 감정을 숨기고 행동하게 된다고 말이에요. 장보고 역시 그래요.”

특히나 극 중 인물은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경제 활동에 뛰어든 청춘이다. 현실과 꿈 중 무엇을 선택하느냐는 문제는 언제 마주해도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다. 또 현실을 쫓는다고, 꿈을 선택한다고 손가락질할 수도 없다. ‘6시 퇴근’은 이러한 인물들의 고민을 통해 잊고 있던 꿈을, 열정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조풍래 역시 잠시 잊고 있던 자신의 꿈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배우 생활을 늦게 시작했어요. 배우 생활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꿈을 포기하고 군대에 다녀왔죠. 군대에서 생각을 정리하면서 ‘하고 싶은 것을 해보자’라고 마음을 먹었어요. 그리고 배우가 됐죠. 서울예술단을 그만둘 때도 그랬던 것 같아요. 분명 좋은 단체이지만 다양한 연기를 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죠. 그러한 결정의 순간이 극 중 인물과 매우 비슷한 것 같아요.”

선택과 함께 변화가 찾아왔다. 정기적으로 수입이 들어오던 당시는 안정적으로 배우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안주했다. “어느 정도 선을 그어놓고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라며 스스로와 타협했던 것 같다”는 조풍래 말처럼. 그렇다고 그가 열심히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조풍래는 “그때는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왔더라면 지금은 내일, 그다음 날의 저를 상상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나와 닮았기에 캐릭터 분석은 비교적 수월했다. 장보고에게 회사와 회사 생활의 의미는 묻자 그는 가장 애착이 가는 대사를 읊으며 답변을 이어갔다. 바로 ‘먹고 살아야 하니까’다. 조풍래는 “먹고 살기 위해 꿈을 포기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다. 극 중 인물이 정규직을 바라보는 것은 먹고 사는 문제와 연관 있다. 안정적인 자신의 삶을 위해 그런 것”이라고 정리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사회초년생인 극 중 인물과 다른 배우의 나이다.  그러다 보니 조풍래는 극 중 인물을 표현하는 데 있어 남보다 큰 노력을 쏟아야 했다. 그는 “어려 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운을 뗐다. 나보다 나이 많은 이와 함께 할 때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불편함’에 초점을 맞춰 극 중 인물의 나이에 가까워지려 노력하고 있다고.

“극 중 노주연 역을 맡은 박태성 배우와는 실제로 친구예요. 그래서 일부러 불편하고 어려워하는 연기를 하려 해요. 연습할 때 연출님이나 다른 배우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많이 물어봤던 것 같아요. 초반에는 많이들 ‘친구 같아 보인다’고 평가하더라고. 그러다 어느 날은 직급이 확실히 낮아진 것 같다는 말도 들었어요. 조금씩 찾아가는 것 같아요. 대사에 나오는 것처럼 마지막이고, 정말 절실한 마음이 묻어 나올 수 있도록 그런 연기를 하고 싶어요.”

# 사내 밴드 결성, 또 다른 시련

사내 밴드가 결성됐다. 모두가 힘을 합쳐 성공적인 공연을 이뤄내기 위해 연습에 매진한다. 오합지졸과 다름없던 이들은 연습을 거듭하며 완성도 높은 밴드 공연을 선보이는 경지에 이른다. 누가 봐도 성공 확률 0%의 밴드가 당당히 박수갈채를 받으며 홍보 효과를 톡톡히 이끌어낸다.

“사실 장보고는 ‘이 밴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에요. 시키면 무조건 해야 하죠. 다만 밴드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회사 생활을 하면서 지쳐 있고, 기계적인 모습으로 관계를 맺어온 사람들이 점점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돼요. 그러면서 ‘저 사람에게도 저런 모습이 있었구나’, ‘저렇게 밝은 모습도 있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죠. 미운 정 고운 정이 들면서 관계가 더 돈독해지지 않았을까요?”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했다. 조풍래는 밴드의 성공 여부를 떠나 즐거운 시간, 추억을 만들었다는 점에 의의를 뒀다. 그러면서 이들에게 있어 밴드의 의미가 얼마나 특별한지도 깨닫게 해줬다. 그는 “기계적으로 맺어진 관계에 밴드라는 단어가 들어서면서 유기적으로 엮인, 비로소 하나가 된 것 같다”고 강조했다.

직장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조풍래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보다 더 큰 산, 넘기 힘든 산은 바로 기타 연주였다. 라이브 밴드의 연주로 진행되는 공연이고 또 극 중 록밴드의 메인보컬로 무대에 서야 하는 상황에 그 역시 기타를 잡아야 했다. 앞서 조풍래는 자신의 SNS에 ‘기타, 잘 치고 싶다’라는 글을 올린 바 있다.

“기타를 잡아 본 적이 없어요. 예술단에서 ‘이름 봄, 늦은 겨울’ 할 때 박영수 배우가 기타를 친 적 있죠. 그때 한 번 쳐 본 적 있어요. 기타 가장 아랫줄이 제일 얇은 데 치는 순간 손가락이 갈라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바로 포기했죠. 설마 제가 직접 기타를 연주할 일이 있겠나 싶었거든요.(웃음)”

사람 일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다시 없을 줄 알았던 기타와의 만남은 ‘6시 퇴근’을 통해 성사됐다. 조풍래는 연습에 매진했다. 직접 기타를 구매해 틈이 날 때마다 기타 연습을 했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실력을 키워나갔다. 함께 무대에 오르는 다른 배우들을 보며 경쟁 아닌 경쟁을 하며. 그는 “이승헌 배우도 기타를 칠 줄 몰랐는데 어느 순간 기타 실력이 확 늘었다. 조급한 마음에 기타를 배우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탈춤을 춰서 장구를 칠 줄 알아요. 하지만 뮤지컬에는 장구가 전혀 쓰이지 않더라고요. 국악과 관련된 악기들을 칠 줄은 알지만 거의 못 한다고 봐야 할 것 같아요.(웃음) 이번에도 다행인 것이 ‘오랜만에 잡아보는 기타’라는 콘셉트가 추가돼 조금 편하게 기타 치는 연기를 할 수 있게 됐어요.”

조금씩 향상되는 기타 실력과 함께 조풍래는 ‘6시퇴근’ 첫공 무대에 올랐다. 첫공 소감을 묻자 그는 “관객들이 시원하게 웃어줘 놀랐다. 그런 관객 반응은 정말 오랜만에 느껴봤다”고 회상했다. 첫 공연은 조풍래에게 수정해야 할 것과 보완해야 할 것이 무언인지 확인시켜줬다.

“체력을 잘 분배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극 중간에 커튼콜에 부르는 곡을 부르는데 커튼콜에서 부르는 것처럼 불렀더니 무리가 되더라고요. 강약조절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커튼콜에서 잘 즐기는 저만의 필살기는, 여러 명이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한두 명정도 대화에 끼지 못할 수 있어요. 그런 사람도 함께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 관객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즐기고 갈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그렇게 커튼콜을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홍혜리 에디터ⓒ 얌스테이지 YAMSTAGE

# 우리네 이야기를 담은 ‘6시 퇴근’

배우의 삶은 직장인과 다른 패턴으로 이뤄져 있다. 공연 시간에 맞춰 늦은 출근을 하고, 공연이 끝나면 늦은 퇴근을 한다. 조풍래에게 ‘퇴근’은 “그날 해야 할 일이 끝나는 것”이라고.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으면 집에 가도 퇴근한 게 아니다. 야근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매일 같은 공연을 하고, 무대에 올라 관객을 만나지만 직장인들이 저마다 다른 고충을 안고 있듯 배우 역시 처음 무대에 오르는 것처럼 늘 자신을 연마해야 한다. 주어진 할당량을 해결하기 전까지 조풍래의 퇴근은 무기한 연장된다.

접점 없어 보이는 직장인의 삶과 배우의 삶. 그 속에서 조풍래는 우리네의 삶의 모습을 찾아 연기의 폭을 넓혀나갔다.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 ‘6시 퇴근’에서 그는 자신과 닮은 캐릭터로 (극중 인물인 장보고 제외) 인턴 고은호를 꼽았다. 조풍래는 “사실 모든 인물이 저와 비슷한 면을 가지고 있다. 어느 날은 부장님과 닮아 보이고, 또 다른 날은 대리님과 비슷할 때도 있다”며 극의 매력을 풀어냈다.

“‘6시 퇴근’을 몇 번 보게 된다면 이렇게 극 중 인물 한 명 한 명에 자신을 대입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모든 인물에서 저를 발견할 수 있으니 말이에요. 어떨 때는 ‘6시 퇴근’ 밴드 자체가 저인 것 같을 때도 있어요. 여러 자아가 모여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기에 조풍래는 극장을 찾은 관객들이 잊고 있던 꿈, 열정을 찾아가길 바란다고. 그는 “지금 하는 일을 관두라는 말은 감히 못 하겠다. 하지만 쉬는 날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시간이 10분이라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투자했으면 좋겠다. 꿈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6시 퇴근’이 그러한 작품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 역시 잊지 않고 전했다.

“관객들이 즐거웠으면 해요. 작품을 보고 즐거운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삶, 그 자체가 즐겁기를 바라요. 기계적으로 하루를 사는 것이 아니라 먼 미래의 나를 상상하며 말이죠. 어느 강의에서 그런 말을 들었어요. ‘꿈이 명사면 안 되고 동사여야 한다’고. 저 역시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인터뷰YAM #2] 조풍래 “‘백일의 낭군님’ 출연, 알아봐 줘 감사했다”

에디터 백초현 yamstage_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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