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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인터뷰

[인터뷰YAM #1]‘땡큐 베리 스트로베리’ 이율, 스톤이라 다행이야

뮤지컬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 인터뷰를 위해 배우 이율과 만났다. 만만의 준비를 하고 인터뷰 장소에 도착했다. 어떤 대답이 나올지 몰라 준비해간 질문만 A4 용지로 3페이지가 넘었다. 예상과 달리 인터뷰는 순조로웠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질문과 대답이 오갔다.

다만 인터뷰 자리가 어색하기만 한 배우는 캐릭터 해석과 연기 노선 등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했다. 그는 최선을 다해 답변을 이어나가려 했고, 그 모습은 꽤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는 스스로 고립된 삶을 선택한 엠마가 가짜보다 더 진짜 같은 도우미 로봇 스톤의 등장으로 인해 새로운 감정을 겪게 되는 이야기를 그려낸 작품으로, 왜곡되고 혼재된 엠마의 기억과 추억에 관한 흔적을 하나씩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관객에 소중했던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이율과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 다듬어 나가는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

“그간 살인과 같은 무거운 소재를 다룬 작품에 주로 출연했어요. 이번에는 따뜻하면서도 잔잔한 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나름 쉬어가는 의미에서 말이에요. 결말이 슬픈, 어두운 작품을 해야지 마음먹은 건 아니에요. 타이밍이 그랬던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은 밝고 잔잔해요. 극이 진행되는 동안 슬픔도 있고 기쁨도 있지만, 전체적인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의 분위기는 행복에 가까워요. 그렇게 봐주면 좋겠어요.”

뮤지컬과 연극 무대를 경계 없이 오고 가는 배우. 유독 2018년은 뮤지컬보다 연극 작품이 이율의 필모그래피를 가득 채웠다. 오랜만에 뮤지컬 무대로 돌아온 그는 창작 뮤지컬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 연습 과정을 떠올리며 “엠마 역을 맡은 세 배우의 스타일이 워낙 다르다 보니 맞춰 나가는데 애먹었다”고 털어놨다.

 


“늘 새로운 공연을 하는 기분이에요. 연습 중에 에피소드라고 한다면, 극 중 스톤이 피아노를 쳐야 하는데 제가 피아노를 제일 못 치거든요. 그래서 놀림을 많이 당했어요. 배우들이 직접 피아노를 연주해야 하는데 그 부분에서 부담감이 상당했죠. 남자 배우 중 제가 제일 형인데 맨날 놀려요. 열심히 하라면서. 셋 중에 누가 가장 잘 치느냐고 묻는다면, 저를 제외한 고상호 배우와 이휘종 배우 중에 선택해야 할 것 같아요. 실력은 비슷해요. 용호상박이죠. 피아노 에이스들이 있기에 저는 이미 내려놨어요.(웃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피아노 연주는 마음을 비운 지 오래라던 이율은 특유의 애교가 빛나는 동작을 처음 접했을 때의 어색함을 이야기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극 중 스톤은 엠마를 향해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라는 대사와 함께 손바닥을 접었다 펴는 동작을 취한다. 애교가 묻어날 수밖에 없는 동작에 이율은 당황했고,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는 그렇게 애교스럽게 할 줄 몰랐어요. 정직하게 하려 했죠. 극이 완성될수록 조금씩 가미가 되다 보니…. 저 역시 캐릭터를 잡느라 고생했어요. 첫공 전전날까지도 캐릭터를 어떻게 잡을까 고민했죠. 그러다 무언가를 더하기보다는 정공법으로 가자는 생각을 했어요. 귀엽게 봐주니 정말 다행이에요.”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는 지난 2014년 작품 개발을 시작해 지난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독해 공연으로 첫선을 보였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창작 초연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율은 “극이 짜임새 있게 탄탄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연습 과정에서 실수도 잦았다”고 지적했다. 자기반성의 시간이 이어졌다.

“창작 초연이다 보니 아쉬운 점도 있어요. 작품이 잘 나오면 좋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기본적으로 작품 자체가 탄탄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러한 아쉬움은 재연과 삼연을 거쳐 보완하면 더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돼요. 배우들이 똘똘 뭉쳐 무사히 공연을 올린 것은 정말 만족해요. 우려했던 것보다 잘 진행된 것 같고요.”

 


#엠마와 만난 로봇, 스톤의 이야기

무대에 홀로 앉아 TV를 시청하고 있는 엠마. 경박스럽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TV에 시선을 집중한다. 한계에 다다를 무렵, 내키지 않지만 의자에서 일어나 현관 앞으로 걸어간다. 문을 열자 난데없이 로봇이 인사를 건넨다. 집으로 들이닥친 로봇의 이름은 스톤이다.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로봇 스톤의 등장은 홀로 시간을 보내는 엠마의 인생에 잔잔한, 그러면서도 걷잡을 수 없는 파도를 일으키며 다시금 살아갈 힘을 선물한다.

“스톤은 따뜻한 사람, 따뜻한 남자, 따뜻한 로봇이에요. 동시에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라는 작품의 결을 보여주는 캐릭터죠. 세 명의 배우마다 각자의 스톤 캐릭터가 있을 거예요. 물론 그 느낌도 서로 다를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생각한 스톤은 따뜻해요. 엠마의 모든 것을 다 받아주는 그런 캐릭터로 접근하고 있어요.”

 

 


스톤의 따뜻함은 이율의 눈빛으로 관객에 전달된다. 그 눈빛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절로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고, 스톤의 잔망스러운 행동에 배시시 미소를 짓게 된다. 또 스톤이 있어 엠마가, 엠마가 있어 스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기도를 하게 만든다. 이율은 “스톤이 대사를 하지 않을 때 시선 처리를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귀띔했다.

“이 작품은 인물들의 ‘시선’이 정말 중요해요. 적막함 속에서도 인물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죠. 바라만 보고 있어도 느껴지는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 만의 분위기가 있어요. 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관객도 받아줬으면 해요. 스톤은 양념이고 주재료는 엠마예요. 정말 여배우들이 가지고 있는 힘이 남다른 작품이죠. 남배우를 위한 작품은 이미 많이 나와 있지만, 여배우가 주인공인 작품은 흔치 않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연출, 작가를 비롯해 창작진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이번 공연에서 엠마 역은 정영주, 유연, 정연 배우가 맡아 열연을 펼치고 있다. 세 배우와 무대에서 연기 호흡을 주고받는 이율은 그에 따라 자신의 스톤도 어떠한 영향을 받기 마련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예를 들어 왈츠를 추는 장면에서, 영주 엠마가 리드를 잘 해주니 저는 그에 몸을 맡기면 된다. 반면 유연 엠마는 제가 느끼는 대로 춤을 추면 그것 나름대로 잘 받아 표현한다”며 “인물의 성격이 장면에 묻어난다”고 설명했다.

 


“정영주 배우는 연륜이 묻어나는 엠마를 보여주죠. 노래를 정말 잘해요. 일단 엠마 자체가 힘이 있어요. 유연 배우의 엠마는 여리고 부드러운 느낌이죠. 정연 배우는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 되면 계속 파고드는 스타일이에요. 디테일의 장인이죠. 끝까지 해내고 마는 스타일이라 함께 작업하며 많이 배웠어요. 연기도 깔끔하고 정확해요.”

엠마 앞에서 스톤은 언제나 그렇듯 금방이라도 ‘꿀 떨어질 것’ 같은 눈빛을 장착하고 바라본다. 이율은 “언제 엠마가 가장 사랑스러우냐”는 질문에 “아무것도 안 하고 잘 때”라고 답했다. 우스갯소리로 한 답변에 이어 그는 “농담이다. 엠마가 사랑스러울 때는 자기관리를 할 때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매 순간 사랑스럽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인데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좋을 것 같다”며 조심스럽게 마음을 표현했다.
 
# 로봇 스톤, 그리고

관객과 처음 만난 스톤의 설정은 ‘로봇’이다. 혼자 사는 노인들을 돌보는 가사도우미 로봇이다. 어딘지 이상하다 느낀 것은 ‘사람보다 더 사람’ 같다는 점을 ‘자부심’이라 말하는 로봇의 태도다. 때로는 건방질 만큼 고집도 장난 아니다. 가라고 해도 가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켜낸다. 그리고 마침내 꼭꼭 닫혀 있던 엠마의 마음을 여는 데 성공한다.

 

 


“로봇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로봇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고민이 됐죠. 연기에 정답은 없기에 판단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뒀어요. 이 역시 고상호, 이휘종 배우의 로봇 연기가 서로 달라요. 저는 로봇 특유의 딱딱함을 표현하지도, 목소리를 변조하지도 않아요. 더욱 인간적인 로봇으로 스톤에 접근하려 했어요.”
 
“몸을 잘 쓰는 고상호, 극중 인물과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이휘종”. 두 배우와 달리 이율은 자신의 스톤을 ‘인간적인 로봇’으로 표현했다. 이와 같은 결과를 얻기까지 고민의 시간이 이어졌고, 그는 “정공법으로 간 것이다. 많은 시도를 해봤지만 크게 와 닿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로봇이라고 해 굳이 딱딱하게 할 필요는 없겠다 싶었다”며 “배우마다 자신의 무기가 다르고, 제가 찾은 로봇 연기가 저에게 있어 나름의 무기가 될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율 말처럼,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는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결이 달라진다. 해석의 여지가 많은 작품인 까닭에 스톤의 존재 자체가 허상이 될 수도 실재하는 로봇일 수도 있다. 또한 엠마의 상상 속에 펼쳐진 가상의 이야기, 혹은 엠마가 겪은 실제 이야기 등 존재함과 사라짐 사이에서 작품은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낸다.

“정답은 없어요. 스톤을 엠마의 환상 속에서 살아 있는 인물로 연기해야지, 또는 실재하는 인물로 연기해야지 정해놓지 않았어요. 그저 대본에 적혀 있는 그대로 표현할 뿐이죠. 관객이 공연을 보고 느끼기에 환상 같으면 그런 것이고, 아니면 실재하는 것이고. 가능성은 늘 열어두고 있어요.”

연기의 힘은 대단했다. 배우의 의도와 상관없이 관객에 의해 재생산된 이야기는 극을 더욱 입체적으로 다듬었고, 풍부한 색으로 채워 넣었다. 이율은 한 시인의 말을 인용해 “시인이 시를 썼는데 사람들은 시의 주제와 의미 등등 해석하고 분석하느라 바쁘다. 시인이 말하길 ‘그냥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 역시 비슷하다”고 고백했다.
 
“스톤의 직업은 피아니스트였어요. 불의의 사고로 손을 다치게 돼 더는 피아노를 연주할 수 없게 됐죠. 그러면서 불행해지고. 피아노에 특별히 다른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어요. 딸 미아도 그렇고, 자전거도 그렇고, 피아노도 그렇죠. 유별나게 피아노만 특별하다? 그런 것은 아니에요. 골고루 어느 정도의 의미만 부여하고 있어요.”

배우는 연기를 할 뿐이고 해석은 관객의 몫이다. 이율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열린 답변을 내놨다. 로봇 스톤의 기억에 관한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그것조차 스톤을 연기하는 세 배우의 해석이 다 다를 것”이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제가 표현을 이렇게 하면 관객 입장에서는 스톤이 엠마와 관련된 기억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고 언급했다.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거죠. 그러다 제일 좋은, 또 제가 편하게 연기할 수 있는 것들이 있으면 택해 캐릭터에 녹여내요. 다른 친구들도 그럴 거라 생각해요. 정답을 두고 달려가는 것은 아니지만 동일하게 잡고 가는 것은 있어요. ‘엠마를 케어한다’는 목표는 세 배우의 스톤 모두 같아요. 절대로 스톤이 돋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도요.”

이번 공연에서 스톤 역은 고상호, 이휘종, 그리고 이율이 맡았다. 인터뷰 내내 이율은 두 배우의 매력을 어필하며 칭찬의 말들을 늘어놨다. 자신보다 두 배우를 돋보이게 하는 이야기로 인터뷰 분위기를 띄웠다. 자신의 공연을 봤으니 이제 두 배우의 공연을 보는 일 만 남았다며 재관람을 추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고상호 배우는 사람 자체가 부드럽고 유하다 보니 그러한 성격이 고스란히 인물로 표현돼요. 보기에 부담이 없죠. 정말 정확해요. 그런 부분은 대단한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이휘종 배우는 나이가 제일 어리지만 이전에 독해 공연에 참여했던 친구이기에 작품에 관한 이해도가 높은 편이에요. 어떻게 해야 하고, 또 스톤이 어떤 캐릭터인지 정말 잘 알죠. 극 중 인물과 싱크로율이 높아 신선한 재미가 있어요.”

마지막으로 이율은 “용기를 잃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조금 불행하다고 해 좌절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극 중 인물을 통해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그는 “그러면 자신만 손해인 것 같다. 힘든 시기가 찾아와도 탈출구는 있다고 생각한다. 극복 못 하는 시련은 없다. ‘용기를 잃지 말고 조금씩 해보죠’라는 말처럼, 조금씩 하다 보면 달라진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응원했다.

 

 

 

 

사진 홍혜리·에디터 백초현 yamstage_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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