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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YAM] 최재웅 “묘하게 재미있는 ‘3일간의 비’”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일기장을 발견한다. 완성되지 않은 문장으로 채워진 그 날의 기록. 아들은 일기장에 적힌 내용을 해석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 아버지는 도대체 왜 이런 일기장을 남긴 걸까.

연극 ‘3일간의 비’는 1995년과 1960년대의 다른 두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우연히 발견한 일기장을 통해 과거의 진실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1막에 등장하는 워커와 낸, 핍은 2막의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네드와 라이나, 테오의 아들과 딸이다. 배우 최재웅은 극중 자유로운 방랑자 워커와 그의 아버지 네드 역을 맡아 무대에 오른다. 그와 함께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 ‘3일간의 비’는 어렵기만 할까?

최재웅이 ‘3일간의 비’를 선택한 이유. 그것은 기존과 ‘다른’ 무언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자 한 그는 기존 문법과 다른 형식을 취하는 작품에 끌렸다. 명확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 어렴풋이 그려지는 그림. 그 그림이 전해주는 특유의 감성은 최재웅을 매료시키기 충분했다.

“다양한 작품에 참여 하는 것을 좋아해요. ‘3일간의 비’는 기존 공연과 다르더라고요. 1막과 2막의 내용도 전혀 다르고. 뭐라고 해야 하나? 큰 사건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잔잔하고 일상적인데, 그 안에서 극적이진 않아도 묘한 재미를 느낄 수 있어요.”

최재웅은 작품을 설명할 때 ‘묘한 재미’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재미있지만 그 재미를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지 알 수 없을 때마다 그는 ‘묘한’을 덧붙였다. 처음에는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재미있다”고 말했다. 그런 다음 자신이 느낀 재미를 온전히 전할 무언가를 찾아 골몰하는 시간을 가졌다. 확실히 ‘3일간의 비’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쉽지 않은, 복잡 미묘한 작품이 분명했다.

“저희도 어려웠어요. 원작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를 정도로 더 어려워요. 이번 공연은 각색을 거쳐 쉽게 만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렵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런 공연 있잖아요. 내 나름대로 판단하고 싶은데, ‘여기 답이 있어. 이 답을 가져가’라고 말하는. 그런 점에서 ‘3일간의 비’는 어렵긴 해도 차별화돼 좋더라고요.”

어려움은 ‘3일간의 비’만의 매력이 됐다. 하지만 처음부터 난제(難題)에서 오는 희열(喜悅)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던 건 아니다. 기쁨을 맞이하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첫 번째 고비는 문화 차이였다. 원작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국 문화가 곳곳에 녹아 있었고, 이를 공부하지 않고서는 작품에 접근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예를 들어 ‘춘향전’을 외국에서 공연한다고 해봐요. 남원이라고 하면 우리는 지역명이라는 걸 알잖아요. 조선시대 양반문화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아도 알고요. 그런데 외국인들은 아니에요. 따로 공부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죠. ‘3일간의 비’도 마찬가지예요. 미국 사람들은 한 번에 알아듣는 것을 우리는 ‘이게 뭐야?’ 하게 되니까 그게 어렵더라고요.”

이를 위해 배우들은 머리를 맞대고 공부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원작을 찾아 읽어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토론은 언제든지 열렸다. 최재웅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내 문제가 아니라도 어떤 주제가 나오면 함께 토론을 많이 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배우들은 의문스러운 부분에 대해 물어보기도 하고 제 생각을 내보이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작품을 이해하는 것, 이후 남아 있는 문제는 최재웅 스스로가 해결해야 했다. 두 번째 고비는 바로 많은 양의 대사였다. 평소 암기를 잘하는 것도, 암기 비법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밝힌 그는 ‘대사가 많아 힘들겠다’는 질문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너무 많다”며 울상을 지어 보였다.

“다른 작품의 경우, 연습하면 자연스럽게 대사가 외워져요. ‘3일간의 비’는 따로 시간을 할애해 암기해야 했어요. 그냥 반복적으로 외웠어요. 방법이고 자시고 간에 시험 보듯이.(웃음)”




 

그렇게 열심히 외운 대사는 워커의 첫 등장 장면에서 빛을 발한다. 워커는 ‘3일간의 비’가 시작되고 제일 먼저 관객과 만나는 인물이다. 홀로 무대에 올라 관객 앞에서 이야기를 펼쳐낸다. 많은 말을 쏟아내기에 관객은 그 말을 따라가기에도 벅차지만 본능적으로 집중해야 하는 순간이라는 걸 눈치챈다. 귀를 기울인다.

“관객은 작품의 형식에 대해 모르는 상황이잖아요. 첫 대사에 많은 정보가 나와요.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관계, 현재 상황, 그 후에는 지나칠 수 있는 정보들이 많아 정보 전달 위주로 대사하고 있다. 물론 그러한 정보들을 그냥 지나쳐도 상관없어요. ‘3일간의 비’는 ‘이 정보는 꼭 알아야 해’라고 말하는 공연도 아니고, 그건 관객의 몫이잖아요. 강요하고 싶지도 않아요. 와중에 성격 같은 것, 말투나 호흡 등에도 신경 쓰긴 해요. 워낙 길어서 지루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

강요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기억으로 남는다. 관객은 워커의 입을 통해 인물들에 대한 사전 정보를 입수한다. 그리고 2막이 시작되면 어렴풋이 떠오르는, 워커의 말들을 따라 퍼즐 조각을 맞춰나간다.

# 답은 대본에서

“대본에 나와 있듯 워커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지 못했어요. 낸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떠돌아다니고, 예민하죠. 네드는 그 반대인데 어느 순간 워커 같은 면이 보이기도 해요. 워커도 아버지의 모습이 엿보일 때가 있죠. 그게 참 묘하다고 생각해요. 연습할 때 연출님이 했던 이야기인데, 1막과 2막의 인물 간의 관계성과 연관성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극중 이런 대사가 나온다. “네드는 워커(Walker).” 행복한 상태에서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네드. 반대로 워커는 아버지가 지은 집에 관심을 둔다. 이를 통해 워커가 네드처럼 안정적인 삶을 꿈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재웅은 “네드와 워커의 성격은 정반대지만 보고 있으면 ‘둘이 비슷하네’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낸과 라이나도 다르지 않다. 차분하고 이성적인 낸과 잠시라도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라이나는 굉장히 다르지만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극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단서는 대본에 모두 담겨 있다. 그러나 대본에는 빈 공간이 너무 많다. 빠져 있는 부분을 채워 넣기 위해 관객은 머리를 써야 한다. 특히 극에는 관객이 당연히 가질 수밖에 없는 궁금증을 해결해줄 결정적인 순간들이 빠져 있어 어려움은 배가 된다. 네드가 아이를 싫어하는 이유를 알려줄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정보라든가, 워커가 아버지를 싫어하게 된 계기를 설명해 줄 부자가 함께 있는 장면 등이 그러하다. 이에 최재웅은 “그게 작품의 매력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네드와 워커가 같이 있는 장면이 나오지 않아요. 그래서 관객은 1막과 2막 내용을 합쳐서 추측해야 하죠. 당연히 워커의 어린 시절은 불행했을 거예요. 네드는 아들을 싫어하고, 엄마는 정서적으로 불안정했으니까요. 물론 이것도 다 추측일 뿐이지만.”




 

추측은 관객의 ‘해석’으로 이어진다. 관객이 어떤 해석을 내놓느냐에 따라 작품의 결이 달라진다. 관객은 늘 새로운 ‘3일간의 비’와 마주하게 된다. 배우들의 골머리를 앓게 한 답이 없는 문제 중 하나는 ‘제인웨이 하우스는 누구의 아이디어인가’이다. 나아가 ‘네드와 테오 중 진짜 천재는 누구인가’도 오랜 시간 토론을 거듭하게 만든 주제였다.

“네드 대사 중에 ‘우린 합의를 봤다’는 대사가 있어요. 네드는 정해진 것을 지키려 노력하는 인물이에요. 우선 네드와 테오, 둘 다 건축 디자이너로서 재능이 있어요. 건축 공부를 했으니까요. 한 달 넘게 그 문제로 이야기를 나눴는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닌 것 같아요.”

최재웅은 이 문제로 한 달 넘게 고민했다. 어렵게 답을 찾았지만 그는 자신이 발견한 답을 공개하지 않았다. 꽁꽁 숨겨뒀다. 관객을 위한 배려의 마음에서다. 해석의 여지를 남겨 두는 것, 그것이 관객이 작품을 온전히 즐기는 방법이라는 걸 최재웅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일기장에 적힌 내용을 해석하는 방식도 그랬다. 네드가 작성한 일기장은 워커와 네드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다. 동시에 ‘3일간의 비’가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어딘지 모르게 의문스럽다. 극중 네드는 행복할 때 쓰는 기록장이라며 일기장을 공개한다. 1막에서 등장한 일기장 속 내용은 행복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불행에 더 가까운 내용에 관객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반짝인다.

“그것도 되게 묘한 것 같아요. 그러면 테오가 죽었을 때도 행복했으니까 그 글을 썼을 거잖아요. 이걸로도 한 달 넘게 토론 했어요. 과연 엄마가 몸을 던졌던 그 날도 행복했을까? 왜 썼을까? 싶은 거죠. 개인적으로는 행복해서 쓴 것 같아요. 네드를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그래요. 이게 정말 안 좋은 일인데, 어떻게 생각해 보면 ‘나에게 잘된 일이구나’라는 마음이 들 때가 있잖아요. 비유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테오가 죽어갈 때 친구로서 가슴이 아팠겠죠. 한편으로는 행복한 마음도 0.000000000000001 정도는 있었을 것 같아요.”




 

대본에 나와 있는 대로 추론하면 그렇다. 최재웅은 “그렇게 따지면 악역이기는 하지만, 그 순간 ‘행복했구나’라고 믿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해석은 ‘3일간의 비’를 아우르는 원죄와 죄의식과도 이어진다. 혹시라도 일기장의 용도가 변경돼 행복한 순간이 아닌, 불행한 순간을 기록한 것이 아닐까 싶었지만 최재웅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행복한 순간을 기록한 일기장”이라고 강조했다.

“대본 외적인 부분에서 네드라는 인물을 생각해 보면 그런 해석도 가능해요. 그러면 처음에는 행복할 때 쓰다가 나중에는 가슴 아플 때 썼나 보다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대본에는 그런 말이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아요. 대본을 기준으로 해석해보면 행복할 때 썼다고 했으니, 나머지 글도 행복할 때 쓴 거로 볼 수 있어요. 대본에 지문으로 (사실은 지금 안 행복하다)라고 나와 있는 것도 아니고요.”

이처럼 최재웅은 될 수 있으면 인물의 전사 등 대본 외적인 부분에서 답을 찾기보단 대본 안에서 해결하고자 했다.‘3일간의 비’는 대본을 이해하는 것부터 어려웠기에 다른 시도는 꿈도 꿀 수 없었다고. 연신 “어휴. 어렵다”는 말을 내뱉은 그의 모습만 봐도 얼마나 어려웠는지 짐작 가능하다.

“저도 다른 페어 공연을 보면 재미있는 데 왜 재미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냥 재미있는 것 같아요. 이유가 있는데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겠어요.(웃음) TV를 볼 때도 잘 짜여진, 재미있는 예능이나 드라마를 보다가 낚시TV나 ‘동물의 왕국’ 같은 걸 보게 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극적인 드라마가 아닌데도 그냥 계속 보게 되는. 그런 것처럼 기존 문법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서, 독특하고 묘한 것 같아요. 대사도 예쁘고, 분위기도 좋고, 비도 내리고 그래요.”

배우도, 관객도 어렵다고 말하는 ‘3일간의 비’. 분명한 것은 그 어려움 속에 작품만의 재미가 녹아 있다는 것이다 .최재웅은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로 ‘공연을 꼭 보러 와 달라’는 당부 대신 작품의 매력을 어필하며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틈새 인터뷰YAM #키워드


#3일간_비

“폭우처럼 비가 쏟아지고, 비가 그치고 나서 해가 떴다는 것.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라이나는 어떤 괴리감 같은 것을 느꼈을 것 같아요. 밤에 연애 편지를 열심히 쓰고 나서 아침에 보면 오그라들 듯. 감성이 지나간 이후 이성적인 생각이 들 때 굉장히 불행해질 것 같아요.”

#좋아하는_대사

“제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플라뇌르(Flâneur) 이야기를 할 때가 좋아요. 취미로 걷는 것을 해봤는데 재미있더라고요. 라이나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순간도 괜찮아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네드가 열심히 말하려 하는 것이 느낌상 좋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핍이 혼자서 영감이 떠올랐다면서 말하는 장면을 좋아해요. 웃기잖아요.”

#말더듬기

“말을 더듬는 종류도 다양해요. 첫 음절을 다듬는 사람도 있고, 뒷 말을 끄는 사람도 있어요. 단어를 반복하는 사람도 있고요. 한가지로 정하지 않고 그때그때 본능적으로 하고 있어요.”

 

#이명행_서현우_핍_테오

“무대에서는 어떤 배우가 어떤 역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그 역할 자체로 보기 때문에 다 똑같아요.”
(에디터 덧, 대답을 마친 후 최재웅 배우는 ‘이 말 멋진 것 같다’며 답변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이거 잘 포장해서 꼭 써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포장 솜씨가 좋지 못한 에디터는 이렇게 그날의 상황을 전합니다.)

#범인_전문_배우

“누가 범인인지 전혀 관심이 없어요. 어차피 누군가는 범인일 거잖아요. 다른 드라마를 볼 때도 그렇고, ‘비밀의 숲’도 그렇고 중간 과정이 더 중요하고 재미있는 것 같아요. ‘범인이 누굴까?’ 궁금해하는데 저는 그런 것보다 어떻게 추리를 하고 접근해 가는지가 더 재미있어요. 전작인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에서 범인을 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가 범인이 아닌 줄 알고 있었어요.”

#야구

“야구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동료들과 이야기하는 것, 농담 따먹기를 하는 걸 더 좋아해요. 축구나 농구는 경기 중에 말을 못 해요. 힘들어서요.(웃음) 계속 뛰어야 하잖아요. 야구는 타석에 있을 때도, 더그 아웃에서도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어요. 그래서 좋아요. 축구나 농구보다 덜 힘들기도 하고요.”

 

사진 제공 : 악어컴퍼니

 

에디터 백초현 yamstag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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