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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YAM] 곽선영, 복귀작 ‘사의찬미’ 그리고 윤심덕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성악가, 최초의 여성 국비 유학생, 최초의 대중가수, 최다 레코드 판매 기록 보유. 윤심덕 이름 앞엔 늘 ‘최초’가 따라붙었다. ‘최초’라는 타이틀은 그를 돋보이게 했고, 신여성의 아이콘으로 각광 받게 했다. 그런 윤심덕이 돌연 현해탄에 몸을 던졌다. 화려함 속에 살던 자신을 버리고 비극의 결말로 걸어 들어갔다.

뮤지컬 ‘사의찬미’는 1926년 8월 4일 실존 인물인 천재 극작가 김우진과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이 현해탄에서 동반 투신한 사건을 재구성한 창작 뮤지컬이다. 이번 공연에서 윤심덕 역을 맡아 무대에 오르는 배우 곽선영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봤다.

# 다시 돌아온 윤심덕


“‘사의찬미’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싶었어요. 마침 복귀를 생각하고 있던 찰나에 제안이 들어왔어요. 제안이 없었더라도 제가 먼저 하고 싶다고 말했을 거예요. 그동안 육아에 전념하다보니 복귀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한동안 곽선영을 무대에서 보는 것이 어려웠다. 결혼과 출산, 육아의 시간을 거치는 동안 그는 배우의 옷을 잠시 내려놓았기 때문. 그런 곽선영이 드디어 본업으로 돌아와 관객과 만날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의 복귀는 오랫동안 ‘사의찬미’를 기다려온 관객에게도, 곽선영이 그릴 윤심덕을 그리워한 이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으로 다가왔다.

“금방 적응이 됐어요. 처음에는 정말 쑥스럽더라고요. 무대 조명이 아닌 형광등 아래서 연습을 하는데, 제가 ‘나는 찰나에 산다’면서 치명적인 척을 해야 하잖아요. 연습할 때마다 그런 대사들을 그 전에는 어떻게 했지 싶더라고요. 쑥스러워서 웃음이 날 때도 많아요. 신기한 건 또 금방 적응이 된다는 거예요.(웃음)”

모든 것이 오랜만이다. 무대도 연습 과정도.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잠시 자리를 비웠던 곽선영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적응해나갔다. 연습이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떨리고 설렌다며 수줍게 미소 짓던 그는 “오랜만에 무대에 선다는 점에서도 기대가 되지만, ‘사의찬미’를 다시 한다는 것에서 오는 기대가 더 큰 것 같다”고 벅찬 소감을 전했다. 곽선영 얼굴에는 진심이 묻어났다.

“3년 만에 다시 ‘사의찬미’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몸이 다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연습할 때 비디오 영상을 한 번 보고 동선과 왈츠 동작 등을 연습했는데 몸이 저절로 움직이더라고요. 자전거를 한 번 배우면 잊어버리지 않고 타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렇게 저도 적응해 가고 있어요.”

변함이 없었다. 작품은 늘 그 자리에 있었고, 함께한 배우들도 성장을 거듭했지만 유쾌한 분위기만큼은 여전했다. 곽선영 증언에 따르면 “초연 당시 제목은 ‘글루미데이’인데 우리는 왜 이러지 싶었고, 코미디를 해야 한다고 할 정도”였던 연습실 분위기는 이번 공연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이처럼 즐거운 기억은 잊지 못할 추억이 돼 그를 ‘사의찬미’로 불러들였다. 배우에게 이미지 변신의 기회를 제공한 캐릭터, 그 인물이 오롯이 살아 숨 쉬는 무대에 다시금 오르고 싶다는 바람도 선택을 돕는 데 한몫했다.

“연습 분위기는 좋아요. 재미있어요. 일단 처음 했을 때, 그리고 재연과 삼연을 하면서 나온 해석들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고 더 깊이 있는 해석을 찾으려 모두가 노력하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우리가 잘못 해석했구나 하는 부분도 발견하게 되고. 잘못한 게 맞나? 싶다가도 그게 맞는 것 같다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기도 해요. 일종의 가지치기 중이죠. 물론 그때 해석이 틀리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한데 모여 앉아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열심히 잔가지를 쳐 나간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기 마련이지만, 중심을 잡아줄 연출이 있어 흐트러짐이 없다. 연출이 곧 작가인 ‘사의찬미’에서 이러한 토론은 좋은 성과로 이어졌고, 공연의 완성도를 높였다.

“크게 달라지는 건 없어요. 캐릭터가 바뀌거나 스토리가 변할 것 같진 않아요. 큰 틀 안에서 디테일을 더 많이 찾고 있거든요. 인물들이 더 깊어질 것 같아요. 예전에는 인물을 그려내기 바빠서 정보를 머리로만 갖고 장면을 구현해 내려 애썼죠. 지금은 대본에서 찾은 정보를 마음에 새기고 조금 더 섬세하게 들여다보려 하고 있어요.”

배우들 간의 차진 호흡이 있기에 가능한 결과다. 1차 팀으로 무대에 오르는 배우들은 오랜 시간 공연을 통해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나이가 들어 조금씩 어른인 된 이들은 어느새 여유를 장착하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곽선영은 “조금 더 편안해진 것 같다”며 “무대에서 그러한 변화가 어떤 자극을 줄지 기대된다”고 들뜬 모습을 보였다. 세월은 늘 같은 자리에 있던 ‘사의찬미’에도 조금씩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 곽선영이 바라본 윤심덕


“윤심덕은 그저 한 남자를 사랑했던 여자였어요.” 곽선영은 극중 인물을 이렇게 소개했다. 그가 바라본 윤심덕은 시대를 잘못 태어난 여자이기도 했다. 그를 둘러싼 프레임, 예컨대 진취적이고 자유분방하며 신여성에 자유연애주의자라는 수식어들은 그가 원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 당대 사람들이 바라본 윤심덕의 모습이었다. 곽선영은 “단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았을 뿐인데, 세상이 모질게 군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윤심덕은 거침없이 살았을 뿐이에요. 그런데 스캔들이 난 거죠. 심덕은 순간을 살아도 멋지게 살고, 죽더라도 유성처럼 혹은 불꽃처럼 살다 죽고 싶은 여자였어요.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느냐가 더 중요했던 거죠.”

곽선영은 극중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 대본에 집중했다. 빈 공간을 메우기 위해 차근차근 사실에 근거해 사건을 바라봤다. 실존인물이기에 가능한 접근법이었다. 역사가 기록한 김우진과 윤심덕의 이야기는 그랬다. 1921년 순례극단 동우회에서 윤심덕은 당시 유부남이었던 김우진을 만나 연인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5년 뒤 1926년 8월3일 시모노세키를 떠나 부산으로 향하던 관부연락선 도쿠주마루에 오른다. 결말은 동반투신.

“이 시간동안 벌어진 일들을 담아내야 했어요. 그래야 대본에 있는 모든 대사가 해결이 되거든요. 그런 다음에는 인물의 입장에서 모든 사건을 바라보려 노력했어요. 이 과정에서 ‘나라면 그러지 않았을 거야’, ‘나라면 그러지 못했을 거야’라는 생각을 더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이해할 수 없는 윤심덕의 선택. “저는 그리 쾌활한 성격이 아니다”라고 말한 곽선영은 극중 인물과 닮은 점도, 또 다른 점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동시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더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초연 연습 단계에서 유독 이해가 안 되는 장면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처음 대본을 봤을 때 심덕이 우진을 사랑하는데, 사내 앞에서 ‘나는 그런 사랑을 원해’라는 노래를 부르잖아요. 그 장면이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왜 그러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심덕은 이 남자가 마음에 안 들면 아니라고 칼 같이 선을 긋는 여자인데 사내한테는 왜 곁을 두지? 싶었어요.”

대본을 분석하고 배우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이해할 수 없던 윤심덕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깨달은 것은 심덕이 사내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다는 것. 곽선영은 “이 넘버는 누가 사내를 연기하느냐에 따라, 어떤 노선으로 사내를 그려내느냐에 따라 다른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고 운을 뗐다. 심덕에게 남자로 다가오는 사내라면 ‘넌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노래가 된다. 반대로 친구로 다가온다면 “넌 이폴리타야”에 대한 답을 들려주는 노래가 된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윤심덕이 김우진과 사랑에 빠진 이유도 확답을 내릴 수 없었다. 역사가 기록한 사실에 입각해 곽선영은 설명을 이어갔다. 그는 “윤심덕은 김우진이 접근해 왔을 때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부인도 있고, 아이도 있고, 심지어 도쿄에 애인까지 있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런데 왜 윤심덕은 그와 사랑에 빠진 걸까.

“아마 시대적인 분위기가 한몫했을 것 같아요. 서로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했을 수도 있고요.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없잖아요. 이유가 없는데 정신 차려 보면 제가 그 사람을 좋아하고 있는? 그때도 분명 그런 게 있었을 것 같아요.”




 

예측하기 어려운 윤심덕의 선택은 늘 곽선영을 고민에 빠트렸다. 찰나에 살고 싶다고 노래하던 윤심덕을 힘들게 하는 건 사랑이었다. 힘들 때  그의 곁을 지킨 건 연인 김우진이 아닌 사내였지만 윤심덕의 선택은 역시 김우진이었다. 결말을 향해 갈수록 그의 마음은 혼란으로 가득했다. 그 와중에 사랑은 불꽃처럼 타올랐다.

“저희끼리도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면 마음이 흔들린다고 하더라고요. 실제로 그런 경험을 한 사람도 있고요. 아마 윤심덕도 계속 갈등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러다가 ‘완벽한 결말’에서 결정한 거죠. 모든 일을 마친 후, 구체적인 이야기를 술술 하는 사내의 모습을 보면서 심덕은 두려움을 느끼게 돼요. 우진의 말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는 걸 직감하게 되는 순간이죠. 그때 사내를 향한 심덕의 의심이 시작돼요.”

싹을 틔운 의심. 그러자 불안이 엄습해온다. 공포감에 사로잡힌 윤심덕과 김우진이 할 수 있는 것은 사내에게서 벗어난 것. 살기 위해 두 사람은 배에서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동반투신이라는 이들의 결말은 비극일까, 해피엔딩일까. 이에 곽선영은 현실적인 엔딩을 더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우진과 심덕은 죽었을 것 같아요. 물에 빠졌잖아요. 우진이 요트를 준비해놓거나 더 큰 배를 사놓지 않는 이상 사는 것은 불가능해요. 개인적으로는 어딘가에서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어요. 그만 시달리고 편안하게 살길 바라는데….”

# 조금 더 친절하게 돌아온 ‘사의찬미’


윤심덕의 이야기를 마치자, 곽선영은 오는 29일 첫공을 앞두고 있는 ‘사의찬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네 번째 공연되는 만큼 이번에는 어떤 부분이 달라졌을지도 궁금했다. 이에 곽선영은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기 보다는 관객의 판단에 맡기고자 하는 뜻을 밝혔다. 계속된 질문에 그는 그제야 중요한 정보 하나를 공개했다. 이번 공연에서 ‘날개가 찢긴 한 마리 물새’ 넘버가 듀엣 곡으로 변경된다는 것. 그밖에도 소소하게 달라지는 부분을 짚어나갔다.

“극중 우진과 심덕, 사내에 대해서 대본상 빈 공간이 많아요. 이번 공연에서는 궁금증이 덜 할 것 같아요. 조금 더 친절해졌거든요. 대본이 추가가 된 것이 아니라 배우들이 텍스트 안에서 빈 공간을 채우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어요. 그게 달라진 점인 것 같아요. 넘버도 배우들이 아쉽다고 생각했던 한 곡의 뒷부분이 조금 수정됐어요.”

인터뷰 막바지에 이르러 에디터는 ‘사의찬미’ 티켓팅 소식을 전했다.  피 튀기는 티켓팅이라고 하여 ‘피켓팅’으로 불리는 티켓 전쟁. ‘사의찬미’ 역시 그 중심에 서 있다. 원하는 페어의 공연을 보는 것은 이제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운 일이 돼버린 지 오래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곽선영은 연습실에서 배우들과 주고받은 이야기를 살짝 덧붙였다.

“‘사의찬미’가 인기가 많아졌어요. 어제 연습하면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가 처음 이 작품을 만들 때 이렇게 사랑 받을 줄 알았느냐고. 연출은 입봉작이었으니까 작품이 올라가기만 해도 좋겠다고 했거든요. 배우들은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하는 거라 관객이 없으면 어때? 우리끼리 재미있으면 되지라는 마음이 컸어요.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뭔가 뿌듯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그러더라고요.”




 

기대하지 않았기에 배로 기쁨이 찾아왔다. 해를 거듭할수록 농익은 작품은 배우들의 성장과 더불어 점점 더 알차게 여물었다. 잘해야 한다고 되뇌던 곽선영은 마지막으로 작품의 매력을 이야기했다. 애정이 묻어나는 그의 답변은 듣는 이마저 뿌듯하게 했다.

“같은 캐릭터라도 배우마다 다르고 동선도 다르잖아요. 그래서 어떤 조합으로 보느냐에 따라 작품의 공기와 분위기가 미세하다 달라져요. 그러다보니 작업 자체가 즐거워요. 이런 점이 관객에게도 매력으로 다가가는 것 같아요. 저 역시도 재미있게 잘 녹여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아주 미세하게 달라진 점을 발견할 수 있도록 말이죠.”

 

사진 제공 : 네오

 

에디터 백초현 yamstag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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