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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YAM #1] ‘데스트랩’ 한세라, 웃음 사냥꾼의 귀환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공연 시작 후 40분 있다가 한 번 출연하고, 또 20분 있다가 무대에 올라가요. 그리고 15분 후에 다시 투입되죠.”

이상하다. 한 번 등장할 때마다 관객의 혼을 쏙 빼놓는다. 존재감이 남다르다. 따지고 보면 등장하는 장면이 그리 많지도 않다. 그런데도 그의 등장이, 내뱉은 대사와 전해준 웃음이 잊히지 않고 뇌리에 ‘착’하고 박힌다. 연극 ‘데스트랩’ 속 헬가 텐 도프 이야기다.

‘데스트랩’은 70년대 미국 코네티컷 한 저택을 배경으로 극작가 시드니 브륄과 그의 제자 클리포드 앤더슨이 ‘데스트랩’이라는 희곡을 차지하기 위해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극중 헬가 텐 도프는 영적 초능력을 가진 유명한 심령술사다. 헬가 역을 맡은 배우 한세라와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초연, 재연, 그리고 삼연


“사실 초연 때는 멋모르고 했던 것 같아요. 감사하게도 재연하기 전에 한 번 더 연락을 주셨어요. 관객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할 것 같아 거절하려 했지만 결국 다시 하게 됐죠. 그리고 삼연이 올라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번에는 흔쾌히 하겠다고 했어요. 용기가 생겼거든요.  다른 어떤 캐릭터보다 헬가 텐 도프로 많은 사랑으로 받았어요. 사랑받은 만큼 캐릭터에 디테일을 더하고 싶다는 욕심이 커진 거죠.”

관객의 사랑. 그것이 한세라가 초연부터 삼연까지 ‘데스트랩’과 함께 한 이유였다. 여기에 추가하자면 작품의 매력도 한몫했다. 그는 “관객들의 흥미를 이끌어내기 충분한 극이다. 한 번 보면 두 번, 세 번, 계속 볼 수밖에 없는 작품”이라며 “초연 당시만 해도 코미디가 가미된 스릴러인데 세련되기까지 한 공연은 찾기 힘들었다. 그래서 모두가 보고 싶어 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한세라는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이게 될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고. 그러한 의심을 지운 건 역시 관객의 반응이었다. 아무리 대본이 재미있어도, 관객이 공감하지 못한다면 무용지물. 긴장감으로 가득 찬 객석, 소스라치게 놀라는 관객, 적절한 순간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 불신이 확신으로 바뀌는 건 시간문제였다.

“초연 때 정말 열심히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뭉뚱그려 공부했던 것 같아요. 초연 막공 날 연출에게 그런 말을 한 적 있어요. ‘이제야 생각나는 게 있다. 다시 공연하면 이런 부분을 살려보자’라고요. 재연 때 그때 말한 부분이 반영됐어요. 삼연에서는 원작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유머코드 등을 세분화시키려 노력하고 있어요. 아마 이미 작품을 본 관객도 ‘이런 것들이 달라졌구나’ 확연히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처음은 쉽지 않다. 시작은 늘 어려운 법이다. 한세라가 헬가 텐 도프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처음이 아닌 세 번째다. 그렇다고 어려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몇 번의 공연을 거치는 동안 많은 관객이 ‘데스트랩’을 관람했다. 작품의 매력이 반전인데 이미 관객은 ‘반전이 무엇인지’, ‘웃음 포인트가 어디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매력이 반감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새로운 어려움과 마주하니, 배우의 어깨도 그만큼 무거워진다.

“초연 첫 공연 때가 생각나요. 박호산, 김재범 배우와 함께 공연했어요. 무대에 올랐는데 미국 시트콤처럼 빵빵 터지더라고요. 소름 돋았어요. 공연이 끝나고 ‘이게 뭐야?’ 할 정도로 기뻤어요. 그리고 공연이 시작된 지 보름 정도 지나자 모든 관객에게 반전이 노출됐죠. 그때의 압박감은 이로 말할 수 없어요. 어떻게 하면 이미 공연을 본 관객들을 웃길까만 고민했던 것 같아요. 정작 왜 이 장면이 만들어졌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웃기려고만 애쓰고 있는 저를 발견한 거죠.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한세라는 한차례 홍역을 톡톡히 치렀다. 홍역이 지나간 자리에 “기본에 충실하면 관객에게 닿을 수 있다”라는 깨달음이 오롯이 새겨졌다. 시행착오는 그에게, 그만의 헬가 텐 도프를 야무지게 다듬어 나갈 길을 제시해줬다. 반전이 더는 반전이 아닐 거란 ‘우려’는 이미 단단한 나무가 된 한세라에겐 ‘기우’에 불과했다.

한세라의 ‘최애캐’ (최고 애정하는 캐릭터)


“처음부터 헬가는 좌충우돌한 모습을 보여줘요. 사실을 말했다가 거짓을 말하기도 하죠. 사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화가 나는 일을 말하며 분통을 터뜨려요. 이런 모습이 헬가 그 자체라고 생각해요. 헬가를 보여주는 장면? 모든 장면이 다 그럴 것 같아요. 물안경을 쓰고 등장하는 순간, 그때 느껴지는 것들이 바로 헬가 텐 도프가 아닐까요?”




 

극중 헬가 텐 도프는 웃음을 선사하는 역할을 수행하지만 동시에 작품이 가지고 있는 ‘반전’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상반된 감정을 끌어내야 하는 캐릭터이기에 연기하는 배우도 그 간극을 유지하는 것이 힘들 터. 이에 한세라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연출에게 늘 이야기한다. ‘데스트랩’의 주인공은 헬가 텐 도프다”라고 운을 뗐다.

“결국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건 헬가 텐 도프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헬가를 위한 판을 깔아주는 거죠. 그렇기에 저는 항상 헬가가 주인공이라고 말해요. (웃음). 헬가 텐 도프는 웃긴 상황 속에서 갑자기 분위기를 잡고 무서운 경고를 해야 하는, 그러다가 다시 웃긴 이야기를 하는 인물이에요. 물론 항상 웃길 순 없어요. 결국에는 ‘초’ 싸움인데…. 어느 순간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 웃음을 터뜨릴 것이냐, 어떤 말투와 어떤 속도로 분위기를 바꿀 것이냐, 시간 쪼개기의 문제인 것 같아요. 그 부분에 집중하고 있어요.”

헬가 텐 도프의 활약상은 극중 시드니와 클리포드의 대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두 사람은 극의 ‘웃음’을 더하기 위해 헬가라는 캐릭터를 이용한다. 극중 인물이 신스틸러로 등장하는 만큼 한세라 역시 웃음이 필요한 순간 무대에 오른다. 그가 등장하면 극의 분위기도 바뀐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헬가의 웃음 공격에 이내 녹다운돼 버린다.

 

“처음부터 등장해 극의 흐름을 따라가며 웃음을 준다면 외려 쉬웠겠죠. 하지만 헬가는 공연이 시작되고 40분 있다가 처음 등장해요. 또 20분 있다가 무대에 나타나죠. 갑자기 무대에 올라 이미 만들어진 극의 흐름을 바꿔 놓는 것은 쉽지 않아요. 엄청난 일이에요. 헬가가 등장하는 장면은 스릴러가 펼쳐진 뒤잖아요. 관객이 잔뜩 긴장한 상태에 나타나 웃음을 전하는 거죠. 무서운 장면을 본 직후에 ‘웃어봐’라면서 웃긴다고 그 사람이 웃을까요? 아니요. 화만 더 내죠. 헬가도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몇 배로 더 힘든 것 같아요.”

애드리브는 웃음을 유발하는 좋은 장치다. 하지만 ‘데스트랩’에서는 이마저도 허용되지 않는다. 연습시간 충분히 공유된 애드리브만이 무대에서 사용될 수 있다. 게다가 다른 작품과 달리 애드리브를 펼칠 수 있는 장면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제한적이다. 관객의 배꼽을 책임져야 하는 배우에겐 정말 어려운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데스트랩’에서 애드리브가 허용되는 장면은 몇 안 돼요. 언어의 차이에서 비롯된, 예를 들어 영어식 유머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 군더더기가 붙는데 그때 애드리브를 할 수 있어요. 또 시드니와 클리포드가 무기를 휘두르며 동선을 짜는 장면에서도 가능해요. 헬가는 애드리브에 엄격한 편이에요. 보기에는 애드리브가 많은 캐릭터 같지만 아니에요. 그만큼 캐릭터를 보여주는 행동이나 설정 등은 허용된 범위 안에서 자유롭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물안경 같은 경우도 원작에는 없지만 시도해봤죠.”




 

웃음이 터지면 큰일이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연습 기간에 많은 것을 보여준다. 한세라는 자신이 가진 웃음을 연습기간 최대한 풀어놓는 스타일의 배우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의 돌발 행동으로 상대 배우가 웃음을 터뜨리면 한순간에 스릴러는 코미디가 되고, 결국 작품이 무너져 버린다는 걸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연습실에서 많이 웃기려고 노력해요. 그렇게 해도 웃음이 터지는 경우가 있어요. 공연 초반에 제가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연기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한 번은 김도현 배우가 저를 안 보고 벽 쪽을 보고 있더라고요. 웃음이 터진 거죠. 헬가 텐 도프에게 두려움을 느껴 일부러 벽을 보고 있는 것처럼 연기했다고 하지만 나중에 들으니 그때 웃음 참기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반전에 반전에 반전에 반전에 반전”. ‘데스트랩’에 등장하는 인물은 5명이다. 등장인물 모두가 반전을 가지고 있기에 작품을 표현할 때 꼭 반전을 5번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한세라의 설명이다. 누가 무대에 올라도 작품이 가진 탄탄한 구성과 균형감이 잡힌 스릴러와 코미디가 빚어낸 앙상블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거란 확신이 그에게 있었다.

다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몇 번 공연을 봤더라도 같이 놀래 줬으면 좋겠다”라는 것. “이번에는 다른 웃음 포인트와 놀라는 지점이 있으니 긴장하면서 봐달라”고 마지막 말을 남기며 인터뷰를 마쳤다.


 

에디터 백초현 yamstage@naver.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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