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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YAM] ‘킬미나우’ 이진희, 상처와 마주하기

“지나간 공연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관객은 공연의 여운을 간직한 채 재관람의 문을 두드린다. 이처럼 몇 번의 관람에도 지겨움을 느끼거나, 따분함을 느끼지 못하는 까닭은 늘 새로운 공연과 마주하기 때문이다. “지나간 캐스팅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볼 수 있을 때, 다양한 캐스트로 공연을 즐기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아쉬움을 남기지 않기 위해 관객은 더욱더 꼼꼼하게 일정을 확인하고 공연 관람을 준비한다.

예외도 있다.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던 공연이 예상보다 일찍 재공연을 확정 지을 때, 다시는 보지 못할 줄 알았던 캐스트와 함께 공연이 돌아왔을 때, 모두의 염원이 반가운 만남으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연극 ‘킬미나우’가 그러했다. 관객의 눈시울을 적시던 공연은 성공적인 초연 이후 1년 만에 재공연을 확정 지었다. 눈물로 이별을 고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던 ‘킬미나우’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관객을 반기고 있다.

‘킬미나우’는 선천적인 지체 장애로 평생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왔지만 아버지로부터 독립을 꿈꾸는 17세 소년 조이와 작가로서 자신의 삶을 포기한 채 홀로 아들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온 아버지 제이크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극중 제이크의 동생이자 조이의 고모인 트와일라 역을 맡은 배우 이진희와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 사랑하기에, 애정하는 연극 ‘킬미나우’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어요. 초연 연습 때부터 사랑했던 작품이죠. 민감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지금 이때 이야기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도 초연을 함께 했던 배우들을 다시 만나고 싶었어요.”

관객 역시 마찬가지다. “볼 수 있는 상황이라면 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믿고 보는 초연 캐스트에 새롭게 합류된 배우들까지. 어떤 조합으로 ‘킬미나우’를 관람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은 ‘믿음’이 어느새 단단하게 자리 잡았다. 다만 초연을 함께 한 배수빈 제이크와 오종혁 조이를 이번 공연에서는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같이 할 수만 있는 상황이었다면, 모든 배우가 ‘킬미나우’ 재연을 함께 했을 거라 생각해요. 이번 공연에서는 배수빈, 오종혁 배우가 빠졌지만 이 두 분과 저는 현재 ‘프라이드’에서 함께하고 있어요. ‘킬미나우’에 대해 자주 물어봐요. 그때 입었던 옷이 있는지 아니면 없앴는지 궁금해 하더라고요. 공연을 보러 온다고도 약속 했어요. 무대에는 함께 오르지는 못하지만 우리와 같은 마음일 거예요.”




다시 만난다는 ‘행복’ 이면에는 이전과 다른 ‘부담’이 뒤따랐다. 1편보다 나은 2편은 없고, 초연보다 나은 재연은 없다는 인식이 괜히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이진희의 경우, 현재 ‘프라이드’와 ‘킬미나우’ 무대에 번갈아가며 오르고 있다. 온전히 두 작품에 몰입하기 역시 쉽지 않은 일. 이에 대한 관객의 걱정 어린 시선도 부담감을 더한다.

“캐릭터로 온전히 보일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어요. ‘프라이드’와 다른 시기에 ‘킬미나우’가 공연됐더라면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스스로 어떻게 내 안에서 두 공연을 분리할 수 있을지 계속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깨달았죠. 배우 이진희가 실비아와 트와일라를 연기하고 있지만, 두 인물이 처한 상황은 분명 다르잖아요. 그래서 고민을 끝내고, ‘어떻게 이 삶을 이들이 살아갔을까’라는 생각에 더 집중했어요.”

 

# 트와일라 살다, 나보다 가족을 위해


“아빠 같은 오빠가 있고, 아들 같은 조카가 있고”. 이진희에게 극중 인물에 대한 소개를 부탁하자 제일 먼저 나온 문장이다. 트와일라를 설명할 때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 있을까. 장애가 있는 가족을 보살필 수밖에 없는 환경, 그래서 내가 어떻게 살고 어떻게 해야 행복한지보다 내가 이 집안에서 어떻게 버텨야 하는가,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인물. 그것이 바로 트와일라다.

“초연 때는 작품 자체를 더 많이 생각했어요. 관객에게 ‘킬미나우’가 보이기 전이었으니까요. 트와일라와 라우디의 관계가 관객에게는 어떻게 보일지, 인정받을 수 있을지 그 부분을 고민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트와일라 자체에 더 집중하고 있어요. 더블로 캐스팅된 정운선 배우를 보면서 ‘저 때 트와일라가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배울 점이 많아요.”

1년 만에 돌아왔다. 시간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킬미나우’도, 트와일라도, 이진희도 다시 돌아왔지만 예전과 같지는 않았다. 원캐스트로 진행됐던 라우디와 트와일라 캐릭터는 더블 캐스트로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그 시간 동안 배우는 다양한 작품에서 경험과 연기력을 쌓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캐릭터를 더욱 단단하게 다듬어 나가는 기술을 익혔다. 숲을 보느라 나무를 보지 못했던 지난날은 잊고, 나무를 보며 동시에 숲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갖췄다. 시선의 변화는 배우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처음 작품을 접했을 때 장애, 안락사, 알코올 중독, 성에 대한 내용이 강하게 다가왔어요. 충격이 컸죠. 시간이 흘러서 그런지는 몰라도, 지금은 그런 것들이 크게 다가오지는 않아요. 공연하면서 알게 됐어요. 이러한 어려움을 가진, 그런 환경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요. 그것이 일상인 사람들도 많고요. 지금은 극중 상황이 제 일상 같아요. 나와는 조금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와 닿아 있는 일이기에 더 그런 것 같아요.”

트와일라는 아빠 같은 오빠 제이크 앞에서 사랑스러운 여동생이다. 아들 같은 조카 조이 앞에서 그는 친구 같은 고모로 사랑스러운 매력을 발산한다. 라우디 앞에서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트와일라로 눈길을 붙잡는다. 특히 술에 취한 모습은 사랑스러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보는 이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매력을 지닌 트와일라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트와일라는 웃겨도 웃을 수 없는 여자예요. 그런 트와일라가 웃을 수 있을 때, 잠시 풀어져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 사랑스럽게 보이는 것 같아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눈으로 봐주고 있어서 그 순간, 굉장히 아름답게 다가오는 거죠. 특별히 트와일라가 사랑스럽다고 느껴지는 장면도, 그렇게 연기하는 장면도 없어요.”

객석의 관객도, 무대 위 배우도 감정 소모가 심하다. 트와일라를 보고 있으면 유독 감정이입이 잘 된다는 반응이다. 현실에서 있을 법한, 극중 상황에 처한다면 누구라도 트와일라가 돼 그와 같은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을 거란 지지를 얻고 있다. 모두의 예상과 달리 감정을 쏟아내는 연기보다 더욱 어려운 것은 트와일라가 무대에 처음 등장하는 순간이라고. 이진희는 “트와일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괜찮아’라면서 살아가는 인물”이기에 씩씩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순간이 제일 긴장된다고 털어놨다.

“헥터에게 전화를 걸어 음성 메시지를 남기는 순간도 힘들어요. 내 상황은 이런 데 고작 사랑 때문에 내가 힘들어하는 것 자체가, 사랑 자체가 사치처럼 느껴지는 거죠. 그래서 제대로 된 연애를 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사랑으로 위안을 받고 행복을 찾아가는 것이 스스로 보기에는 옳지 않은 일이라 생각하는 거죠.”

꽉 막힌 현실이 트와일라의 숨통을 조여 온다. 가족은 그에게 고통이지만 동시에 희망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말이다. “트와일라를 힘들게 하는 건 가족이고, 살게 하는 것도 가족”이라고 말한 이진희는 “트와일라가 그 끈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분명 트와일라 자신 역시 조이와 마찬가지로 오빠 제이크를 위해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유독 트와일라에게 몰입이 잘 됐던 까닭은 그를 연기하는 이진희의 감정이 고스란히 캐릭터에 녹아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가족 중에 아픈 분이 계세요. 그분에게 저희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견디고 살아내야 한다’는 말뿐이에요. 가족 입장에서는 그렇지만 당사자가 아니면 그 심정을 손톱만큼도 알기 힘들죠. 그래서 존엄사에 대해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에요. 머리로는 인정하지만 남겨지는 가족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정이잖아요. ‘이해는 돼. 하지만 받아들이기는 힘들어’라는 트와일라 대사처럼 말이에요. 배우 이진희 입장도 마찬가지예요. 충분히 이해는 되지만 받아들여지지는 않아요.”

조이와 트와일라의 대립. 머리로는 조이의 말에 동의하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정이다. 조이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트와일라의 반응에 동의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관객은 저마다 다른 ‘결정’을 내린다. 이진희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트와일라의 감정을 설명해나갔다.

“트와일라처럼 저도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했어요. 포기하지 않고 잘 살아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이에요. 하지만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순간이 분명 생기기 마련이에요.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건 트와일라가 조이에게 매달리는 것처럼, ‘내가 더 잘해볼게’, ‘내가 노력할게’라는 말 밖에 없더라고요. 제가 그 사람의 인생을 책임져줄 수 없으니까요. 이해는 되지만 받아들이는 건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 트와일라와 사람들, 제이크 그리고 라우디


공연은 배우의 연기로 채워진다. 연기는 실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실제처럼 다가오는 ‘감정’들이 존재한다. 때로는 실제와 연기를 구별 짓지 못하게 만드는 자연스러움이 무대를 가득 채워 관객을 혼란에 빠트리기도 한다. ‘킬미나우’ 속 제이크와 트와일라의 관계를 보면 그런 기분에 쉽게 사로잡힌다. 초연에 이어 재연에도 오빠와 동생으로 만난 이석준과 이진희는 친남매 같다.

“평소에도 남매 같아요. 그런데 ‘킬미나우’에서처럼 거리낌 없는 남매 사이는 아니고, 아빠 같은 어려움이 있어요. 작품으로 만나게 되면 작품 속 관계가 현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이석준 배우 같은 경우는 ‘킬미나우’로 처음 만나게 돼서 현실에서의 관계 설정도 작품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보고 있으면 애틋하고, 나이 들어가는 게 안타깝고 그래요.”

트와일라를 이야기하면서 라우디를 빼놓을 수 없다. ‘킬미나우’에서 두 캐릭터의 호흡은 잠시나마 관객의 숨통의 틔게 하는 역할을 한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따뜻한 위로를 받는다. 라우디가 트와일라에게 건네는 대사들이, 관객에게 닿아 관객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이보다 따듯한 위로가 또 있을까.




“사실 라우디와 함께하는 장면 모두가 그래요. 위안이 되죠. 라우디는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사는 사람이에요. 트와일라는 그렇지 않잖아요.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 같아요. 라우디가 ‘웃기면 웃어도 돼요’,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땐 이야기를 해도 돼요’, ‘행복해져도 돼요’라고 말하는 장면, 말들이 사실 그냥 하고 싶은대로 내뱉은 말이지만 트와일라에게는 굉장히 와 닿는 말들이에요. 그 말을 들으면 위안이라기보다는 자신 안에서 지진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내가 그래도 되나?’라면서 마음이 움직이는 거죠.”

‘킬미나우’는 배우에게 ‘인생캐’(인생 캐릭터)를 안겨준 작품이다. 지난해 공연된 초연 무대에서 트와일라와 라우디 역은 원캐스트로 진행됐다. 덕분에 ‘트와일라=이진희’, ‘라우디=문성일’이라는 수식어가 낯설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번에는 라우디와 트와일라 역 역시 더블 캐스트로 이뤄졌다. 무엇보다 선택의 폭이 더 넓어졌다.

“너무 달라요. 문성일 배우는 조금 더 철이 없어 보이는데 그 안에 아픔이 잘 드러나요. 그래서 마음이 가죠. 오정택 배우는 반대로 조금 더 어른스럽달까요? 그러면서도 어딘가 불안해 보여요. 무슨 사고를 칠지 몰라 걱정이 되죠. 그 안에 순수함이 보이기도 해요. 눈도 잘 못 마주치고요. 사실 트와일라는 자기가 챙겨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잘 못 만날 것 같아요. 슬픈 일이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 관계에서 자신이 살아갈 힘을 찾으면서 자랐는지도 모르겠어요.”

# 킬미나우, 힐미나우


행복을 찾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트와일라가 가족을 돌보는 것에 지쳐 있지만,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관객 역시 저마다 다른 방법으로 ‘행복’을 찾고, ‘존재’ 가치를 발견한다. 즐거움으로 행복을 극대화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슬픔에서 행복을 찾는 이도 있을 것이다. ‘킬미나우’는 후자에 가까운 공연이다. 상처와 마주하고, 마주한 상처를 통해 행복을 찾아가는 작품이다.

“한 번쯤 볼만한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에요. 물론 보는 것이 조금 힘들 수도 있어요. 하지만 ‘킬미나우’를 보는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작품이 다루고 있는 소재들이 평소에 생각하기 어려운, 힘든 것들이잖아요. 공연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요.”




공연을 보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 분명한데도, 관객들은 몇 번이고 ‘킬미나우’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다. 공연을 보지 않은 이들에겐 생각할 시간을 제공하기에, 꼭 봤으면 한다고 강조한 이진희는 마지막으로 공연을 본 관객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고 전했다.

“‘킬미나우’는 비극이 아니에요. 극중 인물들도 충분히 잘 살아가고 있을 거예요. 너무 힘들 게만 보지 말고, 그 안에서 또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가끔 공연이 끝나고 분장실에서 모니터를 통해 관객들이 나가는 걸 볼 때가 있어요. 큰 울음소리가 들리면 마음이 불편하죠. 너무 힘들어하시는 게 아닌가 걱정스러워요. 공연을 보고 그것이 상처가 됐을까 죄송할 때도 있어요. 하지만 ‘킬미나우’는 상처를 드러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위로받고 위로할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해요. 그 안에서 위로 받고 갔으면 좋겠어요.”

 

에디터 백초현 yamstag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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