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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YAM #1] ‘보이스 오브 밀레니엄’ 이휘종, 잃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찾아서

*본 인터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지훈, 동우, 형석, 명구. 네 명의 친구들이 들려주는 지난 시절의 이야기는 내 이야기인 듯, 우리네 이야기인 듯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서로 다른 성격의 인물들은 누구에게 대입해도 공감할 수 있을 만큼 현실에 가까이 닿아 있어 감동의 진폭 역시 크다. 연극 ‘보이스 오브 밀레니엄’을 보고 있노라면 잊고 있던 추억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도 지극히 당연한 결과.

‘보이스 오브 밀레니엄’에서 명구 역을 맡은 배우 이휘종과 만나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그의 출연 계기는 ‘인연’에서 시작됐다. 같은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배우와의 인연은 또 다른 작품으로 그를 인도했고,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은 이휘종은 그렇게 명구와 조우했다.

# 나와 닮은 친구, 명구를 만나다

“안혁원 PD가 지인에게서 저를 소개받았다고 들었어요.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에 출연했던 박은석 배우에게 저에 대해서 물어봤나봐요. 형과 친한 편이라 울산도 같이 자전거를 타고 가기도 했죠.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굉장히 좋게 말했을 거예요.(웃음) 캐스팅을 하고 안 PD님도 초반에는 많이 당황했다고 해요. 하지만 잘 적응해서 지금은 이렇게 ‘보이스 오브 밀레니엄’ 무대에 서고 있어요.”

연습에 돌입하기 일주일 전, 급하게 결정된 캐스팅으로 걱정이 컸던 것도 사실. 대본을 읽었을 때 좋았던 기억이, 대학교 졸업 후 맡게 된 첫 번째 주연이라는 점이 이휘종을 ‘보이스 오브 밀레니엄’으로 강하게 잡아끌었다. 또 그를 더욱 단단하게 담금질시키며 작품에 집중하게 했다.

“명구라는 인물이 이야기하려는 방향과 캐릭터가 너무 좋았어요. 사람을 볼 때 개인적으로 ‘연민’의 정을 많이 느끼는 편이에요. 명구를 볼 때도 어쩔 수 없이 애틋해 보이더라고요. 극중 인물을 연기하게 되면 이휘종식으로 잘 표현하고 싶다는 욕심도 들었죠.”

20대 중반의 나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단단한 뿌리를 내리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는 지금의 이휘종과 명구는 여러모로 닮아 있었다. 사회에 적응하느라 친구들과 점점 더 만나는 횟수가 줄어든 두 사람은 그렇게 ‘보이스 오브 밀레니엄’이라는 작품 안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는 친구가 됐다.

“명구는 속이 여린 친구예요. 그러면서도 그걸 남들에게 티 내고 싶어 하지는 않아요. 친구 중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힘들고 아버지도, 직장도 없어요. 여기까지가 대본에 나와 있는 명구의 상황이에요. 우리끼리 덧붙인 명구의 상황은, 명구는 어렸을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왔고 그래서 친구들보다 어른스럽다는 거예요. 친구들이 멀어지는 걸 원치 않아서 싸움을 중재시키는 역할을 도맡고, 우정을 더욱 끈끈하게 이어가자고 말하기도 하죠.”

제작진의 머릿속에서 살아 숨 쉬는 명구 역시 분위기 메이커다. 그래서일까. 전작 ‘히스토리 보이즈’에서 악타 역을 맡았던 이휘종은 전체적인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깨발랄한 캐릭터 명구와 만나 제 기량을 톡톡히 발휘하고 있다. 보이는 것은 긍정의 아이콘, 발랄함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곪을 대로 곪아버린 상처와 마주하게 된다.

“사람들은 누구나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모든 사람이 그 아픔을 드러내지 않아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아픔을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것을 두려워하죠. 그래서 자꾸만 상처를 감추려 해요. 그런 자기 보호의 습성이 은연중 조금씩 나오더라고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가 복권신이에요. 명구가 친구들에게 가장 감추고 싶었던,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상황을 결국엔 친구들이 먼저 알게 된 거잖아요. 그 순간 무너지는 명구의 모습이 마음에 와 닿더라고요. 명구와 저의 닮은 점은 내가 아무리 아파도 그 아픔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려는 것이죠. 분위기를 망치지 않기 위해서 말이에요.”

이휘종이 맡은 명구 역은 ‘보이스 오브 밀레니엄’에서 가장 많은 정보가 제공되는 인물이다. 친구들 중 분위기 메이커를 담당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아버지의 부재에 서로 함께 했던 그때를 그리워하며 친구들의 재결합을 누구보다 원하는 캐릭터다. 자칫 전형적일 수 있을 극중 인물을 연기하는 것은 이휘종에게 또 다른 숙제로 다가왔다.

“재미있게 연기하고 있지만 힘든 부분도 있어요. 어떻게 보면 명구가 전형적인 인물일 수도 잇는데 그러한 인물을 관객들이 보기에 조금 더 입체적인 캐릭터로 보일 수 있을까, 늘 고민이 많아요. 그러기 위해서 과거와 현재를 연기하는데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함께 출연하는 형들도 그렇겠지만 고등학생을 연기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다만 34세의 명구를 연기할 때는 연기호흡을 주고받아야 하는 형들과 깊이감에서 차이가 생기더라고요. 이건 제가 해결해야 하는 부분인 것 같아요. 그 간극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실제로 명구와 이휘종은 경제적인 상황보다 더 많은 부분에서 닮아 있었다. “여러 사람과 있을 때는 나서서 분위기를 주도하는데, 혼자 있을 때나 단둘이 있을 때는 한 없이 어두워진다”는 그는 그렇게 자신과 닮은 명구를, 명구의 친구들을 친구로 새로이 사귀게 됐다.

 

#나, 너, 그리고 우리라는 이름의 ‘친구’

‘보이스 오브 밀레니엄’은 오랜 시간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지훈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지훈의 관점에서 녹음기에 녹음된 추억이 재생되고 이들의 지난 이야기가 엉킨 실타래를 풀어가듯 펼쳐진다. 지훈이 왜 병원 신세를 지게 된 것인지, 명구는 왜 지훈의 병실을 찾아 매일 밤 하소연을 하는지, 동우는 왜 저렇게 냉혈한이 됐는지, 형석은 왜 이들 앞에 나타나지 않는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상황에 대한 답을 찾아 녹음기의 재생 버튼이 눌러진다.

“대본상에는 지훈이 친구들을 제일 많이 생각한다고 나와 있어요. 저는 지훈보다는 명구가 더 친구들을 걱정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본 동우는 아직은 어리지만 나름대로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어요. 형석이는 정말 멋진 친구죠. 하지만 뭔가 우리와 있을 때보다 남들과 있을 때 더 멋있어 보이는 친구예요. 저 때문일 수도 있고, 동우에 의해서 일수도 있고, 어찌 됐든 눌려 있는 느낌이죠. 지훈은 말 그대로 대장 같아요. ‘네가 없으면 우리가 뭉칠 수 있을까’, ‘네가 있어 나는 너무 좋고 행복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이휘종은 앞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 복권신을 꼽았다. 복권신은 친구들이 함께 아르바이트해 번 돈을 명구에게 주는 순간을 담고 있다. 친구들의 호의를 거절할 수밖에 없는 명구의 심정을 이해하면 그가 지훈, 형석, 동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제가 명구였다면 돈을 받긴 받았을 거예요. 그렇지만 명구는 다르죠. 명구에게 그 순간은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는 순간이니까요. 들키고 싶지 않았던 치부. 친구들이 표면적으로는 명구의 상황을 알고는 있었겠지만 그의 속마음까지는 알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는 할 수 있는 것들이 제한적이잖아요. 고맙다고 이야기해도 될 것을, 그러한 마음을 감추기 위해 명구는 되레 화를 내요. 자신이 무너지는 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소리를 지르고 울기까지 했던 것 같아요.”

명구는 친구들에게만큼은 동정받고 싶지 않아 한다. 그러한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휘종은 복권신에 애정을 담에 극중 인물의 감정을 관객에게 오롯이 전달하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그럴수록 의문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친구들의 도움을 거부한 그가 유독 지훈이 구입한 복권의 행방에 집착하니 말이다. 그러면서도 동우의 호의는 악을 쓰고 거부한다. 명구의 속내가 궁금한 순간이다.

“동우가 주는 돈은 명구에 대한 연민으로 쥐어주는 돈이라고 생각해요. ‘너 힘드니까 이 돈 받아. 이거 써’ 같은 느낌이죠. 그래서 동우가 주는 돈을 받지 않았던 것 같아요. 분명 동우가 돈을 줬을 때 명구는 ‘나 힘들지 않아. 내가 알아서 잘할게’라며 거절했을 거예요. 복권은 달라요. 복권은 친구들의 추억이 담긴 거잖아요. 같은 장소에서 네 사람이 같이 나누자고 했던 돈이기 때문에 명구의 생각으로는 때 묻지 않은 돈이었겠죠.”

이휘종에게 물었다. 그렇게도 그리운 친구들이 있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명구는 돌아가고 싶어할까. 이휘종은 단호하게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학창시절로 돌아가고 싶을 것 같다”. 명구의 삶은 늘 과거를 향해 고개를 들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삶은 더 힘들어지고 친구들마저 곁을 떠나버렸다.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의 부재는 그를 더욱 외롭게 만든다. 그는 “돌아갈 수 있으면 다시 그때로 돌아가서 친구들이 멀어진 순간들을 바로 잡으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라며 아쉬운 마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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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구와 함께, 이휘종은 무럭무럭 성장하는 中

이번 공연에서 지훈 역은 박동욱과 정순원이 맡는다. 동우 역은 주민진과 이강우가 분한다. 형석 역은 김선호와 김호진이 연기한다. 명구 역은 이휘종과 함께 송광일이 번갈아가며 무대에 오른다. 명구 역은 특히 동우와 붙는 장면이 많다. 경제적인 상황에서 대립각을 세울 수밖에 없는 두 친구의 상황은 안타까움을 자아내며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동우와 명구가 다툴 수 있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 대한 아픔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주민진 배우와 연기할 때는, 그게 형의 장점이기도 한데 대사가 귀에 쏙쏙 들어와요. 눈도 매우 크기 때문에 눈과 소리로 저에게 전달되는 감정이 엄청나요. 저는 그걸 받기만 하면 되죠. 이강우 배우는 눈에 선함이 보여요. 민진 형과 할 때는 명구가 더 약해 보이는 게 있는데 강우 형과 할 때는 속으로 ‘내가 이길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물론 형이 저보다 키가 크기 때문에 손가락으로 누르면 제가 눌러질 것 같을 때도 있어요.(웃음)”

이휘종은 이번 작품을 통해 연기력을 재평가받고 있다. 이제 막 연극 무대에 발을 내딛기 시작한 그는 차근차근 자신에게 맞는, 자신을 대변해주는 필모그라피를 채워가는 중이다. 그런 그에게 ‘보이스 오브 밀레니엄’은 여러모로 남다른 의미가 있다. 스스로 “쁘띠쁘띠해서 학교 다닐 때 주인공을 맡은 적이 없다”고 평가했다. 그렇기에 그는 지금과 같은 관심과 평가에 “주연을 맡아서 저와 비슷한 캐릭터라는 좋은 말을 많이 해주시는 것 같아 감사하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무대 경험이 많지 않아요. ‘보이스 오브 밀레니엄’만 해도 20회가 안 되거든요. 배운 것은 무대에서는 절대 관객들을 거짓으로 속일 수 없다는 거예요. 저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이번에 많이 배우고 있어요. 특히 친구들과 싸울 때, 모든 것을 다 잃을 것처럼 싸우잖아요. 명구에게, 그리고 이휘종에게 있어서 그런 부분이 너무 슬프더라고요.”

‘잃고 싶지 않음’. 무언가를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명구를 눈물짓게 했고, 이휘종을 ‘보이스 오브 밀레니엄’에 빠져들게 했다. 관객에게 울림을 선사하는 확실한 메시지는 없지만 그는 “공연을 보고 난 뒤 멀어진 친구, 가족, 또는 누군가와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할 수 있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남기며 작품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겼다.

 

에디터 백초현 poolchoy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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