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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YAM +] 어릴 적 꿈 물으니 “배우, 제가 좋아서 하게 된 것”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라는 노래가 생각이 날 때가 있다. 배우들에게 ‘꿈’을 묻는 순간이 그렇다. 배우라는 직업을 갖고 무대에 올라 관객을 만나는 이들의 어릴 적 꿈은 ‘배우’ 또는 ‘TV에 나오는 사람’이지 않을까 막연한 생각이 이 노래 가사를 불현듯 떠오르게 한다.

최근 얌스테이지는 연극 ‘글로리아’와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더맨인더홀’에 출연하는 배우 정원조, 손지윤, 정동화, 김영철, 고훈정을 만났다. 이들에게 공통된 질문을 던져 그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첫 번째 시간은 ‘어릴 적 내 꿈은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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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원조, 안정적인 직업을 꿈꾼 소년

정원조는 “꿈이 없었다”라는 말로 질문에 간단하게 답했다. 막연히 교사나 변호사, 공무원이나 검사 등이 되고 싶었다던 그는 부모님의 제안으로 해당 꿈을 꾸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런 정원조가 배우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본인이 생각해도 의외였다고.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었어요. 배우라는 일은 뭔가에 결핍이 있는 사람이 하는 일 같아요. 제 성격이나 어떠한 가치관, 그런 것을 종합해 봤을 때 분명 배우는 저와 어울리지 않아요. 그런데도 이 일을 하는 것은 어떤 계기로 인해 제가 자꾸만 저를 부족하게 만들다 보니 배우라는 직업까지 이르게 된 것 같아요.”

정원조의 설명은 궁금증을 더했다. 그는 결핍에 의해 배우라는 직업에 이르렀다고 말했지만, 배우와 다른 직업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정원조는 “결국에는 먹고 사는 게 가장 큰 문제잖아요. 내일을 뭐 해먹을 건지”라며 “직장 생활도 힘들죠. 각자의 고충이 있기 마련이니까. 물론 좋아서 배우를 하게 된 것”이라고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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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지윤, 노네임씨어터가 이뤄준 꿈

손지윤은 손재주가 참 좋은 배우다. 연극 ‘글로리아’ 공연장 앞에 큰 글씨로 적힌 공연 명 역시 그의 손길을 거쳐 완성된 작품이다. 어릴 때부터 미술 시간을 제일 좋아했다던 그는 “미술에 소질이 보인다는 선생님 말에 미술 쪽을 생각한 적 있다. 사생 대회에 나가 상도 많이 받았다”고 고백했다. 그림 그리는 것이 자신의 길이라 생각했던 손지윤은 여고 진학 후 생각의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여고 진학 후 공부하기 싫어졌어요. 그래서 오락부장을 했죠.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고, 다들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하는데 저는 그림을 그린지도 오래됐고 자신감도 없어져서 걱정됐죠. 그때 친한 친구가 연극영화과에 간다며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친구가 VJ하면 잘 하겠다고 말해줘서 저도 지원했는데 얼떨결에 합격한 거죠. 그 친구는 안타깝게도 떨어졌어요.”

손지윤은 부끄러운 이야기라며 “대학생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연극을 보기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대학 시절 “대학로에서 연극하는 것이 꿈”이라던 말을 이제야 이루게 된 것에 대해 만족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런 손지윤에게 물었다. “그림 그리는 꿈은 포기한 것이냐”고. 손지윤에 대답에서는 언제가 그 꿈을 이룰 거라는 확신을 느낄 수 있었다.

“신랑이 취미로 그림을 그려보라고 힘을 주기는 해요. 결혼하고 나니 할 일이 많더라고요. 텃밭 가꾸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고요.(웃음). 여유가 없어요.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용기를 내볼까해요. 생각은 많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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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화, 누군가의 TV에 출연하는 꿈

정동화는 일찍이 자신의 재능을 알았고, 이를 꿈으로 삼아 앞으로 나아갔다. 어린시절 미용실을 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당시 흔치 않았던 헤어스타일을 선보였고, 남들 눈에 띄는 아이로 학창시절을 보냈다. 관심을 받는 것에 익숙했고, 관심을 즐길 줄 아는 아이였던 그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이 꿈이었다고 솔직하게 밝혔다.

“젊었을 때는 TV에 나오는 것을 목표로 굉장히 노력했어요. 지금은 때가 되면 그런 기회가 올거라 믿으며 조바심은 버렸어요. 조급해하지 않아요. 무대가 즐겁거든요. 물론 TV에 많이 나와도 무대를 놓지 않고, 계속 무대에 오를 거예요. 사실 지금도 누군가의 텔레비전에 제가 출연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크게 상관은 없어요.(웃음)”

무대가 재미있다는 정동화는 각각의 영역이 나뉘어 있는 다른 매체와 달리 유기적으로 서로 연결된 무대만의 매력에 제대로 빠져있었다.  그는 자신의 꿈이 이뤄지는 순간에도 여전히 무대에 올라 연기를 펼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며 행복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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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훈정, 음악을 사랑한 소년은…

음악이었다. 고훈정의 모든 것은 음악에서 시작돼 음악으로 끝났다. 그는 악기를 다루고 노래를 부르는 것에 재미를 느꼈고 음악 창작 공부에 매진하며 자신의 꿈을 키워나갔다. 고훈정은 전문가가 되기 위해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음대에 진학한 것도 이 때문.

“노래를 부를 수 있고, 음악을 들을 수 있고, 노래로 무언가를 표현할 수 있기에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좋아해요. 뮤지컬 무대에 오르다보니 연기적인 부분도 챙겨야 했죠.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연극 무대에도 도전했어요. ‘만추’, ‘큐’에 출연한 게 저에게 큰 도움이 됐어요.”

고훈정이 살포시 꺼내놓은 어릴 적 꿈은 앞으로 그가 걸어가고자 하는 길을 뚜렷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는 “제 음원, 음반을 갖고 싶다”라고 언제가 이루게 될 자신의 또 진짜 ‘꿈’을 펼쳐놨다. 누군가의 음반을 프로듀싱 하는 것도 목표 중에 하나라고. 고훈정은 마지막으로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잘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이야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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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철, 꿈은 변하는 것

같은 질문을 건네도 배우마다 돌아오는 답도 반응도 각양각색이다. 김영철에게 ‘꿈’을 물었을 때, 그는 이미 질문을 예상하고 있기라도 한 듯 술술 이야기를 풀어냈다. 초등학교 시절을 시작으로 중,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 생활에 이르기까지, 그의 꿈은 쉼 없이 변모하며 지금의 김영철로 인도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는 곤충학자 파브르가 꿈이었어요. 울산에서 곤충을 미친 듯이 잡았죠. 파브르와 관련된 만화책도 전권 다 읽었어요. 무당벌레 알을 채집해서 집에서 키우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전학을 가면서 중학교 2학교 때까지 축구부 활동을 했어요. 그때는 축구선수가 꿈이었죠.”

김영철은 자연스럽게 성장담을 들려줬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는 꿈이 없었다”라며 “단지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고 꿈이었다”고 씁쓸한 현실을 고백하기도 했다. 우연히 공연예술학과에 진하게 된 그는 뮤지컬을 목표로 해당 학과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고 정정했다. 군 제대후 자연스럽게 공연예술학과가 뮤지컬학과로 바뀌면서 뮤지컬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그때 남자 동기들이 전부 군대에 가기로 했어요. 마지막 작품으로 ‘가스펠’을 올렸는데 동기들과 함께한 마지막 공연이었죠. 공연을 준비하면서 동기의 소중함은 물론이고 많은 것을 느꼈어요. 우느라 막공을 제대로 못 할 정도였죠. 일주일 뒤에 입대했는데 그때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영상을 찾아보다가 우연히 조승우 배우가 출연한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영상을 보게 됐어요.”

노래로 울산을 주름잡았다던 김영철은 제대 후 본격적으로 뮤지컬 배우로서의 꿈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뮤지컬 ‘영웅’을 보고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오디션에 참여했고, 당당히 역할을 따내며 무대에 오를 기회를 잡았다. 여러 작품을 하면서 그는 “배우란 직업이 참 매력적이구나. 배우가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고.

배우를 하고 있지만, 이들의 어릴 적 꿈은 배우가 아닐 수도 있겠구나 싶어 준비한 질문. 배우를 꿈꾼 이도 있지만 전혀 다른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도 많았다. 그들에게 배우가 아니면 무엇이 됐을까 역(易) 질문을 던졌을 때도,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끼가 많은 배우들이 끼를 펼칠 무대는 이 세상에 넘쳐났다. 대답을 듣고 나니 배우들이 무대에서 그 끼를 다 펼쳐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사진 출처 : 얌스테이지 DB

 

에디터 백초현 poolchoy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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