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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인터뷰

[인터뷰YAM #1]‘삼총사’ 선재, 날카로운 칼끝에 서린 설움

분량은 많지 않지만 존재감은 확실하다. 무대에 있을 때보다 무대 뒤에서 준비하는 시간이 더 많지만 괜찮다. 한 번의 등장만으로도 관객을 매료시키며 극중 인물의 이야기를 오롯이 전해주니. 바로 뮤지컬 ‘삼총사’에서 쥬샤크 역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는 배우 선재 이야기다.

‘삼총사’는 알렉산드로 뒤마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삼총사’를 원작으로, 17세기 프랑스 왕실 총사가 되기를 꿈꾸는 청년 달타냥과 전설적인 총사 아토스, 아라미스, 포르토스가 루이 13세를 둘러싼 음모를 밝혀내는 과정을 담은 뮤지컬이다. 극중 리슐리외 근위대장 쥬샤크로 분한 선재와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 서자의 설움, 상처가 되다

선재와 쥬샤크의 인연은 지난 2016년으로 되돌아간다. 2년 전 쥬샤크로 ‘삼총사’ 무대에 오른 바 있는 선재는 2018년 ‘삼총사’ 공연 소식을 듣고 오디션을 봤다. 오디션 현장에서 만난 왕용범 연출은 선재에게 “같이 가자”라는 말을 남겼고, 다시 시작된 인연에 선재는 한층 농익은 쥬샤크로 돌아왔다.

“2016년에는 여유가 없었어요. 분량이 워낙 적다 보니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에만 집중했죠. 그러다보니 앞만 보고 달려간 것 같아요. 다시 ‘삼총사’에 합류하고, ‘왜 이렇게 나쁜 놈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깊이 있게 고민했어요. 극중 인물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더 공감하게 됐죠.”

 


처음은 어려운 법이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상당하다. 여유를 부릴 수 없으니 조바심만 생겨난다. 2년 전 선재에게 ‘삼총사’가 그랬다. 열심히 했지만 뒤돌아보면 아쉬움이 하나, 둘씩 남는다. 이번에는 어떨까. 그때의 아쉬움을 한데 모아 담은 그는 극중 인물을 빈틈없이 채워 나갔다. 쥬샤크는 더욱 옹골차게 여물었고, 관객의 만족도도 높아졌다.

“극중 인물은 상처가 많아요. 제가 생각한 쥬샤크는 ‘서자’에서 시작해요. 서자이기에 위로 더 올라갈 수 없는 아픔이 있죠. 그 역시 어렸을 때는 삼총사와 친구였어요. 커가면서 그들과 자신은 다르다는 것을 깨닫죠. 그러면서 자격지심도 생기고. 그런 것들이 모여 아픔이 되고 점점 그들과 멀어졌을 거예요.”

 

 


쥬샤크에 ‘서자’를 더하면 그와 리슐리외의 관계도 명확하게 설명된다. 선재는 “리슐리외가 왕이 될 수 없는 운명으로 버려진다”며 “극중 인물은 리슐리외와 만나고 그의 아픔을 자기화한다”고 덧붙였다. 고민을 거듭하며 선재만의 쥬샤크를 만들어나가니,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관계의 연결고리가 한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리슐리외는 쥬샤크와 마찬가지로 아픈 사람이에요. 불쌍하죠. 관객 입장에서 보면 삼총사를 물리치고 왕위를 차지하려는 인물이에요. 반대로 리슐리외는 가족에게 버림당했고, 자신의 삶을 부정당했어요. 복수라기보다는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 한 거죠. 그게 리슐리외의 가장 큰 아픔이고, 동시에 그가 걸어가야 할 ‘선’(善)인 것 같아요. 리슐리외 드라마가 ‘삼총사’에서 단 한 곡으로 표현돼요. 드라마적으로 이런 것들을 느끼기 힘들지만 깊게 파고들면 꽤 입체적인 인물이에요. 매력적이죠.”

 


선재는 극중 인물에 푹 빠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리슐리외의 깨알 같은 매력도 발굴해 애정을 드러냈다. ‘삼총사’에서 대표적인 악역인 두 인물을 이토록 사랑할 수 있는 이 또한 찾기 힘들터. 선재는 누구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이들을 대변해 열변을 토했다.

“쥬샤크와 리슐리외에게 정의란 ‘힘’이자, 그들이 갖지 못한 것이에요. 삼총사가 말하는 정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삼총사에게 ‘정의’는 가지고 있기에 지키려 하는 것이고, 쥬샤크와 리슐리외 입장에서는 갖지 못하기 때문에 뺏으려 하는 것이죠. 물론 행위 자체는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만, 또 다른 의미의 ‘정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같은 ‘정의’이지만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쟁취인 거죠.”

 

 


시각을 달리하면 쥬샤크와 리슐리외의 행동도 충분히 이해된다. 그들의 쟁취가 실패로 끝난 까닭은 과정이 옳지 않았기 때문. 같은 정의를 부르짖어도 과정이 옳지 않다면 ‘정의’를 쟁취할 수 없다는 것을 ‘삼총사’는 리슐리외와 쥬샤크를 통해 보여줬다. 이 과정에서 쥬샤크는 그가 서자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원하는 바대로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해선 리슐리외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리슐리외는 추기경이에요. 어느 정도 높은 위치에 있는 인물이죠. 쥬샤크는 아니에요. 혼자 힘으로는 무엇도 할 수 없어요. 그래서 리슐리외의 힘을 빌린 거죠. 리슐리외가 올라가면 자신도 그만큼 올라갈 수 있다고 믿어요. 쥬샤크가 리슐리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저 떠돌이 검객이 됐겠죠. ‘바람의 검객’처럼. 지금 근위대장으로 있을 수 있는 것도 리슐리외의 힘이고, 삼총사와 맞설 수 있는 것도 리슐리외의 힘인 거죠.”

 


쥬샤크는 삼총사와 대적하지만, 리슐리외와 은밀하게 호흡을 주고받아야 한다. 이번 공연에서 리슐리외 역은 배우 홍경수와 조순창이 맡았다. 서로 다른 느낌을 자아내는 두 배우는 다양한 매력으로 리슐리외를 표현해내고, 이들과 만난 쥬샤크 역시 다른 빛을 뿜어낸다.

“조순창 배우는 선이 굉장히 날카로워요. ‘싹’하고 베일 것 같은 호흡이 있죠. 그래서 조금 더 각을 잡고, 군인 같은 느낌으로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 연기하게 돼요. 홍경수 배우는 날카로움과 반대되는 여유가 있어요. 여유에서 나오는 특유의 에너지가 살 떨리게 하죠. 리슐리외 집무실에서 만날 때 서 있는 모습만 봐도 두 배우가 뿜어내는 에너지가 달라요. 저도 그 에너지를 받아 상황에 맞게 연기를 하고 있어요.”

 

 


# 사랑한 만큼 보이는 진심

극중 쥬샤크는 삼총사와 반대편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의 등장은 피할 수 없는 ‘대결’을 동반한다. 흐트러짐 없는 검술 실력을 뽐내며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물론 결과는 예상을 빗나가지만, 그마저도 미워할 수 없는 매력으로 똘똘 뭉친 쥬샤크에 자꾸만 시선을 빼앗긴다.

“조금만 신경을 안 쓰면 바로 사고로 이어져요. 계속 신경을 쓰다 보니 아프지 않은 곳이 없어요. 그래도 쥬샤크가 가장 ‘에지’(edge)있게 표현되는 장면이 검술이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쥬샤크는 아토스와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고, 삼총사 모두와 싸울 수 있을 만큼 에너지가 나와야 해요. 검술 장면은 그래서 멋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신경을 많이 썼어요.”

 


쥬샤크가 상대해야 하는 인물은 삼총사와 달타냥이지만, ‘삼총사’에서 선재가 대적해야 할 상대는 그 이상이다. 이번 공연에서 달타냥 역은 엄기준, 손호영, 서은광이 연기한다. 또 삼총사 아토스, 아라미스, 포르토스 역에는 신성우, 유준상, 김준현, 민영기, 손준호, 박민성, 김법래, 이정수 등이 열연한다. 그는 “달타냥마다 다른 호흡을 맞춰야 한다”며 “삼총사도 연기하는 배우에 따라 에너지가 다르기에 그에 맞춰 쥬샤크가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검술 연습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2016년 ‘삼총사’ 할 때는 많이 힘들었어요. 이번에는 조금 더 편하게 할 수 있었어요. 이유는 처음부터 합을 다 맞췄고, 무술 팀이 잘 꾸려져 검술 연습하고 연기하는데 있어 더 수월했어요. 힘을 조금 더 빼고 교감하며 검술신을 연기하면 좋을텐데, 무대서 아토스를 보면 순간 눈에서 불이 나오고 힘이 들어가요. 늘 반성하고 더 잘하기 위해 채찍질 하는데 쉽지 않아요.(웃음)”

분량은 중요하지 않다던 선재는 누구보다 열심히 ‘삼총사’ 무대를 위해 준비했다. 무대에 올라 열연을 펼친 뒤, 퇴장하면 그만의 시간이 시작된다. 선풍기를 틀어 땀을 식히고, 휘어진 칼을 다시 편다. 객석에서 체감하는 것보다 대기실서 준비하는 시간을 더 빠르게 지나간다고. 다음 대사를 연습하고 어떤 호흡으로 연기할지 고민하면 어느새 1막이 끝난다.

“1막이 끝나면 함께 모여 아쉬운 점을 이야기해요. 그럴 때면 형님들이 ‘아니야. 괜찮았어’라고 위로해주죠. 2막이 시작되면 다른 배우들은 무대에 올라가요. 저는 대기실에 남아 옷을 차려 입고 다시 쥬샤크로 분할 준비를 하죠. 등장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극중 인물의 드라마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게 아쉽죠. 예를 들어, 아토스와 쥬샤크가 마지막 대결을 펼칠 때, 그때 조금 더 합을 맞출 수 있는 시간이 있었더라면 어떨까 생각도 해요.”

근위대장 쥬샤크의 검술 실력은 뛰어나다. 그가 뽐내는 존재감만 보더라도 예사 실력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촌뜨기’ 달타냥 도전에 무너져 버린다. 게다가 승리의 기록보다 패배의 기록이 더 많은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도 가득하다. 이러한 쥬샤크의 행보는 ‘정말 실력자가 맞나’라는 의문을 자아낸다.

“쥬샤크는 화를 잘 다스리지 못해요. 쉽게 흥분한다는 것이 단점이죠. 서자라는 콤플렉스 때문에 쉽게 화를 다스리지 못하고 흥분하죠. 처음에 달타냥이 도발해도 쥬샤크는 여유롭게 검술로 받아졌어요. 하지만 계속되는 도발에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동작들이 커지기 시작하죠. 그러면서 역습을 당하게 돼요. 아토스와 대결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이제 다 됐다고 생각했는데 아토스가 나타나 재를 뿌리죠. 검이 아닌 총을 꺼낸 순간 의식의 끈도 끊어져요. 더는 의리고 뭐고 간에 위로 올라가겠다는 생각밖에 없어 매너가 아닌 행동을 하게 되죠.”
 
“그 순간 ‘내가 헛꿈을 꿨구나’, ‘발악을 했구나’라고 깨닫게 된다”고 말한 선재는 “쉽게 죽는 것보다는 아토스의 능력이 뛰어났고, ‘그래 그 전설 네가 해라. 여기서 마무리 하자’라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고 보충 설명했다. 총알을 칼로 거둬내는 아토스를 본 순간, 쥬샤크가 느꼈을 좌절감을 선재는 한 자도 빠짐없이 전달했다.

# 10주년 기념 공연, 함께 완성한 큰 그림

선재의 남다른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이번 공연은 ‘삼총사’ 뒤에 ‘10주년 기념 공연’이라는 부제가 붙는다. 지난 2009년 초연된 작품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관객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해왔다. 선재는 “깔끔한 드라마와 배우들의 에너지 넘치는 연기”가 10주년 기념 공연을 맞이한 작품의 원동력이라 말했다.

“어쩌면 유치하고 동화 같은 이야기일 수 있어요. 그게 외려 큰 힘이지 않을까 싶어요. 시대를 타지 않는 명작의 느낌이죠. ‘삼총사’가 꾸준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죠.”

이야기는 간단하다.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분명하다. 울고 웃는 사이 감동은 자연스럽게 객석에 스며들고, “우리는 하나”를 외치는 달타냥과 삼총사에 빠져든다. ‘삼총사’를 애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보기만 해도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모든 조건을 갖췄다. 2018년, 다시 돌아온 ‘삼총사’ 역시 마찬가지.

“요즘 살기 힘들죠. 안 좋은 일들도 많고. 물론 그런 것을 다 잊고 웃자라는 것은 아니에요. ‘삼총사’에는 어떤 힘든 과정도 우리가 함께라면 이겨낼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은 없다는 걸 보여주죠. 그런 것을 보며 관객도 힘을 얻길 바라요. 보고 나면 옆에 있는 친구가 생각나고, 또 포기하지 않고 살면 언젠가는 고난도 극복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도 생기게 되죠.”

 


인터뷰에 응한 배우의 모습은 열정, 그 자체였다.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답변이 돌아왔고, 답변은 문장과 문장이 이어져 빈틈없는 문장을 완성했다. 속 시원하게 털어놓은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으며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마음이 저 깊은 곳에서부터 아우성을 쳤다. 그만큼 선재는 극중 인물에 빠져들어 고민을 거듭했다. 고민의 흔적이 역력한 그의 답변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도 당연했다.

“‘삼총사’와 쥬샤크는 저에게 큰 의미가 있어요. 그간 저는 오디션을 보고, 앙상블로 무대에 올랐어요. 쥬샤크는 ‘선재’라는 이름을 걸고 무대에 오른 첫 인물이에요. 그만큼 행복하지만 무게감도 상당했어요. 다른 배우들이 만들어놓은 합에 폐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 캐릭터이기도 하죠. ‘삼총사’는 무대가 가진 뜨거운 에너지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 작품이에요. 항상 제가 쥬샤크를 처음 연기 했을 때의 마음을 잊지 않고, 초심으로 돌아가 깊이 있는 연기를 하자고 다짐하게 하는,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하는 작품이에요.”

 

 

 

 

사진 홍혜리·에디터 백초현 yamstage_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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